[서동욱의 현대 프랑스 철학 강연] 연재는 서강대학교 철학과 BK21+ 사업팀과 반비가 함께하는 [2015 서강 철학 아카데미] 서동욱 교수의 <프랑스 철학의 위대한 시절> 강연에서 녹취한 내용을 텍스트로 옮긴 글입니다. 연재 내용은 제1강 <현대철학이란 무엇인가>를 세분화하여 구성하였으며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반비 블로그에 연재됩니다.




[서동욱의 현대 프랑스 철학 강연]


04. 이성을 문제시하는 프랑스 철학




  '현대'와 '프랑스' 사이의 관계는 단지 현대 시기의 프랑스 철학이 아닌, 바로 싸우는 관계입니다. 현대성에 대한 비판적인 고찰이 현대 프랑스 철학의 핵심입니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모든 장점들을 알았을 때 나는 그것들을 이전에 읽었어야 했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좀더 일찍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만약 내가 그 저작들을 읽었더라면 많은 것들을 이야기할 필요도 없었으며, 그토록 많은 실수를 저지르지도 않았을 것이며, 많은 작업들을 절약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저하면서도 고백할 수밖에 없다.


 미셸 푸코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대한 푸코의 회고입니다. <계몽의 변증법>에서 근대적 이성에 대한 비판을 수행했던 그 목소리가 여전히 프랑스 철학, 가령 푸코 같은 철학자의 목소리 안에 뒤섞이고 있습니다.



Michel Foucault ⓒ wikipedia



Jurgen Habermas ⓒ wikipedia



  푸코와의 논쟁적 구도로 잘 알려져 있는 사람이 하버마스 입니다. 푸코를 비롯한 프랑스 철학자들과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논쟁적 구도는 사실 하버마스와의 구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근대적 이성은 유지할 만한 것이냐, 비판해야 하는 것이냐에 대한 입장에서 오는 구도이죠. 이 이성이 어떤 방식으로 관철되는지를 규범을 세워야 한다고 본 것이 하버마스였고요.


  '우리가 이성을 버리면 우리는 감정적 무질서 상태로 돌아간다. 그게 바로 나치즘 같은 것이 아니었겠는가. 이성을 버릴 게 아니라 이성의 정체가 무엇인지 규범을 세우는 일이 우리의 절실한 과제다.' 이런 생각 아래 하버마스가 내놓은 표현이 “모더니티, 미완의 프로젝트”로 모더니티란 종료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비판의 대상으로 던져두고 마치 새 별로 이주하듯 이주할 때가 아니라는 겁니다. 여전히 미완의 프로젝트로서 근대적 합리성이라는 별은 가꿔져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죠.



Max Horkheimer ⓒ wikipedia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다른 대안을 선택합니다. 그들은 자기극복적 이데올로기 비판에 내재하는 수행적 모순을 불러일으켜, 열어놓으려고 할 뿐 더 이상 이론적으로 극복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성취한 반성의 수준 위에서 어떤 이론을 세우려는 모든 시도는 토대 없는 곳으로 빠져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론을 포기하고 특별한 부정을 실행하면서, 모든 균열을 봉합하는 이성과 권력의 결합에 대항합니다.


  '수행적 모순'. 그 비판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 이성 자신이라는 점. 그것을 망각한 채 비판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이성이 자기 기능을 다하고 있는데도 그 기능 자체가 잘못된 것처럼 수행한다는 점에서 모순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확고한 이론의 정신’으로부터 남겨진 것이라고는 반박정신의 실행뿐이다. 그리고 이 실천은 가차 없는 진보의 부정적 정신을 다시 목표로 전환시키려는 마법과 같은 것이다.


─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



  '이성을 비판하는 것이 부정적 정신인데, 이것은 이성비판 뒤에 무언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것 자체가 계속 목표가 되는 데에 그친다. 계속 비판할 뿐 그 뒤에는 공허함만 남는다.' 이러한 내용이 하버마스가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에 대해 한 비판입니다. 모더니티를 종결된 것이 아니라 미완의 것으로 보고 다시 계발할 여지가 있다 보았다. 



