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인문학」 출간 기념 강연회


- 강연 주제 : 인문학과 과학은 어떻게 만나나?

- 강연자 : 이상헌(동국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 서동욱(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

- 사회자 : 이권우 (한양대학교 기총 융합 교육원 교수)

- 일시 : 3월 26일(화) 저녁 7시

- 장소 : 한양대학교 제2공학관 27-312 강의실 (약도보기 클릭)

- 모집 기간 : 3/6 ~ 3/26 (당첨자 개별 연락)


- 신청하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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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정치학


신자유주의, 1990년대 문화, SNS가 만들어낸 리모델링 세대


이슈 털어주는 남자 '이털남' 김종배 선생님의 30대 정치학」 출간 기념 강연회!


- 강연 일시: 2012년 10월 19일(금) 오후 7시 30분
- 강연 장소: 서울 마포구 상암동 1605 누리꿈스퀘어 비즈니스타워 18층 오마이뉴스 대회의실(보기)
- 강연자: 『30대 정치학』의 저자 김종배
- 강연 주제: 30대와 1990년대 문화: 2012년 대선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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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일(목), 주한 독일문화원에서 '파우스트'로 보는 베를린의 연극 세계란 주제로 열렸던 <베를린, 천 개의 연극> 출간 기념 저자 강연회에 이어 2월 7일(화)에는 풍월당에서 '페르 귄트로 보는 베를린 연극의 오늘'이라는 주제로 두 번째 강연이 있었습니다.  



강연 시작 전 풍월당 5층의 강연장 모습.
신청 하루 만에 80석 좌석에 120여 분이 신청해 주셔서 급히 마감을 했다고 합니다. ^^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강연장을 가득 메워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오늘의 강연은 <'페르 귄트'로 보는 베를린 연극의 오늘>이라는 주제로, 먼저 간략하게 책 제목에 대한 언급으로 베를린 연극의 인프라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베를린, 천 개의 연극> - 책 제목에 '천 개의 연극'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실제로 베를린은 3년 동안 매일 다른 연극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인프라가 대단하다고 합니다. 풍부한 레퍼토리를 가진 극장들이 많이 있고, 책에서 주로 소개되는 유서 깊은 도이체스테아터같은 경우, 200개 정도의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저자 박철호 선생님은 유럽의 많은 도시들에서 머물며 연극을 봤는데, 베를린에서의 한 달 생활비가 100만원이면, 공연 티켓값은 150만원을 썼다고 하시네요. 그것도 학생 할인으로 일반가의 1/4도 안 되는 수준의 가격으로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네요.

한 달 전부터 스케줄을 짜서 매일 같이 연극을 보는 일상과 그것이 가능한 베를린의 인프라에 관한 이야기를 뒤로 하고 이제 오늘의 주제 '페르 귄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페르 귄트>는 현대 사실주의 연극의 아버지 헨리크 입센의 작품으로, 북유럽 전설에 근거한 인물인 페르 귄트를 보면 초현실주의적인 환타지같지만, 사실 키르케고르의 영향을 받아 실존주의 철학을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입센은 노르웨이 출신에 그의 작품들도 노르웨이를 배경으로 하지만, 노르웨이가 아닌 다른 국가에서 주로 공연을 했습니다. 다른 국가들에서 성공을 거두고 노르웨이에서 공연이 되지만, 치부라고 할 수 있는 사회 문제점 등을 드러냈기 때문에 노르웨이에서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독일에서 올렸던 입센의 작품들이 많은 성공을 거두는데, 노르웨이어와 독일어가 비슷한 것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도 해 주셨습니다. ^^ 그리고 언어별로 대사를 할 때 어떻게 느낌이 달라지는지, 리듬을 타는 프랑스어 대사, 그리고 마치 기관단총을 쏘는 듯한 독일어 대사, 그리고 스페인어 대사까지 직접 시연을 보여주셨네요. 이건 블로그에 글로 옮겨도 전할 방법이 없어서...^^

이렇게 입센과 입센의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페터 차덱이 연출한 <페르 귄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페터 차덱에게 '연극의 신'은 바로 입센이었기 때문에 연출을 하면서 더 특별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페터 차덱이 연출한 <페르 귄트>는 공연 시간이 무려  4시간에 달하는데, 주요 장면을 중심으로 먼저 줄거리를 소개하고, 그리고 각 장 일부의 동영상을 보고 해설이 곁들여지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스토리가 방대하다 보니, 또 <페르 귄트>의 장면을 묘사하는 부분은 책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으니 궁금하신 분은 책을 봐 주세요. ^^

강연회 때 준비된 동영상(DVD)은 공연 준비를 하면서 연출가 페터 차덱과 배우들의 연기에 만족하기도 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답을 요구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었습니다. 

초연에서 막이 내리는 장면, 커튼콜 장면까지 보고, 오늘의 강연은 이제 질답 시간으로 넘어갔습니다. 
한국 연극계에 관한 이야기라든지, 베를린에서 연극 배우들은 생활(금전적)에 문제가 없는지, 무대 장치 대신 사람들이 대신하는 이런 연출법이 일반화된 건지 등 다양하고 재미있는 질문들이 있었는데요, 많이 보고 배우고 알수록 더 겸손해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새삼스레 실감한 질문과 답변을 소개하며, 강연회 정리를 마치겠습니다. ^^

"엄청난 수의 연극을 보시고 난 후에 특별히 뭐가 달라졌는지?"

"이전에는 자존심이 셌는데, 이분들(유럽의 연극)을 보고, 내가 연극한다고 할 수 있을까? 내가 감히 연극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참, 뜨거운 강연이 끝나고 풍월당 4층에서 저자 사인회가 있었습니다. 한 권 한 권 정성스럽게 사인을 해주셨는데, 저도 뒤늦게 사인을 받았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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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4일(화) 저녁 7시 30분부터 고려대학교 과학도서관에서 <문화로 먹고살기> 출간 기념 좌담회 - 방송 분야편-가 있었습니다. <문화로 먹고살기>의 저자 우석훈 선생님과 초대 손님으로 CBS의 정혜윤 피디 PD님과 EBS의 김진혁 PD님이 자리를 함께 해 주셨습니다. 진작 포스팅했어야 하는데 일주일이 지나서야 이제야 정리합니다. ^^;
 


알라딘과 함께 한 이번 행사는 생각보다 강연장이 커서 100여분이 참석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자리가 좀 비어 보이는군요. ^^;


우석훈 선생님 - 정혜윤 피디님, 김진혁 피디님이 차례대로 발표를 해 주셨습니다.  사진은 정혜윤 PD님 발표 때 사진으로... (김진혁 PD님 발표 때 찍은 사진이 죄다 잘못 찍혀서...^^;)

우석훈 선생님은 예전과 달리 방송국에서 PD를 정말 뽑지 않는다며 (80년대 아시안 게임, 올림픽 등으로 PD 수가 아주 증가했던 면이 있습니다.), 현재 방송국의 PD들의 연령구조가 고령화되고 있는데 20대 PD의 고용을 충분히 늘릴 여력이 있다는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정혜윤 PD님은 방송국의 비정규직 문제를 얘기하며, "고용 안정이 개인적 호의가 아닌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PD 한 사람의 호의에 의해 스텝들이 고용이 유지되는 식이 아닌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CBS의 고용 안정 시스템에 대해서는 프라이드를 갖고 있다고도 하셨고요. 

