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한 코끼리


by 최종욱, 김서윤


제 5부 장님 코끼리 만지기 프로젝트


    2장 장님 코끼리 만지기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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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와 우리는 정성스러운 보살핌 속에 무럭무럭 자랐다. 혹여 누가 코끼리 아니랄까 봐 쑥쑥 크는 모습이 하루가 다를 정도였다. 네 다리는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처럼 두꺼워졌고 코는 피노키오의 코처럼 늘어났다. 조련사들이 다가가면 장난을 걸 정도로 성격도 활발했다. 새끼 코끼리들의 재롱에 웃음을 터뜨리는 관람객들을 보면 입가에 절로 흐뭇한 미소를 지어졌다.

동화 작가 고정욱의 동화책 『코끼리를 만질 거야』(2012, 주니어랜덤). 작가가 ‘장님 코끼리 만지기 프로젝트’로부터 영감을 받아 쓴 책이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 프로젝트는 그다음 해에도 열렸다. 2회 때는 국립맹학교와 강원명진학교의 학생들이 참여했고 이번에도 역시나 기발한 예술 작품들이 탄생되었다.

하지만 이 코끼리들은 엄연히 코끼리월드라는 사기업의 재산이었다. 공연용으로 훈련된 코끼리들이 공연을 중단한 이후로 코끼리월드는 계속 적자를 기록했다. 우치 동물원에서 코끼리 타기 체험이 인기를 끌기는 했지만 이것만으로 수익을 내기는 어림없었다.

코끼리 매매 협상이 진행된 곳은 부산의 대공원이었다. 부산은 우리나라 제2의 도시라는 위치가 무색하게 몇 년째 동물원이 부재한 상태였다. 부산에서 새로운 동물원을 추진하던 관계자들은 이 코끼리들을 꼭 데려가고 싶어 했다. 그런데 여기도 돈이 문제였다. 공사비 문제로 착공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니 코끼리 매매 대금이 나올 구석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때 연락이 온 것이 일본의 후지 사파리 파크였다. 후지 사파리 파크는 전체가 사파리 형태로 되어 있는 동물원이다. 사실 김 회장은 코끼리들이 내심 한국에 남기를 간절히 바랐다. 김 회장에게는 그 귀한 코끼리들을 열 마리나 우리나라에 들여왔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곳도 선뜻 제 값에 코끼리를 구입하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후지 사파리 파크는 코끼리월드에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며 열한 마리 코끼리들을 모두 사겠다고 제안해 왔다. 결국 김 회장은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단, 열한 마리가 아닌 아홉 마리를 파는 조건으로.

코끼리들이 여러 모로 화제가 되자 광주시에서는 임대 상태인 코끼리를 정식으로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그렇다고 모든 코끼리를 다 구입할 수 있는 예산은 없으니 그중 선택된 것이 바로 봉이와 우리 모녀였다. 우치는 우치 동물원에서 처음 태어난 코끼리라는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수컷이라서 암컷보다 다루기 힘들다는 이유로 제외되었다. 봉이와 우리는 광주시에 입적되었다. 일종의 명예시민 같은 것이랄까. 이제 봉이와 우리는 평생 우치 동물원에 남게 된 것이다.

전국이 물난리로 떠들썩하던 2011년 7월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조용히 코끼리 수송이 이루어졌다. 거대한 수송 상자가 동물원에 도착했다. 쏘이와 우치 모자가 함께 들어갈 수송 상자는 그중에서도 특별히 더 컸다. 이번 수송을 위해 새로 제작된 것이다. 나는 두 코끼리의 건강을 체크했다. 모두 건강한 편이었지만 그래도 수송 중에는 과일, 야채 같은 연한 먹이만 주라는 둥 간섭을 조금 했다. 섭섭한 마음 때문이었나 보다.


▲ 수송용 우리 안에 들어가고 있는 코끼리. 우치 동물원에서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낯선 상자가 보이자 떠나는 코끼리도 남는 코끼리도 안절부절못해 요란하게 울어 대기 시작했다. 도저히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이래서는 우리에 싣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덕분에 내가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생겼다. 나는 떠나는 코끼리들에게 부랴부랴 코끼리용 진정제를 놓았다. 코끼리를 모두 우리 안에 넣는 데만 두 시간이 걸렸다. 일본에 도착하기까지 20시간 동안 그 비좁은 우리에서 버텨야 했다.

다음 날 봉이와 우리 모녀만 남은 코끼리 우리에 가 보니 한국인 사육사 둘이 부지런히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봉이와 우리는 여전히 불안한지 제자리를 자꾸 돌았다. 두 모녀는 결국 둘만의 생활에 적응할 것이다. 그래도 가끔은 친구들을 그리워하지 않을까. 특히 쏘이와 우치 모자를 말이다.


코끼리들은 우리나라를 떠났지만 ‘장님 코끼리 만지기’ 프로젝트는 또 다른 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7월 청주맹학교 학생들 여덟 명과 프로젝트 관계자들은 태국 치앙마이의 코끼리 자연 공원(Elephant Nature Park)에 도착했다. 물가의 넓은 초원에 조성된 이곳은 태국의 코끼리 보호 운동가 ‘쿤 렉’이 2003년에 설립했다. 쿤 렉은 동남아 어디든 병들고 지친 코끼리가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직접 가서 사다가 이곳에 풀어놓고 키웠다. 지상 최대의 코끼리 요양원, 더 고상한 말로 ‘힐링 센타’인 셈이었다. 이곳에는 수코끼리 네 마리를 비롯해 서른여섯 마리의 크고 작은 코끼리가 돌봄을 받고 있었다. 그중 여섯 마리 정도는 눈먼 코끼리, 네 다리중 하나를 못 쓰는 코끼리, 척추가 흰 코끼리 그리고 이제 갓 낳은 아기 코끼리였다. 운영비는 따로 후원을 받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의미 있는 체험을 원하는 유럽과 미국 출신 젊은 자원 봉사자들의 공정 여행비에서 나온다고 한다.



▲ 태국 치앙마이의 코끼리 자연 공원에서 있었던 ‘장님 코끼리 만지기’ 프로젝트의 모습.


  이곳에서의 ‘장님 코끼리 만지기’ 프로젝트도 우치 동물원에서 했던 것 못지않게 큰 울림을 남겼다. 아이들은 3일 동안 코끼리를 엿보고 냄새 맡고 만지면서 속으로 무엇을 보았을까? 코끼리는 눈으로보다 속으로 더 잘 보이는 동물이다. 물어보진 않았지만 그들은 나보다 훨씬 더 선명한 코끼리를 보지 않았을까 싶다. 이 모습들은 EBS에서 제작한 교육 대기획 10부작 ‘학교의 고백’ 제8부 <코끼리 만지기 프로젝트>에 담겨 전파를 탔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우리들의 눈’의 엄정순 회장은 최근 또 다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고향 태국을 떠나 일본을 거쳐 지금은 서울 대공원에 있는 코끼리 사쿠라를 다시 고향으로 돌려보내자는 운동이다. 시각 장애 어린이를 위해 시작한 일이 이제 코끼리라는 종에 대한 깊은 공감으로 확대된 것이다.

친구들과 헤어져 둘만 남은 봉이와 우리 모녀는 우치 동물원에 하루하루 지내고 있다. 암컷이라 수컷보다 키우기 쉬울 것이라는 이유로 선택된 우리는 기대를 저버리고 장난꾸러기로 자라고 있다. 벌써 힘이 장사라 내실의 철문을 망가뜨린 적도 있다.

코끼리들은 떠났지만 코끼리들이 남긴 질문은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물러 있다. 동물들도 이주자, 노동자로서 국경을 넘나드는 시대, 우리 사회가 이 동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곧 우리가 동물들과 함께 생존해 나가기 위한 물음이기도 하다.



"우리가 사랑한 코끼리" 블로그 연재는 이번 회가 마지막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사랑한 코끼리"를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다음에는 책으로 찾아가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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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ㅇ 2016.05.09 13:10

    좋은글 보고갑니다.



우리가 사랑한 코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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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부 장님 코끼리 만지기 프로젝트


    1장 코끼리와 시각 장애 아이들의 아름다운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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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님 코끼리 만지기 展 포스터



따스한 6월의 어느 날, 코끼리 우리에서 굉장히 특별한 행사가 시작되었다. 아이들 여러 명이 조련사들과 나의 안내에 따라 코끼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처음에는 쭈뼛거리다 이내 두 손의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 코끼리의 몸을 느끼기 시작했다. 코, 귀, 배, 다리, 꼬리……. 아이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 아이들은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 장애인이었다.

이 행사의 정식 명칭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 프로젝트. 시각 장애인들과 예술가들이 함께 하는 아트 프로그램 ‘우리들의 눈’의 회장이자 화가인 엄정순 씨가 기획했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 우화에서 모티프를 얻은 이 프로젝트는 시각 장애 어린이들이 말 그대로 코끼리를 만져 보고 얻은 느낌과 감정을 미술로서 표현하는 것이었다.

시작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전국 여러 동물원에 연락해 프로젝트의 취지를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지만 “안 돼요. 위험해요.”라는 대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심지어 시각 장애라는 말을 듣자마자 “장애인 할인 없습니다.” 하고 끊어 버린 곳도 있었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 프로젝트의 모습. 이 프로젝트가 성공한 데는 코끼리들의 공이 가장 컸다.


  그러다 유일하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곳이 바로 우치 동물원이었다. 엄정순 씨의 설명을 듣고서 나는 선선히 “네, 오세요.” 하고 말했다. 굳이 안 될 이유가 없었다. 아시아코끼리는 원래 성질이 온순하고 영리한 종이다. 관리만 잘해 주면 아시아코끼리가 사람을 해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몇 년 전 어린이 대공원에서 탈출해 난동을 피웠다고는 하나 사실 그때도 코끼리는 사람이나 자동차를 직접 공격하지 않고 요리조리 피해서 돌아다녔다. 이런 뜻 깊은 프로젝트에 우치 동물원의 코끼리가 함께한다면 오히려 영광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렇게 해서 서른세 명의 시각 장애 아이들이 멀리 인천에서 광주를 찾아왔다. 물론 여러 사람의 손길이 동시에 몸 구석구석을 훑으니 아무래도 코끼리 입장에서는 불편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조련사들이 연신 바나나를 건네며 “아이들을 위해 참아 주라. 옳지, 착하지.” 하고 코끼리들을 달랬다. 다행히 어떤 코끼리도 소동을 부리지 않고 그 시간을 잘 넘겨 주었다. 아이들의 간절한 마음이 코끼리들에게까지 전해졌나 보다.

그런 다음에는 수의사와의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다. 비장애인들보다 훨씬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한 아이가 물었다. “동물도 장애가 있나요?”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물론 있죠. 자연에서 장애는 곧 죽음이에요. 하지만 이곳에서는 아닙니다. 장애를 가진 동물이라도 저와 사육사들이 보살핌을 받기 때문에 잘 살아가고 있어요. 오히려 인기도 많아요.” 한 시간을 꽉 채우도록 이어지는 질문 세례를 받으며 나는 함께 신이 났다. 시각 장애 아이들이 아니라 그냥 보통 아이들처럼 느껴졌다. 아니, 어찌 보면 동물원에 갇혀 살아가는 동물들도, 또 동물을 돌보는 일 외의 다른 일에 서툰 나도 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우치 동물원의 코끼리들을 마음에 품고 돌아간 인천으로 돌아간 아이들은 하나같이 근사한 미술 작품들을 만들어 냈다. ‘앞을 전혀 못 보는 아이들이 웬 미술이람.’ 하는 의문이 드는가? 이 아이들의 작품을 본다면 그런 의문 따위는 싹 사라질 것이다. 나 같은 비장애인이 눈으로는 얻지 못했던 코끼리의 특징과 개성이 놀랍도록 잘 드러나 있다. 서울 정독 도서관 근처의 갤러리에서 열리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 展’은 여러 언론의 주목을 끌었다.

이 뜻깊은 프로젝트가 우치 동물원에서 10년이고 20년이고 계속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코끼리들의 사정은 그렇게 순탄히 흘러가지 않았다. 이별의 시간이 닥친 것이다.




 

 
코끼리 / 원희승(혜광학교)


◀ 카르타고 전쟁에서 싸우는 코끼리 / 한성현(서울맹학교)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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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부 코끼리, 빛고을 광주로 이사 가다


    7장 축 탄생! 아기 코끼리 우치와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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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의 임신을 진단한 후 7개월이 흘러 2010년 5월. 이미 지난 3월부터 우치동물원은 분만 대기 상태에 들어가 있었다. 외국에서 만든 코끼리 출산 비디오와 관련 도서를 참고해 출산 시나리오를 만들어 연습해 두었다. 분만 증세가 나타나기만 하면 곧바로 출산실로 옮길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사이 쏘이와 봉의 젖은 더욱 불어나고 배는 더욱 아래로 처졌다.

하지만 새끼들은 눈치가 없는 건지 약을 올리는 건지, 분만 예정일을 몇 달이나 넘기고도 여전히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쩌면 동물원 환경으로 인해 임신 기간이 길어졌을 수도 있다. 사방으로 개방된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과 끊임없이 접하다 보면 예민한 동물은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이다. 몸집이 큰 동물들은 주위 환경이 불안정할 때는 출산 시기를 조절해 분만 자체를 미루는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걱정은 되었지만 그렇다고 코끼리용 분만 촉진제가 있는 것도 아니라 그저 쏘이와 봉만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5월 말의 어느 날, 쏘이가 식욕 부진 증세를 보였다. 귀 뒤쪽의 체온도 뚝 떨어졌다. 출산 징후가 아닌가 싶었지만 조련사들의 판단은 농약 중독이었다. 저수지 근처에서 베어 온 풀이 농약에 오염되어 있어 탈이 난 것 같다고 했다. 쏘이는 농약 중독에 효과가 있는 아트로핀 주사만 맞고 그날을 넘겼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쏘이의 증세는 그다지 호전되지 않았다. 조련사들은 아예 쏘이와 봉의 방 옆 복도에 잠자리를 만들어 놓고 돌아가면서 밤새 지켜보았다.