내가 보기에는 막스 베버 이래 프랑크푸르트학파에서건 깡길렘과 같은 과학사가들이건 문제가 된 것은 지배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유일한 이성의 지위를 부여받은 합리성의 형식을 분리해 냄으로써 그것이 단지 여러 형식 중 가능한 하나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경유한 푸코의 하버마스 비판



  <계몽의 변증법> 저자들은 이성의 효율성과 통제 가능성을 비판했습니다. ‘유일무이한 것, 지배적인 것’으로서 지위를 부여받은 이성이 단지 사유의 여러 형식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음을 드러낸 것이 이들의 비판의 성과였습니다.



ⓒ pixabay



  ‘현대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현대와 철학 사이의 관계에 있습니다. 현대철학이란 여전히 모던에 대한 철학, 모던을 계승하는 철학, 모더니티를 사유하는 철학이냐, 아니면 양자 사이에 불화가 생겨 모더니티와 철학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생겼고, 이제 철학은 현대와 결별해야 하는가? 이것이 ‘현대철학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성찰의 결과로서 우리가 위치하게 된 새로운 질문의 지점입니다. 궁극적으로 그것은 여러분이 답변하고 선택해야 할 문제이기도 합니다.




[서동욱의 현대 프랑스 철학 강연]

끝.




[참고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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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욱의 현대 프랑스 철학 강연]


03. 이성에 대한 비판으로서 철학




  승리를 구가하던 인간 이성에 대한 비판이 출현했습니다. 현대성과 관련해 철학을 공부하자고 했을 때는 이 근대성의 핵심인 인간 이성에 대한 비판을 누구보다도 근본적으로 수행하는 사람들이 프랑스 철학자들이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철학 이전에 이것과 관련해 중요한 성과가 있었는데요. 바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철학입니다.


  푸코와 하버마스 사이의 논쟁적 구도 때문에 다소 이들은 프랑스 철학자들과 거리가 먼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프랑크푸르트학파는 현대사회에 대한 비판적 사회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1923년에 설립된 연구소가 그 산실이 되었습니다. 호르크하이머가 1931년에 소장으로 취임하며 오늘날과 같은 색깔이 갖춰졌습니다.



Max Horkheimer ⓒ wikipedia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가 미국에 망명하던 1947년에 펴낸 책이 계몽의 변증법입니다.



도구적 차원의 유용성의 관점에서 사물을 규정하는 것이 계몽주의의 이성이다.


─ 계몽의 변증법(1947)



  합리적 이성이란 기계기술문명의 꽃입니다. 계산 가능한 것, 유용한 것으로 자연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계몽의 변증법은 이 점, 세계에 대한 효율성과 통제가능성을 문제 삼는 것입니다. 이 이성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도구로서 다루는 이성을 말합니다. 여러분의 본성이라는 자연 역시 효율성과 통제가능성의 대상이 됩니다. 그것은 내 밖에 있는 들판, 가축들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우리 자신이라는 자연, 인간이라는 자연 역시 해당되는 것이지요. 직장에서, 학교에서, 기타 등등 사회 어느 맥락에서건 여러분에게 요구되는 것은 극한으로 끌어올려진 효율성입니다. 여러분들은 늘 통제되는 범위 안에 놓여 있다는 사실만 생각해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근대적인 이성이 자연을 그렇게 가두어버렸을 때는 인간들도 갇혀버렸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이 근대적 이성을 비판하는 <계몽의 변증법>의 핵심적인 목소리입니다.



서동욱 교수 ⓒ banbi



  영화 <모던 타임즈>는 자연이 생산을 위해 제공되는 것처럼 인간도 재료에 불과해졌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예술작품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이성의 아주 어두운 면을 발견했고 그 현대적인 이성에 대한 비판을 수행했습니다. 이들이 보여준 비판의 논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합리성이 순수한 도구주의적 사유 방식으로 축소되었다.