김진혁 PD님은 "방송국의 콘텐츠가 생산되는 구조의 특이성 - 일반 회사에서는 보고서 작성 수에 따라 급여를 받는 것이 아닌데, 방송국에서는 제작 프로그램 편당 받는 구조로 되어 있다."면서  몇 개월 간의 긴 시간이 걸리는 프로그램 하나를 하면 금전적으로 손해를 볼 수 있는 문제와 또 이런 프로그램 당 지급되는 보수를 일정 부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특수성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블로그에서는 옮기지 않습니다만, 솔직한 현실(금액)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이런 부분을 들은 분들은 "문화로 먹고살기"는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돌아가셨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깜짝 게스트! 강연에 참석하셨던 한국 최고의 인터뷰어 지승호 선생님이 우석훈 선생님의 소개로 갑작스레 자리를 같이 해 주셨습니다. ^^

시사교양 PD분들의 발표에 이어 다시 우석훈 선생님이 방송 중 드라마 파트의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를 간단하게 하고 참석자분들과 함께 하는 질답 시간으로 넘어갔습니다. 
 
 
자녀분들이 앞으로 문화로 먹고살았으면 좋겠다는 분의 질문이 있었는데요, 오늘 좌담회 참석자분들 중엔 대학생, 고등학생 자녀를 둔 분도 계셨습니다. 지난 독립다큐 "모래" 상영회 때도 그랬습니다만,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시는 부모의 마음이...ㅜ.ㅜ


재능과 열정(이라고 표현되는 굉장한 희생 감수)과 같은 개인의 문제로 환원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바꾸기 위해 힘을 합쳐 나서야 할 때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블로그에서는 거의 전하지 못 했지만) 
현업에 계신 분들의 가감없는, 낙관이 아닌 직시를 위한 이야기와 우석훈 선생님의 이야기가 오늘 참석하신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순서상으로는 이 다음 날이었지만 먼저 포스팅한 "문화로 먹고살기 출간 기념 좌담회 - 출판분야"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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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5일(수) 저녁 7시 30분부터 송파도서관에서 <문화로 먹고살기> 출간 기념 좌담회 - 출판 분야편-가 있었습니다. <문화로 먹고살기>의 저자 우석훈 선생님과 초대 손님으로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의 한기호 소장님, 그리고 한국도서관협회의 이용훈 선생님이 자리를 함께 해 주셨습니다. 



먼저 우석훈 선생님의 발표로 시작되었습니다. <88만원 세대>에서 살짝 언급했던 부분에서 '문화경제학'을 하게 된 경위, '생태경제학'과의 유사점에 대한 이야기 등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문화로 먹고살기>를 쓰기 시작할 무렵, 처음에는 현 정권에 들어와서 문화 시장이 결정적으로 안 좋아진 것은 아닐까 가정을 했지만, 막상 데이터를 보니 사실 그렇지 않았다. 이미 그 이전에 상황이 안 좋아졌다. 문화 관련 지출 비용이 많이 줄었다."

"어제도 방송 분야에 관한 좌담회에 다녀왔지만, 사실 <문화로 먹고살기>에서 다루는 방송 분야나 영화, 연극 분야보다 출판은 그래도 상황이 나은 편이다. 출판 쪽은 화려함은 덜할지라도 그래도 월급 받아서 먹고 살 정도는 된다.리고 한국의 문화 분야 종사자의 절반은 출판에 관련된 (편집자 뿐만 아니라 영업, 인쇄 등 관련 포함) 인력들이다."


그리고 여러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이어졌습니다만, 궁금하신 분은 책을 보시면 됩니다...:-)



다음으로 한기호 소장님의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모두가 글을 쓰는 시대가 왔다. 트위터든, 블로그든, 문자든 잘하지 못 하면 살아남지 못한다. 그런데 잘 쓰기 위해선 잘 읽어야 한다. 쓰기와 읽기는 연동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출판에 미래가 있다."

종이책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한기호 소장님은 전자책 얘기를 하면서, 예전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해 주셨는데, 강연장의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강연장에서 '이북은 없다.'고 했더니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이북을 'e-book'이 아닌 '以北'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이런 시절도 있었다." 



세 번째로 한국도서관협회의 이용훈 선생님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문화로 먹고살기>에서도 사서교사와 공공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만, 역시 현직에 계신 분의 말씀을 들으니 더 

"출판사 앞에서 이런 이야기하는 것이 조심스러운 면도 있는데,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도서관을 이용 많이 해라. 그리고 사실 조사 결과를 보면 도서관에서 책을 많이 빌려보는 사람일수록 책을 많이 산다."

"공공도서관은 보편적 서비스로 누구나 책을 볼 수 있게 해야 하는데, 한국 도서관의 도서구입비가 너무 적다. 
98년 당시 수도권의 고속도로 1km를 까는데 400억 정도의 비용이 든다는 기사를 봤다. 그런데 당시 한국 공공도서관의 도서 구입비는 200억이 안 되었다."

"도서관과 독서실을 구분해야 한다."


"시설과 책은 투자하면 그 순간부터 감각상각이 시작된다. 하지만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대부분 (학교의 사서교사가) 비정규직이다. 최근 수 년간 정규직 사서 교사를 뽑지 않고 있다. 제일 중요한 '사람'에 투자하지 않고 있다."




세 분의 발표를 마치고 참석하신 분들의 질문 시간을 가졌는데, 독립 다큐 '모래' 상영회 때나, 전날의 '방송 분야' 좌담회 때도 그랬지만, 대학생, 고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님들이 자녀들 걱정에 오셔서 질문하시는 분들이 계셨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 왜 사서 교사가 필요하고, 공공도서관에서 책을 더 많이 구입해야 하는지, 현실을 바꾸기 위한 많은 아이디어들이 있습니다만, 실제로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행동이 필요하겠지요. 현장에 계신 분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출판계 종사자로서 ^^ 좌담회 중 사실 제일 기대하고 있던 시간이었는데, 정말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뜨거운" 시간에 함께 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날 강연회에 예스24의 기자분이 오셨고, 나중에 채널예스에도 강연회 기사(+동영상)가 올라갈 예정입니다. 반비 블로그의 포스팅은 너무 간략하게만 소개해서 나중에 기사가 올라오면 링크 추가하겠습니다. ^^)

채널예스 기사 보기 : http://www.yes24.com/ChYes/ChYesView.aspx?title=003004&cont=6948 

10월 11일(화) 저녁 7시 30분에는 정독도서관에서 변영주 감독님과 이해영 감독님을 모시고 영화 분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신청은 인터파크 이벤트 페이지에 댓글로 저자나 초대손님에게 하고 싶은 질문을 남겨주세요.(이벤트 페이지 가기혹은 반비 페이스북에 신청과 함께 질문을 남겨주세요. (페이스북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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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문화로 먹고살기> 출간 기념 강연, 좌담회 등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선 먼저 소개해 드리는 것은 출판 분야의 초대손님을 모시는 좌담회입니다.

