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객시대』 출간 기념 연속 강연회


1. 사회과학의 시대, 논객의 시대, 그리고 대중 인문학의 시대

- 토론자 : 박해천, 노정태

- 일시 : 2014년 3월 7일 저녁 7시

- 장소 : 동대문구 정보화 도서관 지하 2층 시청각실 (약도



2. 논객시대가 끝난 후, 청년논객이 된 이들의 운명은?

- 토론자 : 김민하, 노정태

- 일시 : 2014년 3월 21일(금) 저녁 7시

- 장소 : 마포 구립 서강 도서관 3층 세미나실 (약도)



3. 예전의 그 논객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나?

- 토론자 : 우석훈, 노정태

- 일시 : 2014년 3월 28일(금) 저녁 7시

- 장소 : 동대문구 정보화 도서관 지하 2층 시청각실 (약도


신청 방법 : 알라딘 블로그에 신청(링크)

posted by Banbi Editor!
  • BlogIcon 좌담회 참석자 2014.03.09 01:39

    첫 번째 좌담회 참석했습니다. 생각보다 길게 진행되었지만 박해천, 노정태 두 분께서 워낙 흥미롭고 유익한 대담을 나눠 주셔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었습니다. 이런 자리 마련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뒷자리에 앉으신 관계자분으로 보이는 여성분께서(빨간 스웨터 입은셨던 분) 대담 중에 계속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시는 바람에 협소한 장소 특성상 매우 거슬리고 방해가 되었습니다. 다음 좌담회 때는 제발 그러시지 않았으면 해요.

    • Favicon of https://banbi.tistory.com BlogIcon Banbi Editor! 2014.03.11 11:29 신고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분은 기자 분이시고, 이번 주말에 기사로 나갈 예정이랍니다. 감사합니다.


논객시대

인문・사회 담론의 전성기를 수놓은 진보 논객 총정리



청년 논객 노정태가 다시 읽은 진보 논객들, 그리고 그들과 우리의 시대


그러나 나는 ‘논객들의 시대’를 ‘나의 시대’와 날카롭게 대립시킬 생각이 없다. 현재를 살아가는 수많은 청년들처럼, 나 역시 그들의 글을 읽으며 머리가 굵어졌고, 이 논객들의 영향력은 아직도 죽지 않았다. 그들 중 일부는 나와 다른 독자들을 크게 실망시켰고, 다른 이들 또한 예전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지는 못하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살아 있을 뿐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일원이다. 그러므로 ‘논객시대’는 곧 나의 시대이자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시대이다.(25쪽)




1.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1990~2000년대 인문사회 담론의 총정리, 혹은 비판적 성찰


  1990년대~2000년대 초반은 대한민국 역사상 문화적으로 가장 풍요로웠던 시기로 회고된다. 물론 이 과장된 수사는 노스탤지어를 자극해 문화적으로 구매력 있는 마지막 세대의 소비를 최대화하려는, 불황의 늪에 빠진 각종 업계의 몸부림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기도 하다. 

  가령 가장 열악한 문화 업종 중 하나인 출판을 보자. 이 시기는 특히 인문사회 출판계의 전성기로 꼽힌다. 진중권, 김어준, 유시민, 박노자, 한홍구, 강준만, 홍세화 등 이 시기에 인문사회 필자로 알려진 이들은 십만 부 단위 베스트셀러 필자들이기도 하다.

  또 1988년 ‘직배’가 풀리고, 1995년 『키노』와 『씨네21』이 창간되고, 1996년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개최되고, 1998년 일본 문화까지 개방되면서, 영화산업 역시 이 시기에 1960년대를 능가하는 전성기를 맞았다. 1990년대 PC통신에서 영화평을 주고받던 사람들과 유사하게 음악평을 주고받던 사람들 역시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에 걸쳐 고정 향유층을 거느린 창작 집단과 비평 집단으로 재탄생했다.