'-해서 뭐 해? 밥먹여주냐?' 도구적 합리성 안에 삶의 모든 것이 융해되었다는 것.

2) 문화가 시장화되었다.

3) 경제적 우선성 아래 모든 것이 경제 질서에 종속되었다.



  즉 현대적 이성은 많은 성과를 거뒀지만 우리 모두가 행복을 잃은 삶을 살게 되었다, 그 원형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계몽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이성에 대한 반성이 고조되었고 이성을 둘러싼 논쟁들이 출현했습니다. 이전에 우리는 모던을 근대라고 번역해야 할지, 현대라고 번역할지는 철학적 입장에 달려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입장들에 균열이 생기는 지점에 우리는 도달한 것입니다.


  '근대적 이성이란 우리가 보호하고 계발해야 하는 인류의 성과물이다' 아니면 '<계몽의 변증법>처럼 근대적 이성은 수많은 피폐함을 우리 삶에 가져왔으며 이제는 그런 식의 근대적 이성과 결별할 시기가 왔다', '새로운 방식의 사유 양식과 더불어 살아갈 연습을 시작해야 할 시기다' 라는 상이한 입장들이 오늘날 우리 시대 철학의 싸움터에서 논쟁적으로 논의되고 있습니다.



ⓒ pixabay



  이 질문에 대해 여전히 데카르트로부터 시작되어 헤겔이 강조한 이성처럼 이성은 낙관적이며 힘을 가진 것이며 유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데카르트로부터 시작한 '현대'라는 시기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게 아니라 그런 이상은 비판에 부쳐져야 하며 그런 이성과는 다른 사고방식을 고안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 모던이라는 시대는 '근대'가 되는 것, 우리는 '포스트모던', 근대를 넘어선 시기로서 현대를 살고있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모던을 근대/현대 어느 쪽으로 번역할 것인지는 우리가 결정해야 할 우리의 태도 문제입니다.




04. 이성을 문제시하는 프랑스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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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욱의 현대 프랑스 철학 강연]


02. 현대 프랑스 철학에서 '현대'라는 말을 이해해보자 (2)




  우리 시대는 새롭다, 과거와 결별하고 있다는 태도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현대인일 때 그 유산이란 무엇일까요?


  아까 포스트모던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었죠? 이 말을 둘러싸고는 너무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그거은 제쳐두고, 이것이 유효하다면, 즉 현대적인 것을 넘어서는 게 유효하다고 전제한다면 누가 그것을 먼저 시작했느냐, 를 따져보죠. 만약 하나를 꼭 집어 말하자면 바로 하이데거입니다.



Martin Heidegger ⓒ wikipedia



  현대 프랑스 철학과 관련해 포스트모던이란 말을 많이 하지만 진원지는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이데거는 현대의 가장 중요한 철학자 중 한 사람입니다. 하이데거의 가장 유명한 책, 여러분에게도 익숙한 『존재와 시간』이라는 책이 있죠. 이 사람의 야심은 무엇이었을까요?


  헤겔이 이야기했듯 새로운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17세, 18세기에 등장했습니다. 그런 '현대인'들, 그 사고방식인 '현대철학'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사고방식을 열어보고자 시도하는 대단히 큰 야심을 지닌 철학자였습니다. 그렇다면 하이데거는 당연히 현대를 넘어서려면 구체적으로 현대성이 무엇인지 일목요연하게 보여줘야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5가지 현대성의 특징을 들고 있습니다.


  현대라는 것의 내용을 어떻게 정리할 수 있겠는가, 하이데거와 함께 살펴봅시다. 이 다섯 가지 내용은 하이데거의 논문 <세계상의 시대>에 들어 있습니다. 하이데거가 드는 5가지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학문 

2. 기계 기술 

3. 예술의 미학화 

4. 인간의 행위가 문화로 파악됨 

5. 탈신성화



  제일 만만해 보이는 게 예술의 미학화인 것 같은데요. 미학은 전형적으로 현대적, 근대적인 학문입니다. 어떤 점에서 그럴까요? 미학의 영어 단어인 '에스테틱스'는 그리스어 '아이스테시스'에서 온 말입니다. 이것은 '미'와 상관없는 말이었습니다. 영어로 하자면 by means of sensation이라는 뜻입니다. 감각적인 것을 통해 받아들임, 이라는 뜻이죠.