- 초대손님 : 한기호(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이용훈(도서관문화비평가, 메타사서)
- 일시 : 2011년 10월 5일(수) 저녁 7시 30분
- 장소 :  송파도서관 서울특별시 송파구 거여동길 273 
            (링크를 클릭하시면 구글 맵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5호선 마천방면 개롱역(1번출구)
- 신청방법 :  예스24 블로그 이벤트 페이지에 댓글로 저자나 초대손님에게 하고 싶은 질문을 남겨주세요.                     (이벤트 페이지 가기 / 위 이미지를 클릭하셔도 됩니다.)


다른 주제의 강연회 소식도 곧 전하겠습니다.^^ 출판 분야에 관심 있는 많은 분들의 신청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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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기념 강연회 첫 번째 ~ 음악과 시와 철학 : 호흡하는 존재에 대해 생각하기 (5/24, 정독도서관)
출간 기념 강연회 두 번째 ~ 철학과 시의 만남 : 지나간 시절을 되찾기 (5/31, 숨도 카페)
얼굴이란 무엇인가?  (5/30, 대치도서관)  

드디어 <철학 연습> 출간 기념 강연회의 마지막 시간, "철학과 무용의 만남 : 신체의 비밀을 찾아서" 강연이 6/2(목), 상수동 이리카페에서 있었습니다.
 



오늘 <철학 연습> 강연의 주제는 "철학과 무용의 만남 : 신체의 비밀을 찾아서" 입니다. 이 자리를 위해 안무가 이나현 선생님이 자리를 함께 해 주시고, 멋진 즉흥춤을 보여주셨습니다.

음악이 없이 춤이 시작되었고, 어느덧 음악이 나오는가 싶더니 다시 고요한 가운데 춤이 이어졌습니다. 모두 숨죽이고 지켜봤던 공연이었습니다. 강연 마치고 질답 시간에, 공연 중 음악이 없는 상태가 있었는데 왜인지라는 질문이 있었는데요, 이에 대해서 이나현 선생님은 "조용한 상태를 사람이 오래 버티기 힘들기 때문에, 공연 중 '무음' 상태가 들어간 것이 아니라'음악'이 들어간 것이라고 설명해 주셨답니다.



이나현 선생님의 즉흥춤 공연이 끝나고, 이제 본격적인 강연의 시작입니다. 사회는 1회 강연 때처럼 김지녀 시인이 맡아주셨습니다. 

 


신체의 비밀을 찾아서
―무용수의 눈과 몸의 문제들


『철학연습』(반비, 2011)이 다루는 것 가운데 하나가 신체의 문제입니다. 현대철학이 그 중요성을 발견하고 늘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신체이지요. 『철학연습』에 나오는 메를로-퐁티, 레비나스, 들뢰즈 등의 사상의 주요 부분에 몸에 대한 명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들은 각자 독창적으로 신체에 대한 사유를 전개해 왔습니다. 주관과 객관 이전적인 원초적 ‘살’로서의 존재(메를로-퐁티), 리듬의 자동성(레비나스), 기관 없는 신체 또는 알(들뢰즈) 등등이 신체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는 개념들이지요.


오늘 저녁엔 안무가 이나현과 함께 신체의 문제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몸은 늘 미리 정해진 생활 방식 속에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어떤 기능에 복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나날의 피상적인 용도성 속에서 신체의 원초적인 모습이 사라져 버리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혹시 모든 용도성으로부터 떠나 있는 신체 자체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은 없는 걸까요? 신체를 쟁기나 다른 연장, 또는 인사하거나 악수하는 기계처럼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신체 자체인 한에서 사용하는 사람이 신체 자체를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사람이 바로 무용가라고 생각합니다. 신체를 신체 자체로서 사용하는 사람.


먼저 우리는 오늘 저녁 이나현의 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나현과 저는 종종 춤과 철학을 한 무대에서 사유해 보는 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이나현은 제가 어떤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왔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녀의 춤의 생성에 영향을 주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철학은 춤의 대본이 아니며, 무용수는 철학적 개념의 개입 때문에 자신의 자유를 침해받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춤은 이미 존재하는 이론을 청사진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오늘 저녁 우리는 춤을 보면서 비로소 신체에 대해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춤이 신체의 숨겨진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래 우리가 춤과 더불어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몇 가지 구절을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곳으로 떠나는 사유는 앞에 펼쳐진 물살이 거세서, 징검다리가 되어줄 디딤돌 몇 개를 늘 가지고 싶어 하니까요.


메를로퐁티: “지금껏 철학은 고작해야 몸을 인식 주관이 대면하는 여타의 다른 대상과 다를 것이 없이 시공을 채우고 있는 연장(延長)으로 보았다. 즉 “규정된 대상의 총합으로서가 아니라 모든 사고에 앞서 스스로 우리의 경험에 끊임없이 현존하는 잠재적 지평으로서의 몸”을 발견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몸은 의식이 지각하는 대상이기 이전에, 몸 때문에 바로 외부 대상들이 우리에게 존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더 이상 세상 바깥에 있는 비신체적인, “고공비행을 하며 내려다보는 주체(상공에서 내려다보는 주관)”는 없으며, 세계 안의 몸과 뒤섞여 있는 의식이 주체가 된다. 피부의 조직끼리 갈라낼 수 없이 얽혀 있듯 의식은 “세계의 조직(tissu du monde)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철학연습』, 112쪽)