  이런 점에서 1990년대~2000년대 초반의 문화적 역량을 재평가하고 회고하는 서술들이 기사의 형태로, 논문이나 책의 형태로, 혹은 문화상품의 형태로 쏟아져나오는 것은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일이다. 아니 오히려 더 다양한 관점에서 더 많이 이루어지도록 장려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이 책 역시 큰 줄기는 1990~2000년대의 회고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다른 많은 재현들과 달리,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낭만적으로 회고에만 머물지는 않는다. 책의 성격을 ‘총정리’라고 (부제에서) 설명하긴 했지만 오히려 비판적 성찰에 가깝다. 대중들이 다양한 인문, 사회 담론에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던 그때를 회고하기는 하지만, 그때의 어떤 논리들과 방법들과 선택들이 오늘의 상황으로 어떻게 이어졌는지(의도, 효과, 부작용, 가능성)에 천착하는 책이다.

  물론 이미 이런 문제의식에서 ‘민주화’ 이후 혹은 신자유주의 이후를 성찰하는 작업들은 많이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특히 사회과학의 시대가 저물던 무렵 새로운 형태의 공론장의 가능성을 열어 보여준 논객들을 통해 이 시기 이후의 변화를 정리해본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논객시대의 ‘벽지’에 비유된 강준만, ‘잉여’ 청년들의 감수성을 건드려 ‘횽’ 소리를 듣는 유일한 논객이 된 진중권부터 지식소매상이라는 완벽한 명함으로 정치도매상을 겸해온 유시민, 터무니없을 정도의 해박함으로 모든 것을 비판하는 급진 불교도 마르크스주의자이지만 대중에게서 점점 멀어져가는 박노자, ‘88만원 세대’라는 말로 2000년대 중후반을 뒤흔들며 논객시대의 막차에 올라탄 우석훈, 중간계급 지식인의 죄책감을 타깃으로 해왔으나 목표물이 흐려지자 미궁에 빠진 김규항, 세계시민적 개인주의자와 음모론적 정치 선동가라는 두 개의 얼굴로 대중의 (성찰 없는) ‘열광’을 이끌어낸 김어준, 남민전 투사의 이미지를 벗고 친절한 ‘빠리'의 안내자를 자처했으나 똘레랑스와 앵똘레랑스의 끝나지 않는 전쟁에 빠져버린 홍세화, 기자-소설가-언어학자라는 세 겹의 정체성을 균형 잡히게 이끌어오다 절필을 선언하고 트위터리안 JS로 거듭난 고종석까지. 숲(의 변화)을 보려면 숲 속에 서서 나무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저 멀리 건너편 들판에서 쳐다봐야 한다는 통념에 반대하며 이 책은 변화의 한복판에서, 아주 구체적으로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짚어가며 숲의 새로운 형상을 또렷이 그려낸다.


본인의 ‘풍자문학’이 “논문과 에세이를 넘나드는 포스트모던”이라고 스스로를 조롱했던 이가, 15년이 지난 후에는, 진지한 어조로 자신의 글을 “굳이 말하자면 논문과 수필을 뒤섞어놓은, 아주 특정한 의미에서 ‘에세이’”라고 소개한다. 전자는 ‘놀이’로 포스트모던’하고 있는 반면, 후자는 ‘일’로 ‘포스트모던’하고 있는 것이다. 조각글을 모아서 책을 내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2000년의 진중권은 “내가 생각하던 글쓰기는 이런 게 아니”라고 절규했지만, 언제부턴가 그는 자신의 ‘잡문’을 하나씩 흩뿌린 후 ‘별자리’를만들 수 있다고 말하며 자신을 설득하고 있다.(93쪽)