하지만 이것은 농약 중독이 아니라 출산 징후가 맞았다. 며칠 후 아침에 보니 쏘이 곁에 떡하니 새끼가 나와 있었다. 관련 자료에 나와 있는 내용과는 달리 별다른 증상도 보이지 않다가 새벽에 조용히 새끼를 낳은 것이다. 봉이 가슴도 훨씬 더 많이 나오고 배도 더 불렀기에 쏘이보다 먼저 새끼를 낳을 거라는 예상도 빗나간 결과였다. 사람도 저마다 체질이 다르듯이 코끼리도 마찬가지다. 사람 중에도 순산 체질이 있고 난산 체질이 있다고 하던데 쏘이는 쉽게 쑥쑥 새끼를 낳는 복 받은 체질이었나 보다.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운 일이었다. 코끼리 출산 장면을 바로 눈앞에서 관찰할 기회를 놓쳤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다음에 올 봉의 출산은 더욱 철저히 준비했다. 봉의 몸상태를 수시로 관찰했고 내실에는 CCTV를 설치했다. <TV 동물농장>에서도 촬영하러 오기로 했다.

쏘이가 출산한 지 약 일주일 만인 6월 11일, 이번에는 봉의 차례가 되었다. 지금부터 코끼리의 분만 과정을 시간별로 최대한 자세히 풀어 보겠다.


6월 2일 아침 봉이 안절부절못하며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했다. 자꾸만 뿌우우 하고 큰 소리로 괴성을 지르기도 했다. 임신으로 처져 있던 엉덩이는 더욱 처져 있었다. 오줌에는 회백색의 진한 아교성 물질이 다량으로 섞여 있었다. 이것은 임신 기간 동안 자궁 입구를 막고 있던 젤라틴양 마개 물질. 전형적인 분만 신호였다. 마개 물질이 배출되면 24시간 안에 반드시 새끼가 나오게 되어 있었다.

젖이 조금 나온다면 이제 곧 출산이 시작될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겠지만 퉁퉁 분 젖꼭지를 힘주어 짜 보아도 젖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 조용한 내실로 봉을 데려갔다. 그리고 봉의 네 다리 중 두 개를 서로 묶었다. 태국에서는 코끼리가 새끼를 낳을 때 이렇게 한다고 한다. 흥분한 나머지 새끼를 밟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특히 봉같이 초산인 코끼리는 그럴 위험이 더 크다고 한다.

내실 안에는 봉 혼자만 남았다. 한눈에도 봉은 통증으로 신경이 날카로워져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봉을 도울 방법은 없었다. 코끼리는 출산할 때 방해를 받으면 새끼를 잘 돌보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아무도 내실로 들어가지 않고 CCTV 화면만 바라보았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TV 동물농장> 촬영팀 그리고 코끼리월드의 김회장과 정이사도 함께 자리를 지켰다.


6월 2일 오후 2시 봉은 오히려 진통이 잦아들어 잠잠해졌다. 언제 난리를 피웠느냐는 듯 느긋하게 풀까지 먹었다. 봉은 한밤중까지 기다리려는 모양이었다. 코끼리는 낮 시간을 피해 밤까지 분만을 미루는 분만 지연 현상을 보인다. 맹수들의 눈을 피해 안전하고 조용한 상태에서 새끼를 낳기 위해서다.


6월 2일 방 11시 봉의 진통이 심해져 갔다. 고통이 심하다 보니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숨소리도 거칠었다.

CCTV 화면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으려니 슬슬 지루함이 밀려 왔지만 이제 분만이 코앞으로 다가왔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화장실을 갈 때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자리에 앉아 CCTV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식사도 그 자리에서 떼웠다.


6월 3일 새벽 3시 갑자기 봉의 엉덩이 위쪽이 불쑥 튀어나왔다. 안쪽에서 무언가 내려오는 것처럼 엉덩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차례로 볼록볼록해졌다. 새끼가 산도로 진입한 것이었다. 코끼리는 생식 기관이 복부에 위치해 있어서 태아가 엉덩이 라인을 따라 수직으로 내려오게 된다. 약 5분 후 복부에서 하얀 주머니의 일부가 쑥 빠져나왔다. 태반이었다. 이제 새끼는 거의 다 나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조련사들은 담요를 들고 내실로 들어가 봉 곁에서 새끼를 기다렸다.

태반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다가 펑 터졌다. 그와 동시에 새끼가 엉덩이부터 쏟아져 나왔다. 코끼리 새끼는 80퍼센트가 이렇게 엉덩이부터 먼저 나오기 때문에 태아 상태에서 거꾸로 되어 있어도 별 문제가 없다. 두 번째 진통이 시작되고 채 10분도 안 되어 이 모든 과정이 마무리되었다. 외국의 자료를 보면 코끼리의 태아가 산도에 진입한 후로 분만까지 세 시간, 길게는 열두 시간이 걸린다고 되어 있던데 봉의 경우는 예상을 완전히 뒤엎고 순식간에 새끼를 낳았다.

새끼가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조련사들이 잽싸게 새끼를 담요에 싸서 내실 한구석으로 옮겼다. 그리고 새끼의 몸에 남아 있는 분비물을 구석구석 닦아 주었다. 태국에서는 해코지를 막기 위해 이런 식으로 새끼를 일단 어미로부터 격리한다고 한다. 봉은 방금 전에 자기 몸에서 새끼가 나왔는데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소리만 질러 댔다. 그사이 조련사들은 새끼를 들어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아무리 새끼라도 코끼리는 코끼리인지라 장정 여럿이 달라붙어야 했다.

초식 동물은 태어나자마자 스스로 벌떡 일어나 걸어다닐 수 있다. 새끼 코끼리는 갑자기 세상에 나온 것이 어리둥절한 듯 비틀비틀하는가 싶더니 곧 네 발로 버티고 서서 첫 걸음을 뗐다. 새끼의 몸이 건강하다는 증거였다. 새끼는 어미에 비해 참 작았다. 키가 70센티미터로 송아지 정도밖에 안 되었다. 물론 송아지보다는 훨씬 통통해서 80킬로그램이나 나가는지라 남자 네 명이 들기에도 벅찼다. 그래서 생김새가 송아지보다는 커다란 돼지에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코의 길이는 30센티미터 정도로 아직 짧았고 커다란 회색빛 눈이 참 선량하고 귀여워 보였다.


6월 3일 오전 8시 새끼가 나온 지 다섯 시간이 지나자 태반도 완전히 나왔다. 조련사들은 태반이 다 나왔으니 이제 새끼에게 젖을 물려야 한다고 했다. 새끼는 조련사들에게 이끌려 어미 곁으로 바짝 다가갔다. 조련사들은 새끼의 코를 젖혀 새끼의 입을 어미의 앞다리 사이에 있는 젖꼭지에 맞추어 주었다. 그런데 봉은 자기 자식도 못 알아보고 완강히 피하며 새끼를 거부했다. 코끼리들은 서로 코를 말아 냄새를 맡으며 서로의 유대감을 표현하는데 전혀 그럴 기미가 안 보였다. 어미가 그렇게 나오니 새끼도 잔뜩 겁을 먹고 뒷걸음질 치기만 했다. 할 수 없이 새끼를 다시 복도로 끌고 나왔다.

태어난 후로 계속 아무것도 못 먹은 새끼는 어미 젖 대신 사육사의 손가락만 자꾸 빨았다. 배고파할까 걱정되어 소젖을 짜듯 어미의 젖이라도 짜서 먹이기로 했다. 봉의 가슴은 겉보기에는 퉁퉁 부어 있는데도 의외로 젖은 조금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새끼의 건강에 필수적인 초유인지라 열심히 짜서 커다란 우유병에 담아 새끼에게 남김없이 다 먹였다. 새끼는 우유병을 쭉쭉 빨고는 더 달라는 듯 입맛을 다셨다.


6월 3일 오전 9시 다시 젖 물리기를 시도했다. 하지만 봉은 조금 더 부드러워지긴 했어도 젖을 허락하지는 않았다. 실패였다.


6월 3일 오전 10시 세 번째로 젖 물리기를 시도했다. 또 실패였다. 대신 계속 어미의 젖을 짜서 먹였다.


6월 3일 오전 11시 이제는 새끼도 어미의 곁으로 가지 않으려고 했다. 조련사들은 내실 한쪽에 울타리를 치고 새끼를 넣어 두었다. 어미와 새끼가 가까이에서 서로 냄새를 맡으며 익숙해지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노력한 덕분인지 네 번째 시도 끝에 겨우 새끼는 어미의 젖을 빨기 시작했다. 봉은 그제야 새끼가 익숙해졌는지 피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이때부터 모성 본능을 회복한 봉은 새끼를 끔찍이 사랑하는 진짜 엄마가 되었다. 정말 보기 좋은 그림이었다. 출산 후 가장 큰 고비를 넘기는 벅찬 순간이었다. 어미젖을 먹으며 자란 새끼는 생존율이 90퍼센트가 넘는다. 코끼리 출산이 완벽한 성공을 거두었음이 분명해졌다.



우치동물원에서 태어난 최초의 코끼리 ‘우치’. 우치동물원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쏘이의 새끼는 수컷, 봉의 새끼는 암컷이었다. 어머니는 달라도 아버지가 같으니 이복 남매인 셈이었다. 며칠 후 사육사들은 새끼 코끼리들의 다리에 무명실을 감고 온몸에 물을 뿌려 주었다. 동남아시아에서 코끼리가 태어나면 하는 의식으로, 무명실은 우리나라의 돌상에서와 마찬가지로 장수를 의미한다.

남매 중 오빠는 ‘우치’, 여동생는 ‘우리’라고 이름 붙여졌다. 우치는 당연히 우치동물원에서 따온 이름이고 우리는 ‘우리 코끼리’에서 따온 이름으로, 합해서 ‘우리 우치동물원’을 뜻했다.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우치와 우리는 우치동물원 역사상 최대의 자랑거리였다. 그리고 이 이름에는 새끼 코끼리들이 앞으로도 우치동물원에서 죽 살아가기를 염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SBS에서 방영 날까지 언론 통제를 부탁해서 코끼리들의 탄생을 더욱 대대적으로 홍보하지 못한 점이 조금 아쉽다.

그런데 이름에 담긴 희망과는 정반대로 코끼리들의 운명은 우치동물원으로부터 슬금슬금 멀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조금 뒤로 늦추어야 한다. 이 코끼리들이 이 땅에서 준 가장 큰 선물에 얽힌 사연이 우치동물원에서 펼쳐지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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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부 코끼리, 빛고을 광주로 이사 가다


    6장 코끼리의 임신을 확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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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들이 우치동물원에 자리를 잡은 다음 해 봄, 무언가 심상치 않은 점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열세 살 동갑내기 암컷 코끼리 쏘이와 봉이 다른 암컷 코끼리들에 비해 젖이 퉁퉁하게 불고 엉덩이 살이 축 처지고 배가 부쩍 나와 있었다. 조련사들은 임신한 것이라 장담했다. 쏘이와 봉의 애인으로 지목된 수컷 코끼리는 템. 가장 영리하고 눈치가 빨라서 공연을 할 때 가장 돋보이던 녀석이었다. 인간 사회에서도 능력 있는 남자가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듯이 재주꾼 템은 두 처자의 마음을 동시에 사로잡았던 것이다.


자연 상태에서 코끼리는 모계 사회를 이룬다. 엄마, 이모, 자매로 이루어진 암컷 코끼리 무리가 함께 새끼를 키운다. 수컷은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무리에서 떨어져 나가 홀로 다니거나 다른 몇몇 수컷 코끼리들과 어울려 다닌다. 성인이 된 암컷 코끼리와 수컷 코끼리가 함께 있는 것은 발정기 때뿐이다. 그래서 코끼리월드에서도 우리 안에서 암컷과 수컷을 떨어뜨려 두었다가 발정기가 되면 합방을 시켰다. 2007년 10월에서 2008년 4월까지가 바로 그 시기였다. 조련사들은 2007년 10월에서 12월 사이에 템이 쏭이, 봉과 각각 교미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했다.

하지만 임신을 확신하기에는 애매한 점도 있었다. 쏘이와 봉의 배에서 태동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야 코끼리의 피부가 워낙 두꺼우니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여름이 지나 가을이 무르익도록 출산 기미가 없는 것은 이상했다. 코끼리의 임신 기간은 무려 22개월. 포유류 중 임신 기간이 가장 긴 축에 든다. 그렇다면 2007년 12월 말에 임신이 됐다고 가정했을 때 2009년 10월이면 새끼가 나와야 하건만 쏘이와 봉에게서는 아무런 낌새도 보이지 않았다.

 우치동물원으로서는 한 마리도 아닌 두 마리 코끼리의 출산에 대비하기 위해 임신 여부를 확실히 해 둘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출산 예정일도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 알아낼 것이냐가 문제였다. 동물원에서는 임신 진단이 빈번하게 이루어질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다만 기린, 코뿔소, 북극곰같이 새끼가 무척 귀한 동물에 한해 간혹 실시할 뿐이다. 그나마도 우리나라에서 코끼리의 임신 진단이 이루어진 일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 1988년 어린이대공원의 코끼리 출산을 알리는 신문기사.

 1995년 서울대공원의 코끼리 출산을 알리는 신문기사.