레비나스: “리듬은 시적 질서의 어떤 내적 법칙 보다는 시적 질서가 우리에게 작용하는(affecter) 방식을 가리킨다.……주체는 그 리듬 속에 사로잡히고 또 휩쓸려 버린다. 주체는 리듬의 고유한 표상의 일부가 된다. 그 자신에 거스르면서조차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리듬 안에는 더 이상 ‘자아’가 없고, 자아로부터 익명으로의 이행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시와 음악의 매혹 혹은 주술이다. 이런 존재의 양태에는 의식의 형식이 들어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여기서 자아는 그런 존재 양태를 소유하는 특권, 그리고 그의 힘의 특권을 버리기 때문이다. 또 이런 존재의 양태에는 무의식의 형식도 들어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무의식의 경우 전체 상황과 그 상황의 개개 정황들은 분명치 않은 어두운 빛 속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음악 소리에 맞춘 걸음 걸이 혹은 춤의 특별한 자동성(L'automatisme)은 무의식적 인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존재의 양태이다. 오히려 이 존재 양태에 있어선 자신의 자유 속에서 마비된 의식이 놀이하며, 완전히 이 놀이 속에 흡수되 버린다.”(레비나스, 「실재와 그 그림자」에서)


들뢰즈: “들뢰즈는 특권화된 기관으로서의 눈보다는, 어떤 기관도 특권을 행사하도록 전제되어 있지 않은 상태, 즉 ‘기관 없는 신체’를 내세운다. 아무런 기관도 전제되어 있지 않은 이런 신체의 상태를 설명하기 위한 메타포로서 그는 알(卵)을 제시하기도 한다. “우리는 기관 없는 신체를, 기관들이 기관화〔유기체화〕되기 이전의, 그리고 층들(strates)이 형성되기 이전의 알로 다룬다…….” “우리는 알이 유기적으로 되기 ‘이전의’ 신체의 상태를 나타내 준다는 것을 안다.……알은 ‘입도, 혀도, 이도, 후두도, 식도도, 위도, 배도, 항문도 없다.’ 유기적이지 않은 생명 전체일 뿐이다.”……“기관 없는 신체는 기관에 반대된다기보다는, 우리가 유기체라고 부르는 기관들의 유기체화(organisation)에 더 반대된다.……유기체란 생명이 아니라 생명을 가두고 있는 것이다””(서동욱, 『차이와 타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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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회 내용은 간략하게 이 정도로 마치고,  질답 시간. 

<철학 연습> 출간 기념 강연회를 위해 벨기에에서 한국까지 오신, 짧은 기간 동안 시차 적응 기간도 없이 4개의 주제로 4번의 강연을 해 주신 서동욱 선생님과, 같이 해 주셨던 모든 게스트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늦은 시간에 강연회에 참석하셔서 '철학'이라는 것을 실생활과 유리된 것이 아닌 실제 삶에 부딪치는 주제로 소화하신 모든 참석자분들께 정말 감사 드립니다.

참, 혹시 강연회 세 번 모두 참석하신 분 계신가요? 두 번 참석하신 분들은 제가 몇 분 뵌 것 같습니다만. ^^ 강연회 참석하셨던 분들, 후기를 인터넷 서점이나 반비 블로그에 트랙백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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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기념 강연회 첫 번째 ~ 음악과 시와 철학 : 호흡하는 존재에 대해 생각하기 (5/24, 정독도서관)
얼굴이란 무엇인가?  (5/30, 대치도서관)  

2011년 5월 31일(화), 서강대 앞 카페 숨도에서 <철학 연습> 강연회, "
철학과 시의 만남 : 지나간 시절을 되찾기" 강연이 있었습니다.


이날의 강연은 [철학과 시의 만남 : "지나간 시절을 되찾기"]란 주제로, 김경주 시인이 게스트로 나와 주셨습니다. <철학 연습> 독자라면 <철학 연습>에 김경주 시인의 글이 인용된 걸 기억하시겠지요? ^^ 그리고 사회는 허윤진 평론가가 맡아주셨습니다. (공지에는 없던 깜짝 사회랄까요? ^^)




그럼 강연장에 오지 못하신 분들을 위해 강연 내용을 간단하게나마 공유해 봅니다.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정말 많은 분들이 강연장을 찾아주셨습니다. 
지나간 시절을 되찾기

―또는 삶의 반복



1. 잃어버린 시절을 찾는 자전거


『철학연습』의 표지에는 한 소년이 자전거를 타고 갑니다. 그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사유의 온갖 실험을 가시화하고 싶어 하는 듯 소년의 자전거는 위태로운 외발자전거입니다. 그리고 높은 곳을 바라보는 철학의 시선처럼 자전거는 높기도 하군요. 양 팔은 막 이륙하기 직전의 날개이고요. 어디 하나 위험하지 않은 데가 없습니다. 철학은 늘 그렇게 우리를 위험에 빠뜨립니다. 위험 속에서 우리는 잠을 깨고 우리가 돌아 나올 수 없는 세계의 심연을 드디어 드려다 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소년의 자전거가 향하고 있는 하늘은 부드럽습니다. 밀밭을 부드럽게 떠밀며 바람이라도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어둡고 부드러운 하늘의 색깔은, 세계가 한잔의 밀크커피 속에 들어있다는 독특한 우주관을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군요? 마치 ‘추억의 시간’을 보여주는 풍경 같습니다. 추억 속에 종종 등장하는 시간, 저 잃어버린 시절을 찾는 일. 그것이 오늘 저녁 우리가 할 이야기입니다.



2. 잃어버린 시절은 반복을 통해 찾아온다


『철학연습』이 중요하게 다루는 현대 철학의 개념이 바로 ‘반복’입니다. ‘반복’과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일이 무슨 상관이냐고요? 바로 우리는 반복이라는 방식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문제는 곧 ‘반복’의 문제와 같습니다.

『철학연습』은 키르케고르, 프로이트, 들뢰즈 세 사람의 철학자와 더불어 반복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각각 42-43쪽, 65-69쪽, 186-188쪽)

키르케고르는 성서의 인물 욥의 반복에 대해 말합니다. “욥은 축복을 받았고 모든 것을 ‘갑절’로 되받았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반복’이라고 부릅니다.”(『철학연습』, 43쪽) 그는 반복을 통해 가장 본래적인 실존에 도달하는 길을 모색했습니다.

프로이트에서 반복은 일종의 질병을, ‘트라우마’를 성립시키는 원리입니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단지 마음의 병을 해명하는데 그치지 않고, 인류의 정신의 근본 국면을 반복에서 찾았습니다. 모세 살해에서 예수 살해로 이어지는 유대 역사의 반복, 죽은 아버지 숭배를 동물숭배 속에서 반복하는 토테미즘 등등. 이것은 모두 과거의 추억이 무의식 속에 보존되는 방식으로서 반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들뢰즈 역시 반복을 통한 우리 경험의 성립을 설명합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상사의 모든 반복이 들뢰즈의 반복 개념 안에서 종합되고 있지요.

단지 철학자들만 반복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반복을 이야기하는 매우 풍부한 문헌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초대 손님 김경주 시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반복의 문제가 그의 시의 중심에 있는데, 김경주 시에 관한 이야기하고 있는 『철학연습』의 한 구절을 읽어보지요.