ⓒ pixabay



  옛날 사람들은 우리에게는 생각하기 위한 두 가지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thinking’이라는 생각하는 능력, A는 B보다 크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이것과 다르게 ‘아이스테시스’라는 능력이 있습니다. 붉은 것, 차가운 것 감각적인 것을 받아들이는 능력이죠. 이 둘이 결합해 우리의 지식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스 시대부터.


  감각적인 것을 수용한다는 게 아이스테시스인데, 이것이 근대에 와서는 예술을 독점해버립니다. 예술이 무엇인지 묻자면 아이스테시스에 대해 물어야 하는 시대가 근대입니다. 왜 그럴까요? 인간이 가진 하나의 능력, 아이스테시스, 감각을 받아들이는 능력에서 미의 본성을 발견한 것입니다. 예술품 안에도, 대상 안에도 미는 있지 않다, 그것은 바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능력 안에서 성립한다는 것이지요.



René Descartes ⓒ wikipedia



  보통 현대적이다, 현대철학의 출발점이다, 라고 하면 모두 데카르트를 이야기합니다. 제일 유명한 명제가 있죠?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모든 지식, 앎의 척도는 나한테 있다. 이것이 이 말이 궁극적으로 뜻하는 바입니다. 이 말과 더불어 '인간이 세계의 척도로 출현'하는 일이 벌어진 겁니다. 참된 것은 왜 참되었는가, 내 생각과 이것이(대상이) 일치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 명제가 가지고 있는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미의 척도는 자연 안, 또는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니라 나의 감수성, 외부의 감각적인 것을 받아들이는 나의 '감성', 아이스테시스에 있다는 것을 근대인들은 발견했습니다. 진리의 척도가 '생각하는 나'가 됐다면 아름다움의 척도는 '감각하는 나'가 된 것입니다. 인간의 행위가 문화로 파악되었다. 인간의 행위 자체가 보존되고 연구되어야 할 것으로 파악되었다는 뜻입니다.



ⓒ pixabay



  예전에는 박물관이 없었고 왕의 보물창고가 있었지요. 현대인들은 박물관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의 행위가 박물관에 보존되고 연구될 가치가 있다고 비로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을 가치 있는 것으로, 세상의 흐름에 기록되고 역사에 남겨야 될 것으로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인간이 중심이라는 생각이 이 바탕에 있습니다. 인간 행위 자체가 중요하게 된 거죠.


  벌써 두 가지만 이야기했는데도 답이 나왔는데요. 인간이 중심이고 인간이 주체이다, 이것이 근대성의 핵심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 pixabay



  그렇다면 다음으로 탈신성화에 대해 알아볼까요?


  하이데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이라는 것이 심리적인 문제가 되었다. 그러면 세상에서 신들은 사라져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말은 종교와 관련이 있습니다. 신이 우리가 의례를 하고 출항할 때 기원을 하는 등 우리 삶의 형식 안에 배어들어 있지 않게 되고, '기도'하는 심리적인 활동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이데거 말처럼 이것은 '세상 안에서 신이 사라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현대에 와서 숲은 더 이상 정령들이 사는 곳이 아니라 목재를 생산하는 공간이 됩니다. 신은 나의 심리적 상태에서 출현하게 됩니다. 신앙의 형태로 신이 자리를 잡았을 때 자연 안의 신들은 모두 사라져버립니다. 자연은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목재를 공급하는 등 인간을 위해 봉사하는 기능을 수행하게 됩니다. 여기서도 인간이 중심이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 pixabay