 

코끼리 출산 자체가 전무했던 것은 아니다. 어린이대공원에서는 1988년 암컷 코끼리가, 1995년 수컷 코끼리가 태어났고 서울대공원에서는 1994년 수컷 코끼리가 태어났다. 어린이대공원에서 태어난 코끼리들은 안타깝게도 어린 나이에 죽었고, 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난 코끼리는 삼돌이라는 이름으로 부산 동래동물원을 거쳐 현재 대전오월드에 있다. 하지만 이 새끼 코끼리들의 경우는 임신과 출산 과정이 공식적으로 기록되어 있지는 않다. 출생 사실만 신문 한 귀퉁이에 작게 실렸을 뿐 임신과 관련된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어린이대공원이나 서울대공원에서 임신을 확신했다면 임신을 알리는 언론 보도가 먼저 나왔을 것이다. 게다가 그 귀한 새끼를 자랑하고 홍보하기는커녕 다른 동물원으로 보내 버린 것은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이보다 앞서 창경원 동물원에서는 코끼리 임신을 둘러싸고 기자들 사이에 한바탕 특종 소동이 벌어진 적도 있었다. 1978년 3월 지금은 폐간되어 사라진 신아일보라는 일간지 사회면에 ‘국내 최초! 창경원 코끼리 임신 - 사육사들 확인, 어미 코끼리 돌보기 초비상’이라는 내용의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특종을 놓친 다른 신문 기자들은 일제히 창경원으로 달려갔다. 코끼리 임신이라는 중요한 일을 어떻게 한 신문에만 특종으로 줄 수 있느냐는 항의가 동물원장과 사육과장에게 쏟아졌다. 그런데 동물원장이나 사육과장이나 어리둥절하기는 기자들보다 더했다. 이들도 코끼리 임신은 금시초문이었던 것이다.

결국 코끼리 조련사가 불려 왔다. 조련사는 처음에는 코끼리 임신을 입에 올린 적도 없다고 고개를 저었지만 곧 사실을 실토했다. 전날 저녁 신아일보 기자가 찾아와 다짜고짜 “코끼리 한 쌍이 교접을 했는데 알고 있느냐?”고 물은 것이 화근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이런 대화가 오갔다고 한다.

“최근은 아니고 한 달 전쯤 보았지.”

“임신한 것 아닌가?”

“정말 그러면 얼마나 좋아, 우리 동물원에서 코끼리가 새끼를 낳는 첫 케이스가 되는데.”

“코끼리 임신 기간이 얼마나 되나?”

“어, 그게…….”

“명색이 사육사가 임신 기간도 모르다니 기사감이네.”

은근슬쩍 겁을 주던 신아일보 기자는 “아무튼 이 얘기는 없었던 걸로 하지.” 하며 돌아갔다. 그런데 덜컥 코끼리 임신 기사가 나온 것이다.

약이 오른 기자들은 창경원에 코끼리 임신 테스트를 하자고 요구했다. 다른 신문의 특종을 정면으로 뒤집으려면 과학적 근거가 필요했다. 하지만 창경원은 이를 거부했다. 교접하는 것을 보았다고 임신이라 단정할 수 없으며 덩치 큰 동물에게 약물 테스트를 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이유였다. 대신 창경원은 ‘태국에서 들여온 코끼리가 임신했다는 일부 보도는 절대 사실이 아니며, 창경원은 임신했다는 코끼리가 정말 새끼를 낳을 가능성은 없다고 확신한다.’는 내용의 해명서를 기자실에 배포했다. 코끼리 임신 소동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경향신문이 「창경원 동물가족 대가 끊긴다」는 제목으로 창경원 동물들의 서식 환경을 비판하는 기사를 내며 뒤끝을 과시하긴 했지만.1)

아마도 창경원이 코끼리 임신 테스트를 거부한 가장 큰 이유는 그런 테스트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경험도 지식도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약 15년 후 서울대공원도 코끼리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눈대중으로 짐작만 하고 있다가 출산을 맞이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동물원에서의 코끼리 탄생은 말로는 간단한 것 같아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코끼리는 주위 환경에 예민한 동물이라 동물원처럼 좁은 환경에서는 성적 행동을 발휘할 확률이 정상의 20퍼센트 정도로 뚝 떨어진다. 가까스로 임신에 성공하더라도 유산하거나 사산할 확률이 40퍼센트를 웃돈다. 650일이나 되는 임신 기간을 무사히 지나 세상에 나온 새끼도 안심할 수 없다. 성인이 될 때까지 생존할 확률은 50퍼센트가 채 안 된다. 만약 우리나라 동물원에 모두 100마리의 코끼리가 있다고 가정하면 해마다 새끼 코끼리 한 마리만 탈 없이 자라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실제로 2008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 있는 코끼리는 서른 마리 정도인 데다가 코끼리월드와 점보빌리지에서 보유한 스무 마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암수 모두 나이가 너무 많거나 짝이 없었다. 그러니 두 마리나 임신 중인 것이 사실이라면 거의 기적에 가까운 놀라운 사건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동물에 대한 임신 진단이 가장 자주 이루어지는 곳은 대관령 목장일 것이다. 이곳에서는 젖소들의 임신과 출산이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다. 소의 임신을 확인하는 방법은 수의사가 직장에 손을 넣어 보는 것이다. 직장이 자궁 바로 위에 위치해 있어서 얇은 직장 벽으로 태아나 태반 또는 임신 혈관의 존재를 알아낼 수 있다. 요즘에는 정확성을 더욱 높이기 위해 작은 초음파 기기를 이용하는데, 이때도 수의사가 초음파 기기를 쥔 손을 직접 소의 직장에 넣어야 한다. 호주의 어느 동물원에서는 코끼리에게도 이와 똑같은 방법으로 임신 진단을 했다고 하던데 우치동물원에서는 조련사들의 반대로 시도해 볼 수 없었다. 직장에 사람 손이 들어간 상태에서 코끼리가 흥분하면 수의사가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코끼리 임신을 확인하기 위해 먼저 우치동물원에서 가까운 수의 대학에 문의했다. 하지만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대학에서 보유하고 있는 장비로는 코끼리의 덩치를 감당하기에 무리라고 했다. 그다음에는 국내 모 동물원의 연구 기관에서 동물 똥으로 임신 여부를 진단한다는 소식을 듣고 연락해 보았다. 연구 기관의 답변은 긍정적인 답변이었다. 열흘 동안 매일 한 차례씩 쏘이와 봉 그리고 임신하지 않은 다른 암컷 코끼리이 갓 싼 신선한(?) 똥을 기다리고 있다가 얼른 봉지에 넣어 열흘 동안 냉장 보관한 후 택배로 연구 기관에 보냈다. 제3의 코끼리의 똥까지 함께 보낸 것은 호르몬 수치를 비교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진단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쏘이와 봉이 임신이 맞다면 호르몬 수치가 달라야 하건만 세 마리 모두 엇비슷했다. 연구 기관에서는 그냥 상상임신인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렸다.



▲ 쏘이와 함께 포즈를 취한 조련사 우왓. 이때 서른다섯 살로 한국 생활 5년째였다.



  이때 우왓이라는 이름의 태국 출신 조련사가 희망을 지펴 주었다. 조련사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축에 들었던 우왓은 그만큼 경험도 많은 조련사였다. 우왓에 따르면 태국에서도 코끼리 똥을 가지고 같은 방법으로 임신 검사를 한 적이 있는데 대부분의 코끼리가 음성이라는 결과가 나왔음에도 새끼를 낳았다고 했다. 우왓은 임신한 코끼리를 여러 번 보았다며 쏘이와 봉도 임신한 상태가 확실하다고 장담했다.

조련사들은 굳이 꼭 확인해 보아야 아냐는 듯 이미 쏘이와 봉을 임신부로 대접하며 특별 관리에 들어갔다. 밤이면 우리 안에서 가장 안쪽에 모시고 다른 코끼리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막았다. 또 낮에는 적당한 운동을 시켰다. 새끼가 너무 커져서 출산이 어려워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캄텐은 이렇게 설명했다.

“코끼리도 사람처럼 임신했는데 운동 안 하면 힘들고, 가만히 있으면 몸에 좋지 않잖아요.”2)

이 와중에 SBS 「TV 동물농장」 제작진이 “요새는 뭐 재밌는 일 없나요?” 하고 전화를 걸어왔다. 인간과 동물의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을 목표로 하는 「TV 동물농장」은 2001년 처음 방송되어 이제 10년이 훌쩍 넘은 장수 프로그램이다. 우치동물원은 「TV 동물농장」과 이미 몇 번의 촬영을 함께 진행한 적이 있었다. 진료실에서 수의사의 손에 자라는 새끼 불곰 우미, 거칠지만 맘씨 좋은 쌍봉낙타 봉봉이 등이 「TV 동물농장」을 통해 소개되었다. 제작진은 매주 한 번씩 전화를 걸어 새로운 촬영 소재를 문의하곤 했다. 이번에도 그런 차원의 전화였을 뿐 특별히 무엇을 더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달리 특별한 일은 없고 다만 코끼리 임신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제작진은 이것이 흥미로운 방송이 될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며칠 후 「TV 동물농장」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그사이 제작진은 아는 수의사들에게 연락해 코끼리 임신 진단 방법을 문의해 보았다고 했다. 그중 한 수의사가 미국에서 초음파 장비로 임신 진단을 하는 모습을 직접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서울에서 대인종합동물병원을 운영하는 최영민 수의사였다. 제작진은 그 초음파 장비를 제작한 회사에 연락해 협조를 구하기까지 했다. 만사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촬영 날짜가 잡혔다.

2009년 11월 초 「TV 동물농장」 제작진이 코끼리용 초음파 장비를 싣고 우치동물원에 도착했다. 평소에는 담당 피디만 오는데 이때는 제작부장도 함께였다. 그만큼 제작진이 이번 촬영에 신경 쓰고 있음이 눈에 보였다. 최영민 수의사도 함께였다. 이 초음파 장비의 원리는 일반 산부인과에서 산모를 대상으로 하는 초음파 검사와 동일하다. 복부에 초음파 프로브를 대고 이리저리 문지르면 화면에 태아의 형상이 잡히는 것이다. 하지만 원리는 같아도 실제 진단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코끼리의 배는 제 아무리 뚱뚱한 산모의 배보다 몇 배나 넓은 데다, 위쪽을 향하도록 몸을 뒤집을 수도 없었다. 먼저 쏘이의 몸 아래로 들어가 어정쩡한 자세를 취해야 초음파 프로프를 배에 댈 수 있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코끼리가 흥분해서 움직이지 않도록 신경 써야 했다. 옆에서 보기에는 상당히 위험천만한 광경이었다.



▲ 초음파 장비 화면에 나타난 코끼리 태아의 갈비뼈.



  코끼리 태아의 형상은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초음파 프로프를 계속 움직이며 세 시간이 넘게 낑낑댔다. 거의 사막에서 바늘 찾기였다. 임신을 확인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점점 옅어져 갔다. 너무 힘들어 거의 단념할 무렵, 갑자기 화면에 희끄무레한 무엇이 나타났다. 최영민 수의사가 초음파 프로프를 잡은 손을 고정시킨 상태에서 화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척추동물의 갈비뼈와 등골이 분명했다. 이 초음파 장비는 최신형이라 소리까지도 잡아낼 수 있었다. 이것이 태아의 갈비뼈가 맞다면 그 안쪽에 심장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태아가 살아 있다면 심장 소리가 들려야 했다. 태아의 위치를 알아냈으니 이제 목표는 심장 소리를 확인하는 것에 맞추어졌다. 30분 동안 갈비뼈 하나하나를 훑고 또 훑었다. 마침내 하얗게 반짝이며 팔딱팔딱 뛰는 작은 심장이 뚜렷이 모니터에 나타나면서, 동시에 그 심장이 힘차게 콩콩 뛰는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살아 있는 코끼리 태아의 존재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만약 몇 달 일찍 검사했다면 아직 태아가 아래쪽으로 충분히 내려오지 않아 초음파 장비로도 확인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반대로 몇 달 늦게 검사했다면 태아가 너무 커져서 피부가 두꺼워 역시 확인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딱 적당한 시기에 검사한 덕분에 태아의 갈비뼈를 생생하게 잡아 낼 수 있었으니 운이 무척 좋았던 셈이다.


쏘이에 이어서 봉을 검사할 때는 훨씬 더 빨리 태아를 찾아낼 수 있었다. 분만일은 2010년 봄으로 예상되었다. 「TV 동물농장」의 카메라는 이 모든 과정을 빠짐없이 담았다. 이 방송은 11월 22일 전파를 탔다. 주요 일간지에도 기사가 실렸다. 우리나라의 주요 도시 중 가장 오랫동안 코끼리가 없었던 도시 광주에서 이제는 새끼가 두 마리나 태어나게 된다는 소식은 광주 시민들에게 큰 화제가 되었다. 광주 시장이 우치동물원을 찾아와 코끼리 순산을 당부하기도 했다.

귀하신 몸이 된 쏘이와 봉은 코끼리 타기 체험에서도 제외되었다. 조련사들의 지시에 따라 약간의 운동을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휴식을 취했다. 태아에게 영양소를 뺏겨 어미가 약해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비타민과 미네랄이 함유된 특수 사료도 먹었다. 영양제 주사를 맞기도 했다. 그렇게 코끼리의 탄생은 하루하루 다가왔다.



▲ 코끼리 임신 소식에 우치동물원을 찾은 박광태 광주 시장. 이날 현장학습을 나온 어린이집 원생들과 함께 코끼리에게 당근을 주고 있다.





1) 네이버캐스트 「그 시절 그 이야기 - 코끼리 임신 소동」(2010.3.17)


2) TV동물농장 「코끼리 임신」(2009.11.22)


 

posted by Banbi Editor!