반복을 통한 기쁨과 성숙의 문제를 우리 문학에서 찾자면, 김경주의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2006)에서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반복에 관한 이런 구절을 시집에서 읽는다. “나는 어느 유년에 불었던 휘파람을 지금 창가에 와서 부는 바람으로 다시 본다.” ‘다시’ 보는 일, 곧 반복이 여기서 핵심을 이룬다. 이 반복의 경험과 관련해 시인 김경주는 이렇게 말한다. “제 시의 중요한 코드 중에 휘파람이 있는데요. 어린 시절 대중탕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거리에서 아버지가 불던 휘파람 소리가 신기했어요.……언젠가 타이의 시골로 여행을 갔는데, 화장실에서 취해 휘파람을 불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국의 골목에서 그 옛날 아버지가 분 휘파람을 만날 수 있겠구나.……그런데 제가 아버지의 휘파람을 만나고도 못 알아보면 너무 억울해 오열할 것 같았어요.” 과거의 휘파람은 현재의 휘파람이나 바람 속에서 반복된다. 여기서 과거 시간에 뒤늦게(사후적으로) 의미를 부여해주고 그것을 소중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반복인 것이다.(『철학연습』, 187-188쪽)

이런 반복이 어떤 의미에서 우리 경험을 성립하게 하는 근본적인 원리인지 오늘 저녁 우리는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볼 생각입니다.


3. 반복의 다양한 경험들


반복에 대한 몇 가지 인용들과 함께 생각을 전개시켜 볼까 합니다. 문학작품들에서 반복을 다루는 제 글 「이미지와 시간」(『익명의 밤』, 민음사, 2010)에서 주로 발췌한 글들입니다. 문학 작품들이야 말로 사유가 공허한 허공을 디디고 내려앉지 않도록 단단히 한 걸음 한 걸음을 바닥에서부터 떠받쳐주는 사유의 디딤돌이지요.


1) 반복(또는 시간을 되찾기)에 대한 일반적 경험


반복에 대한 가장 유명한 경험을 들자면, 무엇보다도 프루스트의 마들렌 체험이 있습니다.


일본 사람들의 놀이처럼, 물을 담은 도자기 찻잔에 작은 종잇조각을 담그면, 그때까지 구별되지 않던 그 종이가, 물에 약간 닿는 것만으로도 곧 펴지고, 꼬부라지고, 물이 들고, 각기 형태가 달라져서, 꽃이나 집이나 사람 등 쉽게 알 수 있는 모습으로 변해간다……. 집 뜰에 있는 모든 꽃들, 스완씨의 집 뜰에 있는 꽃…… 성당과 콩브레 전체와 그 근교…… 이 모든 것들이 형태를 이루면서 나의 한 잔의 홍차 속에서 나왔다.(『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재미있게도 프루스트와 가장 거리가 멀게 보이는 작가인 사르트르에게서도 위와 같은 프루스트적 시간 찾기가 발견됩니다.


누군가 나에게 봉봉 과자를 줄 때, 어떤 여인이 내 곁에서 매니큐어를 칠 할 때, 시골 호텔의 화장실에서 소독약 냄새를 맡을 때, 야간열차의 천장에 매달린 보랏빛 전등을 볼 때, 나는 내 눈과 코와 혀에 이제는 사라진 당시 영화관의 불빛과 냄새를 되찾는 것이다.(사르트르, 『말』에서).


매우 지적인 독일 작가 제발트 역시 잃어버린 시절을 되찾는 일에 몰두하고 있는데, 놀랍게도 프루스트와 유사한 보도석에 대한 체험을 통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두 작가를 비교한 글인데, 제 책 『익명의 밤』에서의 인용입니다.


하나의 이미지를 형성하며 서로 중첩되는 방식으로 공존하는 현재와 과거를 제발트는 노골적으로 프루스트적 코드를 통해 표현하기도 한다. 프루스트의 포석 체험을 떠올리며 이 구절을 읽어보라. “블라슈스카와 네루도바 사이의 집들과 마당 사이로 난 골목을 꺾어 들어가자, 한 걸음, 한 걸음 비스듬히 올라가면서 발밑에서 고르지 않은 보도석(步道石)을 느끼는 동안 언젠가 내 발 밑에서 이 길을 걸어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생각해 내려고 애쓸 필요도 없이 그렇게 오랫동안 마비되었다가 이제야 다시 깨어나는 감각들을 통해 내게 기억이 열리는 것 같았어요.”(『아우스터리츠』에서) 제발트의 주인공은 프루스트의 화자와 똑같이 발에 부딪치는 포석의 감각 속에서 현재와 과거의 중첩내지 종합을 체험하고 있는 것이며, 이런 의미에서 이 구절은 프루스트의 유명한 다음 구절을 위한 오마주라 할만하다. “몸의 균형을 다시 찾으려고, 먼저 번 것보다 좀 낮게 깔린 다른 포석에 한쪽 발을 딛는 순간, 지금까지의 실망은 나의 인생의 각 시기의 것과 똑같은 행복감 앞에서, 그러니까 발베크 부근을 마차로 산책했을 적에 내가 인식할 줄로 믿은 나무들의 전경이나, 마르탱빌르 종탑의 전경이나, 달인 물에 담근 마들렌 한 조각의 맛이나, 그 밖에 내가 얘기했던, 뱅퇴이유의 최후 작품에 종합되고 있는 것 같이 보인 다른 여러 감각들이 나에게 주었던 것과 똑같은 행복감 앞에서 사라졌다.”(『익명의 밤』, 136쪽)


2) 영화에서 반복과 지각


장-루이 세페르(Jean-Louis Schefer)는 영화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영화는 시간이 내게 하나의 지각으로서 주어지는 유일한 경험이다.” 시간 자체가 어떻게 지각된다는 것일까요? “과거와 미래에 사로잡히지 않은 현재, 이전의 현재에 환원되지 않는 과거, 이제 오게 될 현재로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란 없다.”(들뢰즈, 『이미지-시간』에서) 즉 과거의 반복이라는 방식으로 현재적 지각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3) 사랑에서의 반복과 기원의 부재


여기 사랑에 대한 두 개의 놀라운 텍스트가 있습니다. 토마스 만의 『마의 산』과 움베르토 에코의 『로아나』입니다. 혹시 옛 사랑을 새로운 사람의 얼굴에서 발견한 적이 있습니까? 이 두 텍스트는 바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요컨대 사랑은 현재 속에서 과거의 인물의 반복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눈 여겨 보아야 할 것은 ‘반복만이 있을 뿐 기원적인 것’은 없다는 것이지요. 역시 『익명의 밤』에서 인용하겠습니다.