2010년부터, 즉 2012년 대선 분위기가 서서히 달아오르던 시점부터 강준만이 쓴 정치적 텍스트는, 거의대부분 이런 방식으로 자신이 10여 년 전에 썼던 글과 거칠게 충돌한다. 마치 무기 상인이 평화운동가가 되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이상한 느낌이다.(…) 가령 우리는 강준만이 『김대중 죽이기』에서 박찬종을 비판할 때 썼던 논리를 고스란히 안철수를 향해 휘두룰 수 있다. 기존 정치권에 대한 혐오를 인기의 동력으로 삼는다고, 엘리트에 대한 대중의 동경심에 바탕을 두고 포퓰리즘 정치를 수행한다고 기타 등등. 강준만이 박찬종을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낸 화법은 거의 어김없이 안철수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물론 강준만은 “알고리듬으로 놓고 보자면, 안철수 현상은 한국형 포퓰리즘의 업보였지만, 콘텐츠로 놓고 보자면, 한국형 포퓰리즘의 원인이 된 증오 상업주의의 전면 타파”였다고 말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박찬종 역시 알고리듬으로 보자면 양김 시대의 업보였지만 콘텐츠로 보자면 양김 시대의 전면 타파였다.(60쪽)


유시민은, 그렇게 만든 열린우리당마저도 대통합민주신당으로 바뀌고, 대통합민주신당이 통합민주당으로 변하고, 통합민주당이 다시 민주당으로 당명을 개정한 2009년이 돼서야 “개혁당의 정신을 열린우리당에서 실현하고자 했던 시도는 실패했으며, 그 원인이 오판에 있든, 능력부족에 있든, 실패의 가장 큰책임이 나에게 있다고 생각한다.”며 때늦은 사과의 말을 남겼다. 고양 덕양갑에서 개혁국민정당 깃발 아래 당원들의 헌신적인 자원봉사에 힘입어 재보선 국회의원이 된 지 약 6년 만의 일이었다.(109쪽)


월드컵에서 황우석으로 이어지는 김어준의, 말하자면 ‘흑역사’를 그의 단행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개별 사건에 대한 언급이 이러한 형태로 ‘은폐’돼 있다는 것은 전혀 당연하지 않다. 이거야말로 의미심장한 일이며, 적극적인 해석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손에 들린 단행본을 열쇠 삼아 인터넷을 검색하게 되었고, 김어준이 감추면서 동시에 드러내고 있는 나머지 반쪽의 자아를 확인했으며, 더불어 그가 살아온 시대의 밑그림을 얻었다.(234쪽)




2. 대중 인문학의 시대, 멘토의 시대에 공론장의 변화를 고민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사회참여형 지식인들 중 빅네임이라 할 만한 개인들의 역사를 탐색하며 그들을 사후적으로 평가하고 비난하는 쉬운 길을 택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논객들이 주요한 사안들을 놓고 어떻게 대립하거나 협력했는지를 다룸으로써, 1990년대 이후의 다양한 정치, 사회, 문화적 사건들(그리고 그에 대한 논쟁들)의 지도를 그려보는 기능도 담고 있다. 가령 김대중 정권의 탄생, 1997년 외환위기, 2002년 월드컵, 이라크 파병, 황우석 사태, 디 워 논란부터 옥석논쟁, 김규항의 ‘그 페미니즘’ 논쟁, 월장 사태, 영어공용화론 등의 소소하지만 중요한 논쟁들까지가 촘촘히 호명되는 것이다. 또 ‘대중’들이(‘우리’가) 그들에게 무엇을 기대했고, 어떤 열망이 그들을 만들어냈는지 역시 놓치지 않는다는 것도 중요한 미덕이다.


외환위기가 발생하면서 동시에 정권이 교체되었다. 1997년은 그런 면에서 한국 현대사의 한 분수령이라고 할 수 있다. 객관적으로 경제 차원에서 분석해본다면 1997년의 외환위기는 그해 태국이 고정환율제를 포기하면서 벌어진 아시아 금융위기의 연장선에서, 정부의 보증을 받아 무리하게 단기 외화를 차입해 공격적인 경영을 하던 기업들이 순식간에 지급 불능 상태에 빠져 결국 외환보유고가 바닥나게 된 사건이다. 하지만 당시를 살아가던 수많은 한국인들에게 이는 제2의 을사조약이요, 경제 주권 침탈이며, 잿더미 속에서 일으켜 세운 나라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나머지 빚더미 위에 나앉게 된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68쪽)


  사실 이 책의 중요한 키워드는 ‘안티조선’ 운동, 혹은 언론개혁 운동이다. 말하자면 이 책은 기존언론에 대한 지식인과 시민의 불신과 불만과 비판이 매체 환경의 변화와 어떻게 마주쳐서 정치사회적 논의의 형식과 내용을 어떻게 변화시켰고, 또 그것이 거꾸로 오늘날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를 정리한 책이기도 하다.