우리가 사랑한 코끼리


by 최종욱, 김서윤


제 4부 코끼리, 빛고을 광주로 이사 가다


    5장 영화, 드라마, CF…… 끼리의 화려한 연예계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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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일보

 『아이다』의 개선 장면에 맞추어 분장한 코끼리들과 조련사들.  광고계에서 흔히 언급되는 용어로 ‘3B’라는 것이 있다. 미인(Beauty), 아기(Baby), 동물(Beast)가 모델로 등장하는 광고는 성공한다는 법칙이다. 이 법칙은 꼭 광고에서만이 아니라 시각적 효과를 노리는 분야에서 두루두루 통용된다고 할 수 있다. 동물 중에서도 코끼리는 소비자에게 친숙한 동시에 그 압도적인 몸집으로 인상적인 효과를 남긴다. 하지만 일반 동물원의 코끼리는 본격적으로 훈련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촬영이나 행사에 동원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러니 이미 공연용으로 잘 훈련된 코끼리들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것은 당연했다.

2003년 9월 잠실 주경기장에서     대형 야외 오페라 『아이다』의 막이 올랐다. 넉 달 전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공연한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의 여운이 채 식지 않았을 때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시도되는 대형 야외 오페라였던 『투란도트』는 중국 출신의 세계적인 영화감독 장이모우가 연출했다. 총제작비가 50억 원, VIP석 가격이 50만 원이나 되어 무모한 시도라는 우려가 컸지만 나흘 동안 11만 명의 관객을 모아 흑자를 달성했다. 그 성공을 뛰어넘겠다고 나선 작품이 『아이다』였다. 베르디가 작곡한 이 오페라는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이집트의 장군 라마데스와 에티오피아의 공주 아이다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투란도트』의 화려함을 뛰어넘기 위해 『아이다』의 기획사는 제2막 라마데스 장군의 개선 장면에 공을 들였다. 개선 행진곡에 맞추어 코끼리를 포함한 70여 마리의 동물, 1000여 명의 엑스트라, 열두 대의 전차가 공연장인 잠실 주경기장 트랙을 한 바퀴 돌게 한다는 계획이었다. 10분도 채 안 되는 이 한 장면에만 총제작비 80억 원 중 10억 원이 투입되었다.

그해 9월 코끼리들은 인천과 서울을 오가며 연습을 시작했다. 송도 유원지에 도착한 지 석 달 만이었다. 연습이 없는 않는 날에는 원래대로 공연을 해야 했다. 조금이라도 코끼리의 피로를 줄이기 위해 무(無)진동 컨테이너에 탄 채 이동했다. 이때는 아직 한 마리가 갑작스럽게 죽기 전이라 모두 열 마리였다. 함께 출연하게 된 조련사들도 이집트 병사로 분장한 채 코끼리 등에 올라탔다. 코끼리들은 조련사들이 이끄는 대로 잠실운동장 안을 뱅뱅 돌았다. 코끼리 외에 말 55마리와 낙타 여섯 마리도 개선 행렬에 포함되어 있었다.

『투란도트』의 열기가 이어진 덕분에 『아이다』 역시 큰 화제가 되었다. 원래 두 번으로 예정되어 있던 공연이 세 번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최고 60만 원이나 되는 티켓 가격이 문제였을까. 『아이다』는 40억 원 적자라는 처참한 성적을 남겼다. 하이라이트인 개선 장면은 ‘동물 쇼’ 때문에 예술적 완성도가 희석되었다는 혹평을 받았다.1) 동물들의 행진이 질서 정연하지 못해 군대다운 분위기가 나지 않기도 했지만 더욱 난감한 문제는 동물들이 행진 도중에 대변을 보는 바람에 관람객들이 악취에 시달린 것이었다.


2008년 6월부터 8월까지 KBS에서 방영된 「최강칠우」는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무협 사극을 표방한 드라마다. 에릭이 연기한 최칠우는 낮에는 의금부의 하급 관리로 일하지만 밤만 되면 악인을 처단하는 자객단의 일원으로 변신한다. 「최강칠우」 6회에서 마을 어린이들이 자객단을 찾아와 코끼리를 없애 달라고 부탁한다. 이 코끼리는 인조가 청나라으로부터 선물받아 정3품 벼슬을 하사한 귀한 몸. 코끼리를 맡은 지방 관아 주변에 사는 백성들은 코끼리가 먹을 쌀을 대느라 허리가 휜다.

이거 어디서 본 상황이 아닌가. 그렇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한반도 최초의 코끼리 이야기와 흡사하다. 「최강칠우」의 연출을 맡은 박만영 피디는 이 드라마가 퓨전 사극이 아니라 정통 사극이라고 강조하며, 극본의 기본 바탕은 조선왕조실록에 근거했다고 밝힌 바 있었다.2)


▲ 「최강칠우」의 한 장면. 백성들이 코끼리의 먹이를 바치고 있다. (ⓒ KBS)



▲ 촬영 도중에 코끼리에게 장난을 치고 있는 주연 배우 에릭. (ⓒ KBS)



  하지만 태조가 아닌 인조로, 일본이 아닌 청나라로 설정이 조금씩 바뀌었듯이 이후의 전개도 기록과는 다르다. 최칠우는 코끼리를 없애겠다며 관아로 가지만 알고 보니 코끼리는 쌀이 아닌 풀만 먹는다. 군수가 코끼리를 핑계로 쌀을 거두어 착복하고 있었던 것. 진실은 알게 된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자 군수는 쌀과 돈을 남긴 채 줄행랑을 쳐 버린다.

촬영이 있던 날, 코끼리는 조련사, 코끼리랜드 관계자와 함께 새벽에 어린이대공원을 출발해 오전 9시에 촬영지인 경상북도 문경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캄’이라는 암컷 코끼리 한 마리뿐이었다. 아역 배우들은 캄과 이미 구면이었다. 제작사에서 아역 배우들을 미리 어린이대공원에 데려가 캄과 친밀감을 쌓게 했기 때문이다.

코끼리는 촬영장의 귀빈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날 하루 코끼리의 출연료가 1천만 원이었다. 코끼리가 현장에 어느 정도 적응하자 오전 10시에 촬영이 시작되었다. 코끼리는 저잣거리를 지나는 장면, 쌀을 바치는 백성들 옆에 서 있는 장면, 지방 관아의 우리 안에서 풀을 먹는 장면 등을 촬영했다.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에릭은 촬영을 쉴 때면 코끼리를 쓰다듬고 직접 당근을 먹이기도 했다.

700만 명을 동원하며 2008년 최고 흥행작으로 기록된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도 코끼리가 출연했다. 이 영화의 배경은 1930년대 만주. 현상금 사냥꾼 박도원(정우성), 마적단 두목 박창이(이병헌), 열차털이범 윤태구(송강호)가 청나라 보물 지도를 놓고 서로 쫓고 쫓기는 숨 가쁜 추격전을 벌인다. 영화 속 주요 공간 중 하나인 귀시장은 이국적인 풍광과 스펙터클한 액션을 함께 보여 주는 장소다. 김지운 감독은 귀시장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귀시장은 이를테면 청계천 같은 공간이다. 어렸을 때는 청계천 상가에서 잠수함이나 인공위성까지 만든다는 설도 있었다. (웃음) 그런 청계천의 만주식 변용을 만들려고 했다. 그래서 온갖 것이 다 있는 거다.”3)

귀시장 세트는 전라북도 정읍에 마련되어 있었다. 「최강칠우」 촬영 때와 마찬가지로 코끼리는 새벽같이 어린이대공원을 나서 촬영장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코끼리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던 「최강칠우」와 달리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 코끼리가 등장하는 장면은 찰나에 불과하다. 윤태구가 귀시장 안을 걸을 때 그 앞을 잠시 스쳐 지나갈 뿐이다. 코끼리 외에도 호랑이, 낙타, 늑대 등이 등장해 이날 촬영장은 마치 동물원을 떠올리게 했다. 한국 영화사상 이렇게 다양한 동물이 등장하는 영화는 처음이었다.


  실제로 1930년대 만주의 시장에서 코끼리를 볼 수 있었을까.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 ‘시대적 고증에는 관심 없이 이국적인 풍광으로 채우는 오락 영화’4)라거나 ‘귀시장은 30년대 만주라기보다 「스타워즈」의 타투인 행성 같은 느낌이 난다.’5)는 평에서 알 수 있듯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그 당시의 모습을 역사적으로 충실히 재현하기보다는 감독의 원하는 판타지적인 공간을 구현하는 데 힘쓴 것으로 짐작된다. 코끼리는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소품으로서 기능했던 셈이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한 장면. 귀시장을 찾은 윤태구(송강호) 앞으로 코끼리가 지나간다.




▲ 대한항공 CF에 등장한 코끼리. 이 코끼리 수송용 우리는 CF용으로 따로 제작된 것이다.


▲ 실제 코끼리 수송용 우리의 모습. 주변으로부터 시선을 차단해 코끼리의 동요를 막아 준다. 코끼리들이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하던 당시의 뉴스 화면이다.


  코끼리는 텔레비전 CF에도 등장했다. 2011년 방영된 대한항공 CF였다. 기존의 항공사 CF가 주로 좌석의 편안함이나 해외 여행지의 풍광을 강조한 데 비해 이 CF는 화물 운송에 초점을 맞추었다. 대한항공이 국제 항공 화물 분야에서 6년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한 것을 홍보하는 CF였기 때문이다. 이 CF에서 코끼리는 자동차, 말과 함께 대한항공이 운송하는 화물 중 하나로 등장한다.

실제로 대한항공이 운송한 코끼리는 제주도의 점보빌리지에 있는 코끼리이고 코끼리월드의 코끼리는 아시아나항공의 화물기를 통해 옮겨졌다. CF에 나오는 코끼리 우리도 실제로 코끼리를 옮길 때 쓰인 우리와 달랐다. 코끼리 우리는 코끼리가 밖을 내다보고 불안해하지 않도록 나무판으로 덧대어 있어서 언뜻 보면 안에 코끼리가 있다는 것을 알아채기 힘들다. 하지만 어차피 이런 세세한 사항들은 CF 안에서는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코끼리들은 지금은 종영된 KBS 「체험 삶의 현장」의 단골손님이었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해마다 한 번씩 모두 다섯 번 출연했다. 연예인들이 코끼리들을 찾아 식사 준비하기, 목욕시키기, 우리 청소하기, 공연 연습하기 등을 체험하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일일 코끼리 조련사로 일한 연예인들은 가수 코요테, 개그우먼 김다래, 가수 더 자두, 개그맨 표인봉과 개그우먼 함효주, 탤런트 신신애였다. 하지만 코끼리들이 우치동물원으로 옮긴 이후로는 섭외가 뚝 끊겼다. 코끼리 조련사 체험은 언제나 공연 성공으로 마무리되었기에 공연이 없는 우치동물원에서는 그림이 안 나온다고 판단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코끼리들은 클래식 공연부터 오락 방송까지 종횡무진 활약했지만 특히나 의미 있었던 출연은 단연 SBS 「TV 동물농장」에 나온 것이었다. 이 방송의 제목은 「코끼리 임신?!」이었다.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1) 세계일보 「야외 오페라 ‘아이다’가 남긴 교훈」(2003.9.23)


2) 조이뉴스24 「‘최강칠우’ PD “퓨전 사극 아닌 정통 사극”」(2008.6.4)


3) 씨네21 「[김지운] “극단의 시청각적 쾌감을 느껴 보라”」(2008.7.22)


4) 한겨레신문 「새해 충무로 시계는 거꾸로 돈다」(2007.12.23)


5) 씨네21 「[김지운] “극단의 시청각적 쾌감을 느껴 보라”」(2008.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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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코끼리


by 최종욱, 김서윤


제 4부 코끼리, 빛고을 광주로 이사 가다


    4장 코끼리에 대한 사랑일까 아니면 학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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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학교에서는 세 살 안팎의 어린 코끼리만 받는다. 공연용 코끼리로서 조기 교육을 시키는 셈이다. 그리고 함께 입학한 소년들은 코끼리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조련사로 성장한다. 코끼리의 수명이 60살 정도이니 라오스에서 코끼리와 한 번 인연을 맺은 조련사는 거의 한평생을 같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끼리와 조련사의 관계는 단순히 주인과 가축 사이라 하기에는 좀 더 복잡하다. 코끼리들에게 조련사는 언제나 옆에 있는 가족이자, 자신의 몸짓 하나하나에 신경을 기울이는 연인이자, 건강을 돌보아 주는 주치의다. 하지만 이 관계의 바탕에는 폭력이 깔려 있다.



어린 코끼리에게 공연용 동작을 연습시키는 모습. 왼쪽의 조련사가 손에 든 것은 과일을 딸 때 쓰는 날카로운 도구다. 코끼리가 제대로 하지 못하면 이 도구로 찔러서 고통을 가한다. ⓒSBS, TV 동물농장 500회 <쇼 동물의 그림자> (2011.2.20)


코끼리가 아무리 영리한 동물이라 해도 공연에 필요한 여러 동작들을 익히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자연에서는 코끼리가 취하지 않는 동작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동작들을 익숙하게 만들기 위해 코끼리 학교에서는 코끼리의 귀 뒤쪽처럼 예민한 부분을 찌르거나 다리를 매질하는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를 보고 많은 사람이 할아버지와 소의 우정에 눈물을 흘렸지만 한편에서는 소가 너무 학대당하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존재했다. 어쩌면 인간이 동물을 길들이는 행위에는 처음부터 애정과 학대가 뒤섞여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코끼리 조련은 이미 여러 동물 보호 단체로부터 단단히 찍혀 있는 상태다.