에코의 경우 과거와 현재의 공명내지 종합에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국면을 엿볼 수 있다. 에코의 소설은 모든 연애의 기원에 있는 사랑을 찾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가 사랑했던 파올라나 시빌라 같은 사람들의 배후에 있는 진정한 사랑, 또는 그가 사랑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가능케 했던, 현재와 공명하는 과거 자체를 그는 찾고자 한다. ‘과거 자체는 찾을 수 있는 것일까?’ 에코는 소설의 마지막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파올라에서 시빌라에 이르기까지 평생에 걸쳐 찾아 헤맸던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로아나』에서) 여기서 화자는 ‘기원적 과거’의 비밀 바로 앞에 서 있는 듯이 보인다. 사랑하는 이의 이미지 배후에서 그 이미지를 가능케 한 과거의 한 순간을 식별해낼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화자는 끝내 뭐라 말하는가? “나는 한 줄기 서늘한 바람이 건듯 불어오는 것을 느끼며, 올려다본다. 왜 태양이 검게 변하고 있지?”(『로아나』에서) 현재 뒤에 숨겨진 과거를 그 자체로 정시할 수 있을까? 마치 현상의 배후에서 순수 과거로서의 이데아를 직관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플라톤의 바램처럼? 결코 그렇지 않다. 여기에 그 자체로 직관 가능한 이데아와와 같은 진리는 없는 것이다. 오로지 과거는 현재와의 공명 속에서만 효과를 발휘하며 그 자체로의 과거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고서 회상할 때 우리가 직면하는 것은 ‘검게 변한 태양,’ 텅 빈 암흑 외에 다른 것이 없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이 오랜 성찰 끝에 최종적으로 결론내리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과거 자체를 찾으려는 노력이 발견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과거 자체가 있어야할 자리엔  검은 태양처럼 아무것도 없으며, 텅 빈 무가 있다. 이것이 알려주는 바는 무엇인가? 우리는 하나의 이미지는 두 항의 공명내지 종합을 통해 성취된다고 여러 번 말한바 있다. 그러나 이 말이 과거의 항은 그 자체로 기원으로서 존립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에코의 화자는 자신의 모든 사랑의 기원에 무엇이 있는지 탐구하려 했다. 거기엔 ‘무(無)’가 있다. 왜냐하면 사랑의 텍스트는 현재와 과거의 공명 속에서 태어나는 것이지, 기원적인 과거 자체의 사랑이란 없기 때문이다. 이 점은 이미 토마스 만이 잘 보여준 바였다. 『마의 산』에서 주인공 한스 카스트로프는 쇼사 부인에게 사랑의 감정을 가지게 된다. 이유는 이 사랑의 배후에 과거 초등학교 시절 동급생 회페에 대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한스 카스트로프는 비난하고 싶은 기분으로 이 행실이 나쁜 부인을 보면서, 그녀를 보면 무언가가 연상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마의 산』에서) 그런데 한스 카스트로프는 쇼사의 배후에 있는―또는 배후에서 연상되는―회페를 사랑하였는가? 천만에! 그는 회페를 사랑하고 쇼샤 부인을 통해 이 사랑을 또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사랑이란 한번이며, 현재와 과거가 종합되면서 그것은 가능해진다. 별개로서 현재와 과거 각각은 그 무엇도 아닌 그저 무일뿐이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그리고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로아나』가 결론적으로 주장하는 바는, 기원적인 사랑이란 없다는 것이다. 과거는 사후적으로 현재와의 공명 속에서만 사랑의 텍스트로 완성될 뿐이며, 결국 시간적 차원에서 이미지의 형성은 ‘기원의 부재’를 전제한다고 말해야 한다.(『익명의 밤』, 138-139쪽)


4) 반복과 무의식


마지막으로 반복은 무의식을 경유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쉽게 말해 우리가 늘 새로운 경험을 하는 듯이 여기는 것은 반복이 의식되지 않는 층위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최동훈 감독의 영화 「전우치」(2009)가 이 점을 잘 알려줍니다.


삶이 반복되긴 하는데, 자리를 바꾸고 위장된 채로 반복된다는 사실 자체를 주제로 삼고 있는 예술 작품이 최동훈의 영화 「전우치」(2009)이다. 영화 전체가 위장된 반복의 문제에 대해서 숙고하고 있는데, 내레이션을 통해 위장된 반복을 이렇게 기술하고 있기도 하다. “마성에 빠진 표운 대덕과 요괴들은 지상으로 쫓겨 와 인간의 몸속으로 숨어들었고, 자신이 누구였는지 그 기억마저도 잃어버렸다.” 마지막의 “자신이 누구였는지 그 기억마저도 잃어버렸다.”는 구절만큼 ‘자기 자신이 되어야한다.’는 코기토에 대한 요구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 것도 없으리라. 윤회 속에서 모든 것은 위장된 가면의 반복이며, 그 자체로 정체성이 확정된 주체란 없다.(『익명의 밤』, 143쪽)


데카르트의 코기토는 ‘자기 의식’입니다. 자기에 대한 앎에서 성립하는 것이 이 의식이고 이것이 근대적 주체의 근본이었습니다. 반대로 자신의 존재와 그에 대한 분열이 현대적 주체를 특징짓습니다. 오늘 이야기하는 ‘반복’은 주체의 이 국면과 관계하고 있지요. 앞서 보았듯 반복은 무의식을 경유해 작동합니다. 스스로 알지 못하는 사이 작동하는 반복이 주체의 새로운 자리를 가리켜 보이고 있군요……. 만일 ‘윤회’를 철학적으로 사유하는 일이 가능하다면 바로 이런 반복의 개념을 통해서 일 것입니다. 『철학연습』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철학자 들뢰즈는 ‘윤회’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의 삶은 다른 삶을 다른 수준에서 다시 취할 수 있다. 이것은 철학자와 돼지, 범죄자와 성인이 거대한 원뿔의 서로 다른 수준에서 동일한 과거를 연기하는 것과 같다. 이것이 바로 윤회(métempsychose)라 불리는 것이다. 각각의 인물은 자신이 연기할 소리의 높이와 톤, 그리고 아마도 가사까지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가사를 말하든 곡조(air)는 늘 같다.”(『차이와 반복』에서) 돼지가 철학자 속에, 범죄자가 성인 속에 반복될 수도 있는 것일까요? 마치 윤회하듯? 김경주 시인의 시를 보면 그런 것 같습니다. 시인은 말합니다. “그는 음악이면서 동시에 사람인 존재다. 전생에 음악이었지만 현세에 사람으로 다시 환생한다.”

늘 우리는 되찾은 시간 속에서만 우리의 현재를 지각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현재는 완벽하게 새로운 이미지의 범람이고 우리는 그 안에서 길을 잃겠지요. 이 말은 우리는 현재의 삶 안에서 늘 과거를 반복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삶은 이런 반복 속에 표류합니다.



그리고 이날 강연 역시 음악이 함께 했습니다. 이아름님이 시작과 마무리를 맡아주셨습니다.

posted by Banbi Editor!