실명비판에 열광하는 독자들은 오늘날의 대중들이 김구라처럼 ‘독설’을 내뱉는 연예인에게 환호하는 세태와 별로 다르지 않은 맥락에서 강준만의 책을 읽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명비판은 어쨌든 비판하는 자와 비판받는 자, 즉 주체와 객체를 개인 단위에서 명료하게 드러냈다. 주체와 객체로 이루어진,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근대 세계의 문이 열린 것이다.(37쪽)


언론개혁운동, 혹은 ‘안티조선’이라는 쇠는, 이미 강준만이라는 대장장이의 생각보다 훨씬 뜨거워졌다. 반면 강준만이 “처음에 구상했던 그 방식은 실패로 돌아갔다. 정기 구독자 10만 이상을 목표로 했던 잡지는 1만을 넘어서더니 그 이후론 계속 내리막길을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 하지만 정작 시민들은 강준만의 상각과 달리, 인쇄매체가 아니라 인터넷에 뿌리를 둔 정치운동, 선거운동, 언론 소비자 운동의 방향으로 기울고 있었다. 21세기에 들어서자 시민사회에서 진행되던 언론운동은 정치개혁에 대한 열망과 서서히 한몸이 되어갔다. 이에 대한 강준만의 입장은 양면적이었다.(46쪽)


정치적 목적으로 콘텐츠를 쏟아내기 위해 자신만의 구텐베르크 은하계를 만들어냈던 강준만은, 국가정보원이 출판사가 아니라 ‘일간베스트’나 ‘오늘의 유머’를 관리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MBC에서 30년을 근무한 손석희도 종편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진중권은 『중앙일보』에 칼럼을 쓰고 있으며, ‘진보도 상업주의적일 수 있지 않느냐’고 따져묻던 강준만의 근작 『증오 상업주의』는 2010년도 전북대학교의 연구비 지원을 받아 출간되었다.(62쪽)


그러므로 『디 워』 논란을 다룬 각도에서 보자면 이러하다. 어떤 이론가가 주창한 방안을 진작부터 실행에 옮기고 있던 한 창작자가 있다. 그런데 이론가는 창작자의 결과물을 보고 진저리를 내며,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소리를 외치기 시작한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지만, 마법소녀의 주문 같기도 하고 뭔가 묘한 매력이 있다고 느낀 대중들은 이론가에게 호감을 갖기 시작한다. 마침내 이론가는 기존 독자층을 벗어나 대한민국 최초로 자신을 ‘횽’이라고 부르는 팬 집단을 거느리게 된다.(84쪽)


  정통적인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의 고리타분하고 위선적인 언어를 고발하고 비판하며 시작된 이러한 ‘개혁’의 움직임은 대중들과 긴밀히 소통하고 구체적 이슈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밝히며 치열하게 논쟁하는 사회 참여형 지식인들을 대거 데뷔시킨 후, ‘횽’이라 부르며 따르는 대중들에게 즐거움을 주거나, ‘닥치고’라며 지령을 내리거나, 심지어 그들을 힐링해주는 스타 지식인들 몇몇을 남기고는 공론장과 함께 허무하게 사라졌다.