  근대 학문과 기계 기술, 테크놀로지를 보죠. 근대의 기술 밑에 있는 근대 과학이라는 이 학문, 이것이 '모던'의 가장 중요한 특징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세상 안에 진입시켜 공간을 열고 그 안에 들어오는 것만을 지식의 대상으로 삼는 것'. 대표적인 것이 수입니다. 수에 기반한 것이 근대의 뉴턴 물리학입니다. 뉴턴 물리학의 세계 안에 들어오는 대상은 '물리학적 법칙 안에 종속된' 대상으로만 파악이 됩니다. 더 이상 저 세계에 대해 내가 느끼는, 신이 깃들어 있을 것 같은 기분 등이 중요한 게 아니라 계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몇 헥타르의 농지 등이 중요해지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한강의 경우 ‘한민족의 정신’ 등으로 접근할 수도 있지만 이건 오늘날 시적 영역이 되었습니다. 물리학적인 법칙에 종속된 대상으로만 출현하는 방식, 뉴턴 물리학에 종속된 세계에 기반해 근대 기술이 출현했습니다. 이것이 하이데거가 이야기하는 근대성의 특징입니다.



서동욱 교수 ⓒ banbi



  하이데거적 정신을 잘 보여주는 게 원령공주, 모노노케 히메라는 애니메이션입니다. 철강 산업이 급격히 발달해 자연이 훼손되고 인간의 유용성 아래 굴복되는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근대 과학기술의 어두운 부산물로서 환경오염 등의 주제와 관련이 있지요. 근대인의 출현과 더불어 자연은 인간의 자원이 되고 옛 신들은 떠나가버립니다. 세계를 더 이상 정령이 깃든 곳이 아닌, 두려움과 무서움의 공간이 아니라 개발의 대상으로 보는, '합리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근대인의 특징을 요약하는 말이죠. 근대의 핵심 정신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주체가 되었다."



Pensiero di Kant ⓒ wikipedia



  다음으로 헤겔만큼 유명한 철학자, 칸트의 말입니다. 



우리는 대상에 대해 우리가 집어넣은 것만을 알 수 있다.

 칸트



  우리가 세상에 대해 인식하는 것은 우리 마음속 12가지 범주가 적용된 결과라고 칸트는 말합니다. 물리학자들이 법칙을 발견하는 것을 봐라, 먼저 이성 속에서 가설을 세웠다, 라는 것입니다. 그다음 그 가설을 가지고 가서 자연이 대답하도록 했다는 것이지요. 자연이 그 가설에 대해 응답한 결과가 법칙, 물리학적 지식입니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인간 이성이 능동적으로 먼저 법칙을 가설이라는 형태로 만들어서 자연에게 실험을 통해 물어봄으로써 근대인들은 지식을 얻었다는 겁니다.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이성이 묻고 자연이 응답해서 얻어진 것이 근대의 지식입니다. 자연에 대한 지식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이성으로 생각할 줄 아는 인간입니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던졌던 질문, 도대체 현대철학이란 무엇인가, 현대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자, 에 대한 답입니다. 이것이 바로 현대입니다. 한마디로 인간이 세계의 주인이 된 것입니다.




03. 이성에 대한 비판으로서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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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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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욱의 현대 프랑스 철학 강연]


02. 현대 프랑스 철학에서 '현대'라는 말을 이해해보자 (1)




  프랑스 철학은 제쳐두고 ‘현대 프랑스 철학’이라고 할 때 '현대'라는 말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중세, 르네상스에도 철학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오로지 '현대 프랑스 철학'에만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의 공부거리의 범위는 이렇게 제한돼 있습니다.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은, '현대 프랑스 철학'이라 한다면 제일 먼저 오는 단어부터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현대'란 무엇을 뜻하는 말일까요?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필연적인 질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게 중요하니까 해봐야지’ 하는 생각에서 사유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귀찮아지면 안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공부를 대하는 어떤 방식이지요. 그러나 필연적인, 생각하지 않으려야 안 할 수 없는 질문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운명이나 정체성과 관련한 질문들이 그런 것입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현대'라는 질문입니다.