지난 포스트에서 소개했던대로 5월 30일(월), 대치도서관에서 "얼굴이란 무엇인가?"란 주제로 <철학 연습> 강연이 있었습니다. 오전 10시 30분이라는 시간대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오셔서 강의장을 가득 채워주셨습니다. 아쉽게 참여하지 못하신 분들을 위해 강연회의 요약 원고를 소개해니다. 아이폰으로 동영상도 찍었는데요, 이것도 곧 공개하겠습니다. ^^

 


얼굴이란 무엇인가?

—『철학연습』의 한 가지 주제



『철학연습』(반비, 2011)은 현대 철학 이론들을 명료하게 보여주려하기도 하지만, 우리 일상적 삶의 평범한 요소들이 숨기고 있는 의미들을 찾아나서는 작업 역시 중요하게 여기는 책입니다. 우리 일상을 이루는 것들, 가령 돈이나 터치스크린이나 사랑 같은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 이 책의 목적입니다. 『철학연습』이 골똘히 생각하는 그런 일상적인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얼굴’이지요. 사실 우리는 얼마나 많이 얼굴에 몰두하고 있습니까? 발전일로의 화장품 산업과 성형 열풍이 잘 알려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얼굴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이런 몰두의 비밀에 접근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 가장 일상적인 것,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신체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이 얼굴 안에는 어떤 비밀이 감춰져 있을까요?


1. 잉여적인 것?

피부가 벽을 씌우고 있습니다. 거기 기관들이, 그러니까 눈, 코, 입이 걸려있군요. 이 이상한 칠판을 얼굴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얼굴은 그저 피부와 보는 기관(눈), 말하는 기관(입), 냄새 맡는 기관(코)의 조합이 아닙니다. 얼굴에는 그 이상이 있습니다. 그 초과적인 것을 우리에게 익숙한 하나의 낱말을 골라 ‘영혼’이라고 불러 볼까요? 오늘 이야기는 결국 이 초과적인 것에 관한 것입니다.


2. 시선을 통해 나의 정체성을 만들다.

이 얼굴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만들어 나갑니다. 사르트르가 말하는 자신의 어렸을 때 체험 가운데 이런 것이 있습니다. 『철학연습』에 쓰인 글을 읽어보죠.

어린 사르트르는 실수 때문에 동네 부인들에게 핀잔을 들었을 때 다음과 같은 행동을 취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달아나, 거울 앞으로 가서 상을 찌푸렸다. 지금 그 찌푸린 얼굴을 회상해보건대 그것은 자기 방위의 구실을 했다. 벼락같은 수치심이 공격해오자 나는 근육을 방패삼아 자신을 지킨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찌푸린 얼굴은 내 불운을 극단으로까지 몰고 감으로써 도리어 나를 해방시켜주었다.” 이것이 거울을 통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해방되는 과정이다. 타인의 시선은 나를 타인이 부과한 의미대로 존재하는 ‘대상’으로 만들며, 이런 의미에서 타인의 시선 앞에 사로잡히는 것은 제한받음이고 구속이다. 가령 이렇게 말이다. “나의 진실, 나의 성격 그리고 나의 이름도 어른들의 손아귀에 쥐여 있었다. 나는 그들의 눈을 통해서 나 자신을 보는 법을 배웠다.” 그야말로 타인의 시선 앞에 나는 먹잇감처럼 주어져 있다. 이와 달리 거울에 몰두하는 행위는, 타인의 시선을 통해 내가 규정되는 것을 피해 자신의 시선을 통해 스스로 규정하는 행위였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거울놀이는 나를 마음대로 규정하려 드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역할을 했다.(『철학연습』, 94-95쪽)


시선은 그것이 타인의 것이든 나 자신의 것이든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일에 관여합니다. 시선은 무엇인가를 평가하고 판단하고 규정하기 때문이지요. 위 글에서 어린 시절의 사르트르는 거울을 바라봅니다. 바로 타인의 시선이 나 나 자신을 규정하는 일을 피해서 자기 스스로 자신의 정체를 규정하기 위해서지요. 바로 거울 속에서 자신의 얼굴을 직시함으로서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렇게 거울을 통해 얼굴을 바라보는 일, 자신의 얼굴을 반성하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볼 것입니다. 거울을 보고 하는 일, 가령 ‘화장’ 같은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나 자신의 참다운 얼굴을 찾는 일일까요, 아니면 자신의 얼굴을 숨기는 ‘자기기만’일까요? 이런 생각에 꼬리를 물고 또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우리 얼굴은 얼마나 독창적인 원본인가 하는 것 말이지요.


우리의 헤어스타일, 화장하는 방식, 기분에 따라 즐겁거나 불쾌함을 나타내는 표정 등은 독창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모두 다른 얼굴로부터 ‘인용’된 것이다. 글을 쓰는 이가 다른 책의 구절들을 인용하면서 한 편의 논문을 완성하듯 우리는 남의 표정과 스타일을 복사한다. 이렇게 다른 것을 베껴 쓰는 방식으로 얼굴을 꾸미고 살아가는 형태는 오늘날 성형의 확산과 더불어 더욱 생기를 얻고 있다. 성형을 하는 이는 아바타를 구매하듯 상점에 놓인 얼굴을 구매한다. 또는 멋진 그림 하나를 자기 얼굴 위에 베껴 그린다. 그렇다면 이것은 가짜 인생이라 해야 하는가?(『철학연습』, 251쪽)


어쩌면 원본 없는 인용의 시작도 끝도 없는 나열이 우리 얼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삶은 하나의 인용에서 다른 인용으로, 하나의 표정에서 다른 표정으로 끝없이 이동하는 방랑의 결과일 테고요…….


3. 관상술

얼굴은 또한 미신을 위한 공간이기도 합니다. 얼굴이 마치 숨겨진 지도나 되는 듯 사람들은 얼굴 속에서 운명의 길들을 읽어내려고 시도하기도 합니다. 바로 관상술 말입니다. 가령 이런 관상보기의 예가 있습니다. 『철학연습』에서 읽어보겠습니다.