태국 코끼리들의 상황은 어떨까. 동남아시아 최대의 관광 대국인 태국은 각종 동물 쇼를 주요 볼거리 중 하나로 홍보하고 있다. 동물 쇼에 동원되는 동물은 원숭이, 호랑이, 곰, 악어, 물개, 돌고래 등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동물이 코끼리다.

라오스와 마찬가지로 태국에서도 과거에는 코끼리가 주로 벌목에 이용되었다. 산업화의 속도가 빨라지며 원목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고 점점 더 많은 코끼리가 동원되었다. 지나친 벌목의 피해는 결국 인간에게 되돌아왔다. 1988년 큰 산사태가 일어나 300여 명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숲이 훼손되어 약해진 지반이 원인이었다. 이듬해인 1989년 태국 정부는 벌목을 금지시켰다. 하루아침에 코끼리가 쓸모가 없어지자 코끼리 주인들은 코끼리를 이용한 새로운 수익 사업을 찾아야 했다. 일부는 국경을 넘어 미얀마로 가서 벌목을 계속했지만 대부분은 태국 안의 대도시로 향했다. 도시에서 코끼리들은 관광객을 위한 공연이나 트래킹에 쓰이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구걸에 나서기까지 했다. 주인이 코끼리에게 바나나, 사탕수수 등을 싣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행인에게 코끼리 먹이를 사 달라고 조르는 것이다.1)

어린 코끼리들에게는 ‘파잔’이라는 의식이 치러진다. 이 의식의 목적은 코끼리로부터 야생성을 제거하는 것이다. 세 살에서 여덟 살 사이의 어린 코끼리를 어미에게서 때어 내 아주 좁은 우리에 가둔다. 목을 우리 위쪽에 묶고 네 다리를 서로 묶어 겨우 서 있을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쉼 없이 매질을 가하기 시작한다. 파잔은 사흘에서 길게는 일주일까지 이어지는데 그동안 코끼리에게는 물도 먹이도 거의 주지 않는다. 더욱 고통을 가하기 위해 우리 앞에 먹이를 매달아 두기도 한다. 마침내 코끼리가 고분고분해졌다고 판단되면 그제야 우리에서 풀어 주고 먹이를 준다. 파잔을 치른 어린 코끼리는 육체적으로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깊은 상처를 받아 어미를 알아보지도 못한다. 오직 인간의 충실한 일꾼이나 노리개로서 고분고분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2)

코끼리 학대에 대한 태국 정부의 태도는 이중적이다. 2010년 태국 정부는 코끼리를 보호하기 위해 코끼리를 이용한 구걸 행위를 법적으로 금지했다. 구걸하는 코끼리의 소유주, 구걸에 응해 코끼리 먹이를 사 주는 사람 모두 벌금을 물게 한 것이다. 하지만 이 법안은 그다지 실효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태국 정부가 동물 관광을 방조하는 수준을 넘어 장려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태국 정부에서 운영하는 태국 관광청 서울 사무소의 홈페이지(www.visitthailand.or.kr)에는 각 지역별로 어떤 종류의 동물 쇼를 구경할 수 있는지 자세히 안내되어 있다. 게다가 태국 정부는 코끼리 학교까지 운영하고 있다. 태국에서 코끼리 학교는 라오스와 달리 정부가 세운 직업학교의 일종이다. 그래서 훈련에 쓰이는 코끼리도 태국 정부가 직접 공급한다. 국제 동물 보호 단체들이 동물 쇼 전면 중지를 요청하고 있지만 태국 정부의 태도는 미적지근하기만 하다. 막대한 관광 수익을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주주 동물원의 사자 쇼. 중국 칭다오에서 들여온 ‘중국 동물 공연’의 일부다. ⓒ한겨레신문, <철봉하는 곰…공 굴리는 사자…두 발로 선 코끼리> (2012.5.5)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동물 쇼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루어지고 있다. 2012년 5월 서울대공원은 동물 학대 논란에 휩싸인 돌고래 쇼를 돌고래 생태 설명회로 전환했다. 이제 서울대공원의 돌고래들은 점프를 해서 훌라후프를 통과하거나 배를 드러내고 수영을 하는 등 야생에서는 보이지 않은 행동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대신 돌고래 조련사들이 자유롭게 노니는 돌고래들 앞에서 관람객들에게 돌고래의 생태에 대해 설명해 준다. 돌고래쇼 중단 조치는 박원순 서울 시장이 시민 단체 의견을 수렴해 결단을 내렸기 때문에 가능했다. 서울대공원은 경기도에 있긴 하지만 서울시에서 관리한다. 서울시에서는 역시 동물 학대 논란이 있었던 청계천의 관광 마차도 금지시켰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은 일부에 그친다. 우리나라에서 동물 쇼는 오히려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동물 쇼를 하는 대표적인 곳으로는 63씨월드, 에버랜드, 주주 동물원을 꼽을 수 있다. 현재 물개 쇼, 바다표범 쇼, 악어 쇼, 사자 쇼, 흑곰 쇼 등이 벌어지고 있다. 제주도는 이제 가히 ‘동물 쇼의 섬’이라고 불릴 만하다. 돌고래 쇼, 원숭이 쇼, 바다사자 쇼도 여전히 성황리에 운영 중이고 최근 5년 사이에 기마 공연, 흑돼지 쇼, 호랑이 마술 쇼가 새로 생겼다. 코끼리월드보다 1년 앞서 코끼리 공연을 시작했던 점보빌리지 역시 여전히 관람객들을 모으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동물 쇼와 관련된 법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러니 동물원들이 마구잡이로 동물 쇼를 늘리고 수입해도 규제할 방안이 전혀 없다. 동물 복지 선진국인 유럽에서 규제 강화로 동물 쇼가 사라져 가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동물 보호 무크지 《숨》의 전경옥 편집국장은 동물원들이 동물 쇼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동물 쇼는 동물원 입장에선 최고의 수익 사업이에요. 입장료 말고도 비싼 공연 요금을 따로 받잖아요. 동물원은 동물의 고통을 팔아서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버는 거고, 우리는 기쁘게 사는 거죠.”3)

기사가 날 정도로 크게 공론화되지는 않았지만 코끼리월드도 동물 보호 단체의 항의를 받은 적이 있었다. 정이사는 라오스 현지 코끼리들의 상황과 비교하면 코끼리 공연은 결코 동물 학대가 아니라고 항변한다.

“우리 조련사들이 그러더라고요. 우리나라 와서 공연하는 코끼리들은 고생도 안 하고 아주 운이 좋은 거라고요. 이 코끼리들이 공연을 안 했으면 지금쯤 뭘 하고 있었겠어요. 산에서 벌목하고 있었겠죠. 그거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코끼리를 애지중지했습니까, 예? 먹이도 좋은 걸로 주고, 쉬는 시간도 딱딱 챙겨 주고. 우리한테 와서 동물 학대다 이러는 건 말도 안 되는 거예요.”



라오스에서 벌목에 동원되고 있는 코끼리. 아무리 힘이 센 코끼리라 해도 벌목은 굉장한 노동을 필요로 한다. ⓒKBS, 환경스페셜 <라오스 코끼리의 눈물> (2012.9.12) 


실제로 벌목은 중노동이다. 코끼리들은 무거운 나무토막을 지거나 끌며 산을 오르내리다가 많은 부상을 입는다. 특히 다리를 다쳐 일어나지 못하면 스스로의 몸무게에 짓눌려 죽음으로 이어진다. 그런데도 주인들은 코끼리를 제대로 치료하지도 않고 죽게 내버려 둔다. 평생 고된 일을 하다가 기운이 다하면 버려지는 것이 대부분의 라오스 코끼리들의 운명이다. 그래서 라오스에서는 오히려 코끼리 관광이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코끼리들을 구출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안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라오스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루앙프라방 근처에 위치한 코끼리 마을(Elephant Village)은 코끼리 보호 프로그램을 표방하는 곳이다. 코끼리 구조, 빈곤층 취업, 환경 보호라는 세 가지 목적을 내세우고 있다. 그래서 코끼리 마을의 홈페이지에서는 care, protection, rescue, support 같은 단어들이 자주 눈에 띈다.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은 코끼리 등에 올라타 숲을 지나고 강을 건넌다. 간단한 코끼리 조련시키기와 코끼리 목욕시키기도 체험할 수 있다. 코끼리 마을에 사는 코끼리는 아홉 마리다. 모두 과거에는 위험한 벌목 활동을 하던 코끼리들이다. 라오스 전역에서 이렇게 관광에 이용되는 코끼리는 수십 마리뿐이다.4)

하지만 관광 산업화를 통한 코끼리 보호에 코끼리 공연은 포함되지 않는다. 코끼리가 학대에 가까운 훈련을 거치지 않고서는 공연이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단 훈련을 마치고 공연에 투입된 다음에는 벌목을 하는 것보다 훨씬 편한 나날이 펼쳐진다 해도, 어린 코끼리가 훈련 과정에서 받은 트라우마는 평생토록 이어진다. 단 한 번의 파잔 의식이 코끼리의 일생 내내 영향을 미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 온 코끼리들과 조련사들은 같은 딜레마를 안고 있는 셈이다. 현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나은 환경, 하지만 절대적으로 낫다고 하기에는 물음표를 던지게 되는 환경. 이것은 모든 이주 노동자가 마주칠 수밖에 없는 문제인지도 모른다.



1) KBS1 「'환경스페셜 - 코끼리, 벼랑 끝에 서다」(2006.2.22)

  ‘Asian Elephant Conservation Charity’ www.eleaid.com


2) www.scienceray.com 「The Phajaan Method of Elephant Training」


3) 한겨레신문 「철봉하는 곰…공 굴리는 사자…두 발로 선 코끼리」(2012.5.5)


4) Newsweek 「Seeing the World From on High」(2009.6.22)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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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코끼리


by 최종욱, 김서윤


제 4부 코끼리, 빛고을 광주로 이사 가다


    3장 또 다른 이주자, 코끼리 조련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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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동물원을 찾은 코끼리들이 어린이대공원에서 철수함과 동시에 코끼리월드의 규모도 급격히 작아졌다. 여성 무용수들을 라오스로 돌아갔고 한국인 운영 인력도 회사를 떠나야 했다. 이렇게 해서 코끼리월드를 떠난 직원이 40명가량 되었다. 이제 김회장 외에 코끼리월드에 남은 인원은 코끼리 판매를 진행할 정이사 그리고 코끼리들을 돌볼 열 명의 조련사들뿐이었다. 정이사와 조련사들도 코끼리들과 함께 광주로 왔다. 정이사는 우치 동물원 근처의 아파트에, 조련사들은 우치 대공원 안에 마련된 숙소에 짐을 풀었다.

이 와중에도 조련사 인원은 줄지 않았다. 코끼리월드가 세워진 이후로 조련사는 언제나 열 명 정도를 유지해 왔다. 최소한 코끼리 한 마리당 한 명의 조련사가 따라붙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사이 조련사들의 구성에는 변화가 있었다.



날이 쌀쌀해지자 코끼리에게 부직포를 덮어 주는 조련사. 조련사들은 코끼리에 관한 모든 것을 담당했다. ⓒ연합뉴스, <코끼리도 추워요> 2009.11.16


처음에 코끼리들과 함께 한국 땅을 밟은 조련사들은 모두 라오스 국적이었다. 우리나라에는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중국 등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온 노동자들이 거주하고 있다. 하지만 라오스 출신 노동자는 통 볼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라오스 정부가 우리나라에 노동자를 파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코끼리월드 소속의 조련사들과 무용수들은 우리나라에서 취업 비자를 받고 일하는 거의 유일한 라오스 노동자였다. 이들 외에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라오스 사람으로는 대사관 직원들 그리고 고위층 자녀인 유학생들이 전부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주한 라오스 대사관에서는 코끼리월드에 각별히 관심을 기울였다. 정이사는 라오스 대사가 코끼리월드에 무척 호의적이었다고 기억한다.

“대사가 직원들하고 명절 때 과일 한 박스 들고 우리 회사로 오고 그랬어요. 물론 우리도 갔다 줬지만. 그런 식으로 대사가 몇 번이나 직접 왔어요. 자기 나라 사람들 잘 좀 부탁한다고. 우리 직원들 면담도 하고. 왜 그랬냐면, 그 못사는 나라에서 한국에 거의 최초로 취업을 했으니까 그 사람들이 잘돼야 될 것 아니겠어요. 그래야 우리도 계속 라오스 사람을 쓰죠. 우린 딴 나라에서 조련사 데려와서 써도 됐거든요. 꼭 라오스 사람 써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

정이사 말대로 코끼리월드는 외교 관계보다 수익 창출이 훨씬 더 중요했다. 시간이 지나 조련사 인원에 결원이 생기자 라오스뿐 아니라 태국에서도 새로운 조련사를 데려왔다.

“아무래도 태국 출신 조련사들이 좀 더 전문적이거든요. 그 나라는 코끼리 공연을 굉장히 많이 해요. 라오스 출신 조련사들은 전문성은 떨어져도 그 코끼리들이랑 어릴 때부터 집에서 같이 살았어요. 그러니까 훤히 알아요. 얘는 어떻게 하면 말 잘 듣고 어떻게 하면 말 안 듣고. 그래서 라오스 출신이 반, 태국 출신이 반 이렇게 되게 한 겁니다.”

라오스 조련사들과 태국 조련사들 사이에서 국적으로 인한 반목은 거의 없었다. 라오스와 태국은 둘 다 코끼리의 나라를 자처하는 것만큼이나 서로 닮았다. 라오스 국민의 약 70퍼센트는 태국계로 분류된다. 라오스의 언어인 라오어는 태국어와 상당히 흡사한 데다, 태국 북부 지역에서도 쓰이기 때문에 태국어의 방언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라오스 조련사든 태국 조련사든 이곳에서는 똑같이 이주 노동자라는 신분이었다.