ⓒ pixabay



  왜 그럴까요? 답은 단순합니다. 우리가 지금 '현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으로서 어떻게 현대에 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이것이 바로 현대란 무엇인가를 묻는 우리 질문을 필연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현대를 반성하고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것, 그것이 프랑스 철학의 중요한 내용을 이루고 있으며 그래서 우리가 이것을 한번쯤 사유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현대에 대해 묻기 위해서는 현대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야겠죠. 


  현대는 영어의 modernity에 해당하는 표현입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포스트모던이라는 표현이 있지요. 탈현대, 현대를 벗어나는 것, 현대 이후에 오는 것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약간의 혼란이 빚어질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 modern은 근대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근대는 현대와 변별점을 두고 현대보다는 조금 더 전 시대를 일반적으로 일컫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근대와는 다른 현대인가, 이것을 나중에 답으로서 각자가 판단하게 될 때 이 말에 대한 핵심에 진입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더니티라는 말을 '근대성'으로 이해할 것이냐, 현대성으로 이해할 것이냐, 이것이 바로 철학, 사상, 인간의 이성을 바라보는 관점에 달린 문제라는 것입니다.



ⓒ pixabay



  modern이라는 말은 ‘방금’이라는 뜻의 라틴어 부사 modo에서, ‘최근의, 새로운’이라는 뜻의 형용사 modernus, 그리고 영어의 modern의 형태가 된 것입니다. 보다 근접한 것, 보다 가까이 있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죠. '근대'의 '근(近)'자가 가리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나 자신과 가까운 시기를 가리키는 말이 modern입니다.


  애초에 이 말의 맥락을 보죠. 4~5세기 로마인들은 이교도 시대를 벗어나 그리스도교를 믿게 된 시기, 그러니까 자신들의 지금 위치와 보다 가까운 시기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modernus라는 말을 사용한 것입니다. 현대라는 것은, 모던이라는 것은 ‘17세기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다’, ‘그 이전은 르네상스고 중세다’, 이런 방식으로 고정돼 있는, 달력상의 연대기상의 기간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모던은 바로 '나 자신과 가까이 있다'는,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과 태도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 철학자들의 글을 함께 읽어봅시다.



G. W. F. Hege ⓒ wikipedia



  헤겔의 <정신현상학>에 헤겔이 자기 시대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에 관한 다음과 같은 표현이 나옵니다.



우리의 시대가 탄생의 시대이며 새로운 시기를 향한 여명기임을 알아차리기란 어렵지 않다. 새로운 정신의 시초는 다양한 형식의 교양과 문화가 폭넓은 변혁을 거치고 난 결과로서 생겨나는 것이다.


─ 헤겔, <정신현상학>


  우리의 시대가 ‘탄생의 시대’이며 '새로운 시대'다. 모데르누스는 가까이 있다, 새롭다라고 말씀드렸지요. 바로 우리 시기를 새로운 시기, ‘모던’이라고 자기정체성을 확인하는 문장입니다.



Michel Foucault ⓒ wikipedia



헤겔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 우리가 다룰 중요한 프랑스 철학자 중 하나인 미셸 푸코가 현대성에 대해 연구하며 이런 문장을 썼습니다. 



현대성은 전통에 대한 결별, 새 것에 대한 감수성, 스쳐 지나가는 순간들에 대한 현기증과 같은 시간 불연속성에 대한 의식을 특징으로 한다.


푸코



  헤겔은 자기의 시기가 새로운 시대임에 틀림없다고 했습니다. 푸코는 '전통에 대한 결별'의 마음가짐이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던이라는 것은 물리적인 역사상의 시기가 아니라 자기가 자기를 이해하는 방식, 태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과거와 다르다, 여기서 모든 것이 새롭게 출발한다'는 자세가 바로 근대를 특징지으며 근대인을 특징짓는 것입니다. 이런 자세를 가진 사람은 그가 20세기에 살건 17세기에 살건 바로 '근대인', '현대인'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것입니다.