1980년대 중반에 엄청난 베스트셀러로 성공을 거두었던 소설 가운데, 정비석의 『손자병법』이 있다. 춘추시대를 다루고 있는데, 와신상담(臥薪嘗膽)이란 고사의 주인공인 월나라 구천(勾踐)이 20년 가까이 쓰디쓴 쓸개 맛을 보며 오나라 부차(夫差)에게 복수를 준비한 후 마침내 책략가 범려(范蠡)의 도움으로 승리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승리를 얻은 구천이 그간 도움을 준 범려를 소홀히 하자 그는 이렇게 구천의 관상을 본다. “범려는 관상학적 견지에서 구천의 얼굴을 새삼스러이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내심 크게 놀랐다. 왜냐하면, 구천은 목이 길게 패어 있는데다가 입은 새 주둥이처럼 삐죽 나와 있는 ‘장경조훼형(長頸鳥喙型)’이었기 때문이었다. 관상학으로는, 목이 길고 입이 새 주둥이 같이 생긴 사람은 ‘환난(患難)은 같이할 수 있어도, 환락(歡樂)은 같이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전해 오지 않던가.” 그 길로 범려는 구천에게서 도망칠 마음을 먹는다. 소설이 기록하고 있는 이 관상보기는 정사(正史)에 나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타인과 자신과의 관계를 ‘이성을 통해 확정하기 어려울 때’ 사람들이 종종 관상보기를 통해 길흉화복을 점치는 습성을 가지고 있음을 잘 예화하고 있다. 그러니까 관상학은 일종의, 외적 징후를 통해 사람에 대한 지식을 획득하는 방법이다.(『철학연습』, 304쪽)


사람들은 왜 관상 같은, 일종의 미신에 매달릴까요? 아마도 알 수 없는 운명이 두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천을 통해 운명을 개척해나가야 할 지점에서 우리는 멈칫거리며 관상술로 도망갑니다. 그래서 헤겔은 관상술에 탐닉하는 사람을 이렇게 혹독하게 대합니다.


누군가 당신 관상을 보며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치자. “자네는 정직한 사람인 양 처신은 하지만 사실은 억지로 그러는 척할 뿐, 본심은 악한(惡漢)이라는 것이 자네 얼굴에 드러나 있네.” 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다음과 같이 행동하라고 권유하고 있다. “그런 말을 듣는 순간 적어도 사나이답게 행동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당장에 세상을 날려버리기라도 할 기세로 그의 따귀를 후려칠 것이 틀림없다. 그렇게 응수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밖에 없으니, 참으로 이렇게 대응하는 것만이 ‘인간의 현실성은 그의 얼굴에서 드러난다’는 생각을 학문의 으뜸가는 전제로 내세우는 데 대한 반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철학연습』, 305-306쪽)


우리는 오늘 관상술 같은, 지식의 외관을 쓴 미신과 이 미신을 신봉하게끔 하는, 미래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 운명과 실천 등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4. 얼굴을 통해 무한자와 만난다?

앞에서 우리는 얼굴이란 잉여적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눈의 생김새, 눈의 기능, 입이나 코의 조형성과 기능 등등으로 다 설명되지 않는 것이 얼굴입니다. 한 사람의 얼굴에는 늘 ‘초과적인 것’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얼굴은 우리가 가진 개념이나 이론이나 그 어떤 것을 통해서도 다 한정하지 못하는, 무한한 측면이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런 얼굴의 무한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철학연습』에서는 얼굴의 이 무한성을 윤리적인 측면에서 접근해 본 적이 있습니다. 아래 한 구절 읽어 보겠습니다.


타자는 모든 것이 박탈된 궁핍한 얼굴의 모습으로 나에게 현현(l'épiphanie)한다. 나는 다른 사물을 인식하듯 타자를 인식할 수 있다. 또 타자를 수단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나의 세계를 구성하기 위해 여러 방식으로 타자를 소유할 수 있다. 그러나 고통 받는 얼굴은 내가 어떤 식으로도 소유할 수 없는, 절대적으로 나와 다른 자이다. 그 얼굴은 나의 모든 능력에 반대하여 나에게 ‘저항’한다. 얼굴의 저항이란, 대상 세계를 소유하고 지배하려고 하는 나의 힘을 무력화시키고 나의 윤리적 행동을 촉구하는 ‘윤리적 저항’이다. 고통 받는 타자의 얼굴은, 가령 ‘살인하지 말라’고 나에게 명령한다. 타자는 나 보다 높은 곳에 있는 나의 주인처럼 내가 윤리적으로 행동하기를 명령하고 나는 그 명령을 회피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어떤 식으로도 나에게 규정되지 않고, 오히려 나의 힘을 무력화시키고 나에게 명령하는 타자의 얼굴이란, 형이상학의 대상, 규정 불능의 무한자, 곧 신의 흔적과도 같다. 신은 바로 타자의 얼굴을 통해서 내게 말을 건넨다.(『철학연습』, 128쪽)


이번 강연을 통해서 우리는 이렇게 머리에 씌워진 두건, 얼굴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보려 합니다. 



강연회 마치고 질답 시간. 하나라도 더 질문하고 싶어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오늘 카페 숨도에서의 강연회도 기대되네요. ^^

 강연회 1부 : 음악과 시와 철학 : 호흡하는 존재에 대해 생각하기
                     5/24(화) PM 7:30 정독 도서관


- 강연회 2부 : 철학과 시의 만남 : 지나간 시절을 되찾기
                     5/31(화) PM 7:30  서강대 앞 카페 숨도


- 강연회 3부 : 철학과 무용의 만남 : 신체의 비밀을 찾아서
                     6/02(목) PM 8:00 상수동 이리까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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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연습> 출간 기념 릴레이 강연회

- 강연회 1부 : 음악과 시와 철학 : 호흡하는 존재에 대해 생각하기
                     5/24(화) PM 7:30 정독 도서관 => 강연회 후기 보기

- 강연회 2부 : 철학과 시의 만남 : 지나간 시절을 되찾기
                     5/31(화) PM 7:30  서강대 앞 카페 숨도


- 강연회 3부 : 철학과 무용의 만남 : 신체의 비밀을 찾아서
                     6/02(목) PM 8:00 상수동 이리까페

위 강연 시간표는 예전 포스팅과 같은 것 또 올린 것 맞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 공지된 강연 외에 숨겨진 <철학 연습> 강연회가 한 번 더 있습니다. 반비 블로그는 물론 트위터나 페이스북에도 아직 공개하지 않았던 강연! 그것은 바로 대치도서관 강연!

5/30(월) AM 10:30 대치도서관 문화교양관 (강남구 대치동 316번지 은마아파트 복지상가 2층)
 

강연 시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월요일 오전 10시 30분 강연이라, 참석이 어려우신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혹시가능하신 분이 계시면 강연회에 와 주세요. ^^ (이 강연회는 게스트 없이 서동욱 교수님의 강연으로만 이루어집니다.)


1회 강연회 때 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강연회에 오신 분들께는 예쁜 '반비 노트'를 드립니다! 물론공지된 2, 3회 강연회 뿐만 아니라 대치도서관 강연에 참석하신 분들께도 드립니다. 

1회 때 여분을 챙겨갔음에도 불구하고 원래 신청해 주셨던 분들보다 훨씬 더 많은 분들이 와 주셔서 늦게 오신 분 중엔 못 받으신 분들도 계셨던 것 같은데요, 이번엔 충분한 수량 챙겨가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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