2007년 벌어진 여수 외국인 보호소 화재 참사의 추모식. 이주 노동자의 인권 문제는 여전히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 ⓒ뉴시스, <여수외국인 보호소 화재참사 추모식 열려> (2007.2.25)


우리나라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 노동자들의 상황을 열악하기 짝이 없다. 월 평균 급여가 2011년을 기준으로 100만 원에도 채 못 미치는 99만 9000원.1) 이마저도 체불되기 일쑤다. 부당 해고, 산업 재해, 폭력 등 다양한 인권 침해는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가장 보편적인 주거 형태는 공장 옆에 딸린 컨테이너다. 2009년 국제 엠네스티는 우리나라의 이주 노동자 실태를 조사한 후 발표한 보고서에서 ‘일회용 노동자’라는 표현을 썼다. 이주 노동자들은 일회용 물품처럼 아무렇게나 사용되었다가 버려지고 있는 것이다.

코끼리 조련사들이 받은 대우는 일반적인 이주 노동자들보다는 훨씬 나은 수준이었다. 조련사들은 한 달에 200만 원 정도의 급여를 받았고 1년에 한 달씩 휴가를 받아 고향에 다녀오기도 했다. 휴가 때 왕복 비행기 표는 코끼리월드에서 부담했다. 대부분의 이주 노동자들이 3D 업종에서 단순 업무에 투여되는 데 반해 코끼리 조련사들은 나름의 전문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코끼리월드의 수익 기반인 코끼리들의 안녕과 코끼리 공연의 진행은 전적으로 조련사들에게 달려 있었다. 소프트웨어 회사의 핵심 인력은 프로그래머이고, 출판사의 핵심 인력은 편집자이며, 디자인 회사의 핵심 인력은 디자이너이듯이 코끼리월드의 핵심 인력은 코끼리 조련사인 셈이었다. 동물원에서 근무하는 수의사라 할지라도 코끼리에 대해서만큼은 이 조련사들의 지식을 따라가지 못했다.

하지만 핵심 인력이라는 것이 반드시 정당한 대우로 이어지지는 않는 것이 세상 이치다. 코끼리 조련사들 역시 어디까지나 이주 노동자치고는 나은 대우였을 뿐, 핵심 인력으로서 마땅한 대우를 받았는가는 다른 문제다. 시각을 달리 해서 보면, 코끼리 조련사들은 회사 전체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만큼 중요한 위치에 있음에도 단지 이주 노동자라는 이유로 그 역할에 비해 낮은 대우를 받은 것일 수도 있다.

조련사들이 코끼리월드를 떠나는 경우는 자의로 그만두는 것일 때도 있었지만 대개는 회사에 밉보여 해고당하는 것이었다. 한 번이라도 잘못을 저지르면 김회장은 곧바로 해고 통보를 내렸다. 어느 날 갑자기 안 보여서 물어보면 이미 자기 나라로 떠났다고 했다. 매정한 처사로 보이지만 정이사는 이렇게 항변한다.

“잘못했다고 빌면 용서하고 한 번쯤은 넘어갈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절대 안 빌어요. 사과 한마디를 안 하더라고. 회장님이 나가 이러면 곧바로 짐 챙겨서 지네 나라로 돌아가 버려요. 갈 때 비행기 표도 우리가 대 줬습니다.”

해고 사유는 게으름을 피웠다는 것이 가장 많았다. 정이사는 조련사들의 숙련도나 전문성은 인정하면서도 노동 강도에 대해서는 상당히 박한 평가를 내린다.

“그 조련사들이 우리나라로 치면 70년대, 80년대에 중동 같은 데로 돈 벌려고 나간 사람들이나 마찬가지란 말이에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화 벌려고 얼마나 열심히 일했습니까.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했다고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달라요. 내가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해서 돈을 벌어 출세해야지 이런 생각 자체를 안 하더라고요. 내 생각엔, 천성이 그런 것 같아요. 이모작, 삼모작을 해서 먹을 게 널려 있으니까 우리나라처럼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는 거죠.”

정이사의 말은 인종 차별적인 고정 관념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이와 비슷한 증언은 동남아 전문가에게서도 나온다. 『동남아문화 산책』의 저자인 서강대학교 신윤환 교수는 동남아 사람들에게 게으름이란 여유의 표출이지 성격의 결함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하루에 두세 시간만 일해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자연 환경 때문에 예로부터 동남아에서는 부지런함이 곧 수선을 떠는 것과 같았고 부의 축척은 미덕이 아니었다는 것이다.2)

그런데 동남아 사람들이 마냥 게으르기만 하다면 동남아 출신의 수많은 노동자가 우리나라에서 야근과 잔업을 감수하면서까지 돈을 벌고 있는 현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경제학자 장하준 교수는 민족성이나 문화가 경제적 조건에 따라 변화한다고 주장한다. 100년 전만 해도 일본 사람들은 게으르다, 독일 사람들은 도둑질을 잘한다는 평을 받았던 것이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일본 사람들이 원래부터 근면해서 경제 성장을 이룬 것이 아니라 반대로 경제가 성장하자 일본 사람들이 근면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코끼리 조련사들의 하루 일과는 어땠는지 살펴보자. 아침 일찍 일어나 코끼리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먹이를 챙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다섯 차례의 공연을 진행했고 공연장 옆에서는 하루 종일 코끼리 타기 체험을 진행했다. 저녁에는 다음 날 관람객들에게 코끼리 먹이로 팔 당근을 자르는 작업을 했다. 밤이면 교대로 한두 명씩 코끼리들 옆에서 불침번을 섰다. 반드시 영양식을 먹어야 한다는 김회장의 방침 때문에 수시로 교외로 나가 직접 생풀을 베어 트럭에 실어 왔다. 혹사는 결코 아니었지만 만만한 일도 아니었다.

그래도 우치 동물원으로 옮긴 다음부터는 더 이상 공연을 안 하게 되었으니 일 자체가 조금은 수월해졌을 것이다. 우치 동물원 뒷산에는 대나무의 일종으로 코끼리가 좋아하는 신우대가 널려 있어 먹이를 구하기도 한결 편해졌다. 관람객이 적으니 잘라야 하는 당근의 양도 적어졌다. 해가 지면 근처 저수지로 밤낚시를 나서곤 했다. 물에 직접 들어가 투망질로 블루길이나 베스를 잡았다. 밤낚시에서 잡힌 물고기는 바싹 튀겨져 다음 날 아침 밥상에 올랐다. 물고기뿐 아니라 매미나 잠자리도 곧잘 잡아서 반찬으로 먹었다. 광주가 명색이 광역시이긴 하지만 우치 동물원은 녹지로 둘러싸인 교외에 위치해 있어서 조련사들은 좀 더 고향 같은 느낌을 가졌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점들을 감안한다 해도 제3자의 눈으로 바라본 코끼리 조련사들은 동물원에서 일하는 그 누구보다도 성실했다. 어쩌면 코끼리월드는 우리나라의 70년대 산업 역군 수준의 노동 강도를 기대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수성가한 김회장 본인이 바로 그 산업 역군 중 한 명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조련사들 중 한국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던 캄텐

전체 조련사들 중 라오스 출신과 태국 출신의 비율이 반반씩 유지되긴 했지만 라오스 출신 중에서도 끝까지 남은 사람은 단 두 명뿐이었다. 조련사들의 대변인 격이었던 캄텐과 그의 형 캄폰이었다. 정이사도 캄텐, 캄폰 형제에 대해서만큼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캄텐이 대변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말을 가장 잘했기 때문이다. 한국 땅을 처음 밟았을 때 열여덟의 나이였던 캄텐은 1년 만에 한국말을 제법 알아듣고 말도 곧잘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래서 조련사들과 코끼리월드 경영진과 동물원 직원들을 잇는 중요한 연결 고리가 되었다. 그렇다고 캄텐이 다른 조련사들보다 월급을 더 받지는 않았다. 대신 방송사에서 코끼리 출연 섭외가 오면 대부분의 경우 캄텐이 출연했고 그때마다 출연료로 부수입을 챙겼다. 형인 캄폰은 라오스에서 대학까지 나왔지만 그저 말없이 웃는 얼굴로 일에만 몰두하곤 했다. 지금은 조련사로 일하고 있지만 형제는 다른 미래를 꿈꾸었다.

“돈 많이 벌어서 라오스 갈 거예요. 잘 결혼하고 큰 식당 차릴 거예요.”

이들 형제는 라오스에서도 형편이 비교적 나은 가정에서 자랐다. 가정에서 코끼리를 길렀다는 것이 그 증거다. 코끼리는 라오스의 농가에서 사육하는 대표적인 가축 중 하나다. 라오스에서 야생 코끼리는 베트남 전쟁을 비롯해 여러 번의 전쟁을 거치며 거의 씨가 말랐고 지금은 가축화된 코끼리만 남아 있다. 코끼리 한 마리 값이 집 한 채 값과 비슷하기 때문에 코끼리를 기르는 집이면 경제 사정이 여유로운 축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코끼리는 소처럼 농사에도 쓰였지만 최근에는 수익이 더 높은 벌목에 주로 이용된다. 하지만 캄텐, 캄폰 형제의 집에서 기르던 코끼리는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어린 주인을 따라 코끼리 학교에 들어간 것이다. 이 코끼리가 우치 동물원에 온 코끼리들 중 한 마리인 ‘짠디’였다. 짠디는 코끼리 학교에서 무엇을 경험했을까? 이것은 코끼리들에게 조련사란 어떤 존재인가 하는 물음과 연결된다.




1) 서울신문 「외국인 노동자 생산 유발 효과 年 10조 원 시대」(2012.4.23)


2) 신윤환 「동남아인들의 가치관과 윤리 의식: “게으름”과 “느슨함”」(서남포럼 뉴스레터 20호/ 2006.5.10)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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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코끼리


by 최종욱, 김서윤


제 4부 코끼리, 빛고을 광주로 이사 가다


    2장 광주에 등장한 '주요 동물' 코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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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들을 맞이한, 예상치 못한 환대


우치동물원을 찾은 정이사는 예기치 않은 환대를 받았다. 코끼리라는 말에 우치동물원에서는 최정수 소장이 직접 적극적으로 나섰다. 코끼리가 올 수만 있다면 코끼리월드의 요구 조건을 가능한 한 모두 수용하겠다는 것이 우치동물원의 입장이었다. 정이사가 다녀간 지 얼마 후에는 최정수 소장과 담당 직원들이 직접 어린이대공원으로 찾아와 코끼리들의 상태를 확인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전라권의 인구가 적은 데다 수도권에서 접근성도 떨어진다는 사실이 여전히 걸림돌이었다. 게다가 우치동물원에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었다. 우치동물원이 아무리 적극적으로 나선다 해도 결코 해결해 줄 수 없는 그것은 공연장이 들어설 만한 공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우치동물원이 국내에서는 넓은 축에 속한다 하지만 동물 우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호수와 녹지로 이루어져 있다. 우치동물원에서 아무리 코끼리를 원한다고는 해도 다른 동물 우리를 허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마련되어 있는 코끼리 우리는 겨우 두세 마리만 들어가면 꽉 찰 크기였다. 코끼리 우리 앞쪽에 작은 공터가 있긴 했는데 코끼리 트래킹 코스라면 아쉬운 대로 마련할 수 있을 듯해도 공연장은 절대 불가능했다.

정이사의 답사 보고와 우치동물원의 구애를 놓고 고심을 거듭하던 김회장은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어차피 다른 데도 공연할 만한 데가 딱히 마땅한 것도 아니고. 우치동물원에서는 아주 적극적으로 나오고 일도 편하게 진행되고. 정이사도 광주로 하자 그랬어요. 우리는 시간도 없고.”

하지만 무엇보다도 김회장이 코끼리월드를 접기로 결심한 것이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더 이상 코끼리 공연 사업을 계속해 보았자 수지가 안 맞는다는 판단이었다. 만약 이 무렵 코끼리들을 모두 사겠다는 동물원이 있었다면 김회장은 곧바로 손을 떼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홉 마리나 되는 코끼리를 한꺼번에 살 수 있는 동물원이 금방 나타날 리 없었다. 그때까지 코끼리들을 머물 거처가 필요했다.


▲ 우치 동물원에서 만든 코끼리 홍보 전단지


양측은 코끼리 임대 계약서에 서명했다. 이번에는 코끼리월드가 원하면 언제든 코끼리들을 데려갈 수 있다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어린이대공원과 계약할 때에 비하면 갑을 관계가 바뀐 계약서였다. 계약이 확정되자마자 우치동물원에서는 보도 자료를 언론사에 뿌리는 것은 물론이고 홍보 전단지까지 만들어 광주 시내에 돌렸다. 우치동물원이 세워진 후 이렇게 시끌벅적하게 오는 동물은 코끼리가 처음이었다. 코끼리월드는 기존의 코끼리 우리를 보수해 조금이나마 더 넓히고 앞쪽의 공터에 코끼리 트래킹 코스와 먹이 주기 체험장을 만들었다. 어린이대공원 안에 조련사들 숙소도 마련했다.






2008년 8월 18일 선발대 격으로 세 마리의 코끼리가 우치동물원에 도착했다. 코끼리들을 나누어 싣고 화물 트레일러의 모습이 마치 기차 같았다. 모여서 기다리고 있던 동물원 사람들은 그 광경에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게차가 트레일러에서 수송용 우리를 내리자 조련사들이 코끼리를 밖으로 꺼내 한 명씩 코끼리의 목에 탔다. 코끼리들은 조련사가 이끄는 대로 새로운 우리 안으로 차례대로 들어갔다.