ⓒ pixabay



  누구나 다 자기 시대를 새롭게 이해하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과거에는 오히려 성현들이 옛부터 말해온 진리를 잘 배우고 지켜야 한다는 태도가 더 우세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모던이라는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이것을 완전히 변형시켜서 바로 지금부터 모든 것이 다시 시작한다, 지금은 과거와 결별하는 시대이다, 라는 태도를 지닙니다. 이 태도를 추동력으로 삼아 출현한 것이 바로 현대라는 시대이며, 현대의 눈부신 성과들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02. '현대 프랑스 철학'에서 '현대'라는 말을 이해해보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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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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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욱의 현대 프랑스 철학 강연] 연재는 서강대학교 철학과 BK21+ 사업팀과 반비가 함께하는 [2015 서강 철학 아카데미] 서동욱 교수의 <프랑스 철학의 위대한 시절> 강연에서 녹취한 내용을 텍스트로 옮긴 글입니다. 연재 내용은 제1강 <현대철학이란 무엇인가>를 세분화하여 구성하였으며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반비 블로그에 연재됩니다.




[서동욱의 현대 프랑스 철학 강연]


01. 왜 프랑스 철학인가?




  먼저 삐딱하게 질문해봅시다. 왜 독일 철학도, 영국 철학도, 한국 철학도 아닌 프랑스 철학인가? 왜 특정한 국적을 들고 나온 것인가? 사실 프랑스 철학은 현대철학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철학인 것은 분명합니다.



알랭 바디우 ⓒ wikimedia



  지금 생존하는 프랑스 철학자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 알랭 바디우입니다. 바디우가 프랑스 철학에 관한 글을 하나 썼는데요, 이 글에서 서양 철학의 아주 높은 생산성을 발휘하는 시기를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그게 바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출현한  고대 그리스, 그 다음에 칸트, 헤겔 등이 등장한 독일 관념론의 시대, 그리고 세 번째가 바로 현대 프랑스입니다.


  여러 프랑스 철학자들의 이름을 접해보셨을 겁니다. 푸코, 들뢰즈, 데리다 등… 이렇게 집중적으로 짧은 시간에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사상이 출현한 것이 바로 현대의 프랑스를 바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만으로 완전한 답이 될 수 있을까요? 유명한 사상가가 많고, 유명한 출판물이 많다고 해서 꼭 우리가 공부해야 하는 필요성이 있는 건 아니겠죠. 다음과 같은 문장을 함께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프랑스 철학이라는 분류법은 국경을 넘어 터져나가는 사상들을 묶어놓지 못하게 된 것이다. 사실 모든 철학자는 동지들을 찾아 움직이지 정부가 그려놓은 행정 구역을 따라 움직이지 않으니, 철학의 영역으로 들어선 프랑스가 세속의 국경을 저버리는 것은 당연하다.


─ 『싸우는 인문학』, 49쪽



  프랑스 철학이 단지 프랑스라는 국경 안에 묶여 있는 철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시대적인 정신을 표현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유럽 안에서 사상가들이 생각을 전개했을 때, 그들이 프랑스인이건 아니건 간에 국경을 넘어서 프랑스적인 사유를 따라 사상을 전개했고, 그런 관점에서 프랑스 철학의 중요성을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 저의 제안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현대 프랑스 사상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기에 이것을 공부해야 할까요? 유명한 철학자나 책이 많아서가 아니라면, 프랑스라는 국경 안에 갇혀 있는 사상이 아니라서라면, 도대체 프랑스 철학이라는 이름 안에서 어떤 주제를 다루고 있기에 우리가 이것을 공부해야 할까요? 이런 관점에서 이 강의는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질문에 응답하는 것이 이 강의의 목적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것은 바로 ‘현대’, ‘현대성’이라는 주제입니다.




02. '현대 프랑스 철학'에서 '현대'라는 말을 이해해보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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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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