코끼리 트래킹을 하는 모습. 특히 어린이 관람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적응 기간을 가진 후 그달 말 코끼리 트래킹이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5000원의 표 값이 비싸다고 느껴졌는지 관람객들은 흔쾌히 다가오지 않았다. 동물원 직원들이 관람객으로 가장해 코끼리 트래킹을 하는 모습을 보이자 그제야 표를 사는 사람이 늘기 시작했다. 한 달 후에는 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설 정도였다. 광주 시민들의 머릿속에서 우치동물원 하면 코끼리 타기 체험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었다. 코끼리 우리는 동물원 입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관람객들은 코끼리부터 먼저 본 다음에 다른 동물들도 구경하곤 했다. 아무리 그래도 공연만큼 수익이 나지는 않았기에 코끼리월드는 계속 적자였다.

그사이 서울에서는 맞소송이 마무리되었다. 코끼리월드도 승소하고 어린이대공원도 승소해 결과는 무승부. 어린이대공원에 남아 공연을 계속하던 나머지 여섯 마리 코끼리도 2008년 11월 우치동물원에 합류해 아홉 마리가 다시 모였다. 하루아침에 우치동물원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코끼리가 사는 동물원으로 탈바꿈했다.

코끼리를 보려면 언제나 전라도 밖의 다른 동물원을 찾아야 했던 광주 시민들 앞에 갑작스럽게 등장한 코끼리들은 큰 화제가 되었다. 우치동물원은 이 코끼리들이 동물원 소속이 아니라 임대된 것이라는 사실을 보도자료 등을 통해 분명히 밝혔지만 시민들이 그런 세세한 사실까지 확인하고 기억할 리 없었다. 우치동물원과 코끼리들의 만남은 그렇게 처음부터 불안정하게 시작되었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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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코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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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부 코끼리, 빛고을 광주로 이사 가다


    1장 우치동물원 코끼리우리에 코끼리가 없었던 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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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고을 어린이들의 1순위 놀이터


어린이대공원이 ‘코끼리 방 빼기’ 문제로 법정 소송까지 치르는 사이, 한편에서는 반대로 코끼리를 들이지 못해 수십 년째 애태우던 동물원이 있었으니 바로 빛고을 광주의 우치동물원이었다.

우치동물원은 광주시 북구 생용동에 자리 잡은 우치 공원 안에 위치한 동물원이다. 우치동물원의 시작을 거슬러 오르고 오르다 보면 태종 3년인 1403년 광주에 설치된 사직단까지 닿는다. 광주와 서울을 비롯해 전국 10여 군데에 설치된 사직단에서는 해마다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하지만 나라가 일본으로 넘어가는 와중에 사직단의 제사는 폐지되었고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 광주 사직단 주변에는 공원이 조성되었다. 이것이 지금 광주시 남구 사동의 사직 공원이다. 그리고 박정희 정권 하인 1971년 4월 17일 사직 공원 안에 동물원이 문을 열었다. 올해 여든일곱으로, 세 권짜리『광주 100년』을 지었을 만큼 광주 근대사의 산 증인으로 통하는 박선홍 선생은 이렇게 회고한다.

“한·일 국교가 정상화되자 교포들의 내왕이 활발해졌어요. 당시 교포 중에서 고향을 위해 뭔가 해 주고 싶다는 뜻을 밝힌 이가 있었고, 광주시는 동물원 조성을 요청한 겁니다.”1)



▲ 70-80년대 사직 동물원은 호남 지역 최고의 위락 시설이었다.(출처:《광주드림》)



사직동물원은 22종 51마리의 동물과 함께 출발했다. 이 중 코끼리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기증자는 코끼리도 사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사직동물원 측에서 거절했다. 장소가 협소해 코끼리까지 수용하기는 도저히 무리였다.

비록 규모는 작아도, 코끼리는 없어도 어쨌든 호남 최초의 동물원이었다. 특별한 볼거리가 없던 그 시절, 사직동물원은 금세 지역의 명물로 떠올랐다. 광주와 전라도의 집집마다 어린이들이 엄마 아빠를 붙잡고 사직동물원에 놀러 가자며 노래를 불렀다. 어린이날이면 몰려든 인파로 동물원 안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사진 동물원의 동물은 점점 늘었다. 외부에서 새로 들인 동물도 있었고 동물원 안에서 태어난 동물들도 있었다. 특히 호랑이 부부의 다산은 사직동물원의 자랑거리였다. 광주를 연고로 탄생한 해태 야구단(현재 기아)의 마스코트가 호랑이가 된 것도 이런 인연 때문이 아니었을까.


[광주 사직동물원 호랑이 새끼 3마리 순산]

광주 사직동물원 어미 호랑이 호순이가 7일 아침 또 새끼 세 마리를 낳았다.

남편 호남과 작년 11월 열흘간에 걸친 사랑으로 화제가 됐던 호순이는 이날 새벽 두 시간의 진통 끝에 아침 6시 15분부터 45분까지 30분 동안 암컷 한 마리와 수컷 두 마리의 새끼를 순산했다.

이 새끼 중 마지막으로 태어난 수컷 한 마리가 어미젖을 먹지 않아 동물원측은 10여 일 전 새끼 7마리를 낳은 7년생 진돗개와 다리가 세 개 달린 개(삼족구)의 젖을 짜 한 시간 간격으로 끓인 우유와 함께 먹이고 있다. 또 이 호랑이 새끼는 정오부터 오후 6시까지 네 차례에 걸쳐 개 젖을 직접 빨아먹기도 했다.

이들 개는 호랑이 새끼가 젖을 물자 처음엔 꼬리를 감추며 몸을 사리다가 사육사들이 강아지와 함께 품에 안겨 주자 자기 새끼인 것처럼 젖을 물려 주었다.

10~11년생인 이 호랑이 부부는 벵골 산으로 71년 4월 17일 사직동물원 개원과 함께 들어와 2년 만인 73년 6월 세 마리의 새끼를 낳은 뒤 지금까지 모두 7회에 걸쳐 24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이로써 이 호랑이 부부는 동물원에서 낳은 것으로는 동양에선 최다산 기록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일보》 1980.2.8

 

동물들은 점점 늘어나 80여 종 300여 마리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럴수록 사직동물원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우리를 늘릴 공간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코끼리는 고사하고 이제는 코끼리처럼 덩치 큰 동물이 아니라 해도 기증 제안을 사양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새끼가 태어나 봤자 부담만 더해질 뿐이었다. 새끼를 다른 동물원에 분양 보내야 했고 나중에는 사자 부부를 발정기 동안 강제로 별거시키는 등 ‘동물 가족계획’을 실시했다. 경악스러운 일까지 벌어졌다.


[동물원 우리 좁고 먹이 값 감당 못한다 - 호랑이 새끼 전기 사형]

광주 사직동물원은 지난 15일 생후 8개월 10일 된 호랑이 새끼 2마리를 전기 쇼크로 죽여 충남 예산군 오가면 분천리 김대원 씨(45)에게 박제용으로 1백 54만 원을 받고 팔았음이 26일 뒤늦게 밝혀졌다. [……] 한편 호랑이 새끼를 죽여 팔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시민들은 “남쪽으로 날아가지 못한 제비 새끼를 공수해 보내면서까지 야생 동물을 보호하는 요즘 먹이 값 때문에 호랑이 새끼를 죽인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처사”라며 “어린이들에게 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 《경향신문》 1978.12.27


동물원 건설을 이유로 사직단을 헐어 버렸다는 것도 두고두고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조상이 신성시했던 장소에 불경스럽게도 맹수들이 어슬렁거리다니, 일제가 창경궁 안을 훼손하고 동물원을 설치한 것과 진배없는 일이 아니냐며 사직동물원의 존재를 마뜩찮게 보는 시선이 점점 커졌다.

이래저래 동물원을 둘러싼 여론이 좋지 않자 1980년대 초 정부는 동물원 확대 이전을 결정했다. 광주에 피를 뿌리며 집권한 전두환 정권이 호남 민심을 가라앉히려는 목적도 있었다. 마침 서울에서도 창경원을 대신할 서울 대공원이 한창 건설되고 있었다. 광주시는 동물원이 포함된 종합 놀이 공원 설립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정부의 재정 지원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재정 자립도가 대구와 함께 전국 대도시 중 꼴찌 수준인 광주로서는 비용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전 논의만 무성했지 실제 진행은 느림보 걸음이었다. 논의가 시작된 지 수년이 지나서야 겨우 부지가 결정되었을 정도였다. 건설 비용은 광주시가 아니라 대표적인 호남 출신 기업인 금호 그룹에서 나왔다. 이 대가로 금호 그룹은 당시 150~200억 원을 호가하던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받은 데다 20년 동안 놀이 시설 운영권을 보장받았다. 재벌 특혜라는 비난도 있었지만 광주시로서는 고육지책인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 사직 공원의 사직단. 지금이 우치 동물원이 생기면서 사직단은 과거의 모습대로 복원되었다.

(출처:대한민국 구석구석 http://korean.visitkorea.or.kr)


1991년 우치 공원이 지금의 장소에 문을 열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2년 5일 4일 사직동물원은 우치 공원에서 우치동물원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관람객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사직단은 1993년 복원되었다. 1만 9000제곱미터였던 동물원 면적은 46만 제곱미터로 수십 배가 늘었다. 면적에 맞춰 동물들도 다시 부쩍 늘기 시작했다. 새끼의 탄생을 마음 놓고 축하하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동안 없던 종도 외부에서 구해다 새로 들여놓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소식이 없는 그 이름, 그것은 코끼리였다.



여긴 왜 ‘주요 동물’ 코끼리가 없나요?


과거에는 공간이 문제였다면 이제는 예산이 문제였다. 코끼리를 구입하려면 수억 원의 돈이 필요한데 광주시에서는 우치동물원에 대한 투자를 부담스러워했다. 금호 그룹은 수익이 나는 놀이 시설만 운영할 뿐 동물원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으므로 동물원 예산은 온전히 광주시가 부담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동물원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몇 가지로 한정되어 있다. 위엄 있게 어슬렁거리는 호랑이와 사자, 목을 쭉 뻗어 높다란 나무의 이파리를 먹는 기린 그리고 기다란 코로 물을 뿜는 코끼리. 엄마 아빠도 아이에게 “호랑이랑 코끼리 보러 동물원 가자.”라고 하지, “당나귀랑 황새 보러 동물원 가자.”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기껏 맘먹고 찾아간 동물원에 코끼리가 안 보인다면 얼마나 실망이겠는가.

사정이 이렇다 보니 동물원 안에서도 몇몇 ‘주요 동물’과 그 외의 ‘기타 동물’이 은근슬쩍 구분된다. 학벌 사회를 비판하던 언론이 입시철만 되면 ‘주요 대학’ 위주로 보도를 하듯, 동물 사랑을 표방하는 동물원이지만 실제로는 ‘주요 동물’에게 조금은 더 신경을 쓰게 된다. 가급적 다른 동물보다도 호랑이, 사자, 기린, 코끼리 같은 ‘주요 동물’을 우선적으로 들여놓으려 하고 눈에 잘 띄는 장소에 두려 한다. 흔한 표현을 빌자면, ‘주요 동물’ 없는 동물원은 앙꼬 없는 찐빵이요 고무줄 없는 팬티라고나 할까. 그러니 무려 ‘주요 동물’씩이나 되는 코끼리가 없다는 것은 우치동물원의 큰 흠이었다.

사실 우치동물원 입장에서는 억울한 면도 있었다. 공공시설로서 예산이 빠듯한 상황에서도 우치동물원은 서울 대공원을 제외한 지방의 동물원 중에서는 면적으로나 동물 수로나 최고로 꼽혔다. 해마다 탄생하는 새 생명의 수로 따지면 전국에서 첫 손가락에 들었다. 하지만 이런 자랑거리들로도 코끼리가 없다는 약점을 덮을 수는 없었다. “여긴 코끼리가 없나 보네.” “코끼리 보려면 서울까지 가야 하나?” 우치동물원을 찾은 관람객들의 입에서 단골로 나오는 말들이었다.

코끼리가 생길 뻔한 기회가 몇 번 있긴 했다. 1998년에는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 새끼 코끼리를 데려오기로 했다. 안 그래도 아시아코끼리는 아프리카코끼리에 비해 몸집이 작은 편인데 새끼라면 관람객들이 기대하기 마련인 거대한 몸집과는 거리가 있을 터였다. 하지만 마냥 성인 코끼리만 고집할 수 없다는 판단에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그런데 이 새끼 코끼리가 이사를 20여 일 앞두고 갑자기 죽고 말았다. 창경원과 사직동물원을 거쳐 우치동물원까지 동물원에서만 30년을 보낸 이삼수 전 우치 공원 관리소장은 이 일을 재임 기간 중 가장 아쉬웠던 점으로 꼽는다.2)

2005년에는 어느 돈 많고 애향심까지 많은 사업가가 “우리 광주에 코끼리 한 마리 없어서야 되겠습니까.”라며 직접 코끼리를 사서 기증하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사직동물원 시절과는 달리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우치동물원은 사업가의 말을 찰떡같이 믿고 10억을 들여 일단 코끼리 우리부터 덥석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이 사업가가 갑자기 말을 바꾸며 연락을 끊어 버렸다. 인심은 조석변이라더니 꼭 그 짝이었다. 코끼리 기증은 물 건너간 일이 되었다. 코끼리 없는 코끼리 우리만 관람객들을 놀리듯 덩그러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가 뭐해서 대신 단봉낙타 한 쌍을 넣어 두었다.

자꾸 일이 틀어지자 우치동물원은 직접 나서서 외국으로부터 코끼리를 들여오기로 방침을 세웠다. 마침 인도의 마이소르 동물원에서 세 살이 채 안 된 새끼 인도코끼리 한 마리를 팔려고 한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인도코끼리는 보르네오코끼리, 수마트라코끼리, 스리랑카코끼리와 함께 아시아코끼리에 속하는 종이다. 아직 어린 코끼리라 코끼리 가격으로서는 비교적 저렴한 1억 원이었다.

우치동물원은 광주시로부터 추가 예산 1억 원을 어렵사리 확보한 다음 인도에 연락을 취했다. 코끼리는 멸종 위기 동물로서 국제 거래가 엄격히 제한되어 있는 데다 인도 역시 CITES에 가입되어 있으니 수입 과정이 까다로울 것은 어느 정도 예상되었다. 그래도 구입 비용이 마련되고 우치동물원은 비상업적인 공공시설이니 결국에는 성사되겠지 하고 낙관했다. 그런데 인도 마이소르 주 정부의 깐깐함은 상상 이상이었다.

마이소르 주 정부에서 태클을 건 이유는 우리나라의 기후와 우치동물원의 환경이었다. 기후야 불가항력이니 넘어간다 치더라도 동물원 환경을 따지고 들자면 우치동물원이 큰소리 칠 형편이 아니었다.

우치동물원을 비롯해 지방의 동물원들은 대부분 서울 대공원을 본 따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대형 동물원의 시대를 연 것이 서울 대공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울 대공원의 구조는 최대한 많은 동물을 전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동물보다도 관람객이 우선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보니 각 동물들의 생태를 고려하지 않은 채 칙칙하고 비좁은 콘크리트 우리 안에 동물들을 수용했다. 당연히 동물들이 정상적으로 살아가기에는 어려운 조건이었다.


▲ 황윤 감독의 다큐멘터리 「작별」. 포스터에 등장하는 호랑이 ‘크레인’은 근친교배로 인해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호랑이답지 못하게 목줄에 매인 채 비좁은 상자 안에서 지내는 크레인의 모습은 동물원의 사육 환경에 개선이 필요함을 보여 준다.


동물원의 열악한 사육 환경으로 인해 동물들이 고통받는 현실은 2001년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 「작별」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영화는 「침묵의 숲」, 「어느 날 그 길에서」로 이어지는 황윤 감독의 ‘야생 동물 3부작’의 시작이 된 작품이다. 황윤 감독은 어느 날 우연히 동물원에 놀러 간 것을 계기로 야생 동물들에게 주목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북극곰 우리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있는 거예요. 무슨 일인가 봤더니 곰이 머리를 쉬지 않고 아래위로 흔들고 있었어요. 사람들은 곰이 춤춘다며 박수를 치더군요. 알고 보니 그건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동물들이 보이는 정형 행동이란 것이었어요. 고통에 몸부림치는 북극곰과 그것을 보고 즐거워하는 관람객들, 평화로운 휴일의 동물원에서 벌어진 한 편의 부조리극이었죠.”3)

황윤 감독이 목격했듯이 동물원에 적응하지 못한 동물들은 먹이를 거부하거나 행동이 둔해지거나 심하면 자해를 하는 등 다양한 이상 행동을 보인다. 황윤 감독은 우리나라 동물원들이 눈요기만을 위한 19세기식 동물원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물론 꼭 서울 대공원 탓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서울 대공원이 문을 연 1980년대 초에는 다른 나라 동물원들도 대개 거기서 거기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후로 동물 복지와 동물원 환경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선진국의 동물원들은 사람보다 동물 친화적인 방향으로 변모해 왔다. 이제 동물원은 단순한 구경거리 위주의 동물 전시장이 아니라, 야생 동물을 보호하고 복원시키는 안식처이자 자연의 아름다움을 체험하는 생태 교육의 장으로 그 기능이 바뀌었다. 외국의 유명 동물원에 가 보면 동물들이 자연과 최대한 비슷하게 조성된 시설에서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동물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으니 관람객들도 더욱더 즐겁기 마련이다.

다행히 몇 년 전부터 서울 대공원은 우리 안에 콘크리트를 걷어 내고 잔디를 까는 등 새롭게 탈바꿈하는 중이다. 자연 생태 동물원을 목표로 10년 동안 해마다 100억 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이나마 투자가 이루어지게 된 것은 우리나라 대표 동물원이라는 위상 때문이다. 하지만 지방의 동물원들에서 이런 투자는 언감생심이다. 우치동물원 사정도 매한가지. 코끼리 한 마리 살 돈도 겨우 마련한 마당에 동물원 전체를 친환경적으로 바꾼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따로 세금을 더 들이지 않고도 예산을 확보하는 확실한 방법이 하나 있긴 하다. 입장료를 확 올리는 것. 우치동물원은 “왜 여긴 에버랜드처럼 못 하나요?” 하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왜 에버랜드처럼 사파리도 만들고 동물 쇼도 하고 환경도 더 아기자기하게 만들지 못하느냐는 불만이다. 하지만 에버랜드는 사설 동물원이라 입장료만 3만 원(놀이공원 포함, 성인 기준)이다. 전문 사육사와 특수 지프를 타고 사파리 내부를 도는 스페셜 투어를 하려면 최대 13만 원(6인 기준)이 추가로 든다. 그에 비해 공공기관 소속인 우치동물원은 고작 1500원이다. 이러니 만년 적자일 수밖에.

아무리 목적이 좋다 해도 공공 동물원이 입장료를 올려 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공공 동물원의 존재 이유인 공익성을 저버리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지역 동물원을 제대로 지원하는 지방 자치 단체는 거의 없다. 환경 개선은 고사하고 기존의 시설을 유지하는 것만도 다행인 수준이다.

드디어 인도에서 최종 통지서가 날아왔다. 결과는 한마디로 코끼리 판매 불허. 통지서에 적힌 불허 이유는 구구절절 맞는 말들뿐이었다. 동물원 시설이 낡았다, 코끼리 우리가 시멘트와 철로 되어 있어 위험하다, 동물원 직원 중 코끼리 전문가가 없다……. 알고 보니 마이소르 주정부에서는 몰래 우치동물원으로 사람을 보내 사전 답사까지 마쳤다 했다. 예산부터 확보해 놓고 지레 기대에 부풀어 있었던 우치동물원으로서는 실로 굴욕적인 사건이었다. 1억 원의 예산은 고스란히 광주시에 반납하고 말았다.

이 일을 놓고 광주시의회까지 나섰다. 교육사회위원회 결산 심의에서 의원들의 집중적인 질의가 가해졌다.

“코끼리 없는 동물원은 동물원이라 할 수 없잖아요. 애들이 사진이나 그림책만 보고 ‘코끼리다.’ 하면 안 될 것 아니에요? ‘아, 우치동물원에 가면 코끼리가 있지.’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세요.”

“코끼리가 3년째 광주에 오지 못한 건 동물원 측이 CITES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계획을 수립했기 때문이 아닙니까.”

이날의 광경을 보도한 광주매일신문의 김명식 기자는 이렇게 결론 내렸다.

“‘광주에도 코끼리가 있다.’고 할 날은 기약 없어 보인다.”4)

하지만 ‘광주에도 코끼리가 있다.’고 할 날은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다. 코끼리월드의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1) 《광주드림》 「연 67만명 관람 ‘동물의 왕국’」(2010.7.27)


2) 광주일보 「동물들과 ''동고동락'' 30년」(2003.2.22)


3) 샘터 「다큐멘터리로 생명의 의미 일깨우는 황윤 감독」(2008년 6월호)


4) 광주매일 「코끼리는 광주에 언제 올까」(2007.7.5)


posted by Banbi Editor!
  • 셜록홈즈 2013.07.10 11:37

    읽다가 울화가 치미네요...불쌍한 동물들 야생에서 자유롭게 살지도 못하고 인간의 눈요기로 사는것도 억울한데 시설 좀 크게 잘 좀 해주지....입장료를 올리라구요...그리고 국민들은 비싼 입장료 아닥하고



우리가 사랑한 코끼리


by 최종욱, 김서윤


제 3부 서울 도심을 질주한 코끼리


    3장 방 빼! 못 빼! 어린이대공원과의 줄다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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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공연은 선풍적인 인기를 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제법 자리를 잡아 갔다평일에는 유치원 어린이들의 단체 관람이주말에는 가족 단위의 관람이 꾸준히 이어졌다어린이대공원으로 옮긴 지 첫 해에는 새로 공연장을 짓느라 비용이 들었음에도 손익분기점을 맞추는 데 성공했고 그다음 해부터는 흑자를 이룰 수 있었다. 3년째를 맞는 2008년에도 무난히 흑자가 예상되었다그런데 갑작스럽게 제동이 걸렸다.

2008년 초 어린이대공원은 코끼리 월드에 일방적으로 계약 종료를 통보했다키즈센터라는 새로운 건축물을 지을 자리가 필요하니 코끼리 공연장을 철수시키기로 했다는 것이었다사업하며 산전수전 다 겪은 김회장조차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비록 계약서에 어린이 대공원 측이 원할 경우 언제든 계약 해지가 가능하다는 조항이 있긴 했지만 그것은 내부 규정상의 문구일 뿐최소한 10년은 계약이 지속될 것은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김회장이었다.

아무리 못해도 최소한 10년 생각하고 공연장 새로 짓는 데 7억 들인 거 아니겠어요. 7억 투자를 했는데 1, 2년 하고 말 줄은 몰랐지.”

어린이대공원은 김회장의 항의에 요지부동이었다키즈센터가 건설된다는 사실은 언론에까지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코끼리 공연장 철수는 이미 기정사실이었다.



▲ 어린이 대공원에 있던 코끼리 공연장의 모습. 현재 이 자리에는 키즈센터가 들어서 있다.


상도의를 내세우는 것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임을 눈치 챈 김회장은 철수 불가를 주장하는 대신 한 발 물러났다키즈센터는 건설 계획만 확정되었을 뿐기본 설계도조차 나와 있지 않았다실제 착공에 들어가려면 최소한 내년까지는 기다려야 했다코끼리 공연장이 당장 없어진다면 그 자리를 1년 이상 빈 땅으로 놀려야 하니 어린이대공원으로서도 손해였다김회장은 착공 전까지만 코끼리 공연을 계속하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어린이대공원은 코끼리 공연장을 당장 철수시켜야 한다는 처음 입장을 고수했다착공 시기에 관계없이 무조건 기존 시설을 먼저 철수하는 것이 내부 규정이라는 이유였다계약서의 독소 조항도 내부 규정비효율적인 철수 시기도 내부 규정이었다.

김회장은 철수를 거부하고 버티기에 들어갔다물론 코끼리 공연도 계속했다어린이대공원의 부당한 처사에 항의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당장 어린이대공원에서 나오면 아홉 마리나 되는 코끼리들이 어디로 간단 말인가더구나 때는 아직 겨울이었다.

사태는 법정 다툼으로까지 번졌다소송 포문은 어린이대공원 쪽에서 열었다이에 질세라 코끼리월드도 맞소송을 제기했다어린이대공원 내부 규정의 상위법이라 할 수 있는 서울시 조례에 규정된 내용보다 더 많은 임대료를 냈으니 그 차액을 돌려 달라는 소송이었다이제 와서 계약서의 부당함을 호소해 보았자 승소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에 임대료를 문제 삼은 것이었다.

당장은 버틴다 해도 결국 철수를 피할 수는 없었다하루라도 빨리 새로운 장소를 확정해야 했다하지만 서울대공원이나 에버랜드에 또다시 타진하기는 여의치 않았고 그렇다고 송도 유원지로 돌아가는 것은 망하자고 작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김회장과 정이사의 판단은 수도권이 힘들다면 차선은 반드시 충청권 또는 경남권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충청권은 수도권의 인구를 끌어들일 수 있는 마지노선이었다경남권은 수도권은 포기한다 해도 부산과 울산의 인구라면 아쉬운 대로 수지를 맞출 수는 있을 듯했다정이사는 3년 전 사업 계획서를 들고 서울과 수도권을 다녔던 것처럼 이번에는 충청권과 경남권을 돌기 시작했다.


▲ 2005-2010년 전국 시군구별 인구 증감율. 인구가 몰린 수도권의 비대화가 계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울은 블랙홀처럼 모든 자원을 빨아들인다사람도 돈도 서울로서울로 향한다우리나라 제2의 도시임을 자랑하는 부산 인구가 350만 명을 조금 웃도는 수준으로서울 인구의 절반에도 한참 못 미친다이렇다 보니 서울과 수도권의 동물원이나 놀이공원 시설이 프로야구 1군급이라면 그 외 지역은 2군급이다정이사가 거의 매일 지방에서 살다시피 했지만 코끼리들이 갈 만한 장소는 눈에 띄지 않았다부지가 적당하다 싶으면 임대료가 너무 높거나임대료가 적당하다 싶으면 부지가 너무 협소했다.

충청권과 경남권에서 별 소득이 없자 정이사는 전라권으로 눈을 돌려 보았다애초에 염두에 두었던 곳이 아닌 만큼 큰 기대는 없었다정이사 본인이 전라도 출신이기에 고향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동네는전라도는내가 미안한데 무시하는 게 아니라 인구도 없고지역 경제도 다른 데보다 못하고 그래서 아예 배재를 하고 안 갔어요광주 인구가 한 140만 되고 전라남도전라북도 다 해 봤자 이건 뭐그러니까 거긴 타산이 안 맞는다적자다 이렇게 생각을 했죠근데 하도 답답하니까 한번 거기라도 가 보자 해서 간 겁니다.”

정이사가 찾은 곳은 광주의 우치동물원이었다이때만 해도 정이사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코끼리를 향한 우치동물원의 애달픈 짝사랑을.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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