강준만은 활자 매체를 읽고 인용해서 비슷한 종류의 매체를 통해 타인들을 호명했다. 그리하여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까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근대적인 방식으로 의사소통하는 주체들이 대량생산될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 담기는 내용은 전근대적이거나 탈근대적이었다. 조선 말부터 이어지는 기득권 세력을 표상하는 하나의 언론사, 이에 맞서는 한 사람의 영웅, 영웅에게 자아를 의탁하는 나. 전근대적 자기 동일시는 탈근대적인 매체인 인터넷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졌고, 네티즌들은 강준만이 김대중을 위해 만들어낸 다음 노무현을 위해 갈고닦은 논리를 무한 증식했다.(61쪽)


  김어준의 『딴지일보』와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유시민의 『100분토론』, 김규항의 블로그, 진중권의 민노당 게시판, 고종석의 트위터. 이 책에서 다루는 논객들은 우연찮게도 각자 다양한 매체를 구사하고 활용하거나 심지어 만들어내기까지 했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정리’하는 이 책은 기본적으로 그들의 ‘책들에 의거’한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10년 후 쯤 우리가 어디에 서있을지 고민을 시작해볼 수 있지 않을까?


오늘날은 정치인들이 직접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의견을 올리고, 그것을 기자들이 기사화하고, 논란이 생기면 다시 SNS를 통해 해명하는 것이 일반화돼 있다. 당시만 해도 사정이 전혀 달랐다. 당시는 종이 신문의 전성기였고, 이를 견제하기 위한 대항마로 인터넷이 겨우 거론되던 시점이었다. 하여 우리의 논객들은 신문이나 잡지의 지면에 칼럼을 쓰거나, 어떤 언론에서도 받아주기 어려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스스로 매체를 창간하거나, 아주 빨리 단행본을 써서 펴내는 방식 등으로 대응했다.

당시 만들어진 웹진이나 인터넷 사이트 가운데 오늘날에도 접속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지만, 책은 다르다. 내 책꽂이에서 나와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것도 있고, 도서관의 서가에 꽃혀 무심히 흐르는 세월을 지켜보는 책도 있다. 여전히 책은 과거로 돌아가는 데 가장 빠르고 믿음직한 타임머신이다. 하여 나는 한 꼭지, 한 꼭지를 쓸 때마다 서울 시내 공립도서관의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엇다. 최선을 다해, 논객들이 쓴 책을 모두 구해, 전부 다시 읽어낸 결과 『논객시대』 한 권이 나온 셈이다.(10쪽)


생계를 위해 고종석은 글쓰기 강좌를 하기도 했다. 직업으로서의 글쓰기를 그만두겠다고 했지, 아예 입도 벙긋하지 않고 살겠다고 한 것은 아니므로, 트위터를 통해서건 다른 경로를 이용해서건 계속 무언가를 말할 테고 우리는 들을 것이다. 한 시대를 가장 치열하면서도 단정하게 돌파해온 문인이, 이전까지는 쳐다보지도 않았던 혼탁한 언어의 늪에 서 스스로를 감염시키고 있다.

언뜻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어차피 돌아가야 할 이상향 따윈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비비고 섞이고 흔들리고 뒤집히고 씹어 먹히고 내뱉어지는 온갖 지저분한 삶과 언어의 현장속에서만 새로운 변종이 탄생할 테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한 줌의 말들 속으로 뛰어드는 것 말고는 달리할 수 있는 일도 없음을, 이제 우리는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 얕은 뻘밭에서 뒹굴다 지칠 때면 종종 「아내」 같은 글을 꺼내 읽는 나와 여러분들처럼, 2013년의 고종석 또한 어느 시절의 고종석으로부터 작은 위로를 받을 수 있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291쪽)




3. 20대 문제, 청년 문제, 세대론이 가리키는 진짜 문제


  이야기가 시작되는 1990년대 중반 저자는 『인물과 사상』을 처음 접하고 불만이 많은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중학생이었다. 저자는 2000년대 중반 『88만원 세대』가 불러일으킨 세대논쟁, 혹은 20대 문제라는 이슈를 통해 발언 기회를 얻은, 이른바 ‘청년 논객'이다.


필자를 포함해, 2007년 이후 ‘20대 논객’으로 새삼스럽게 호명되며 매체의 지면을 얻고 언론에 오르내린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우석훈의 ‘세대 간 경쟁’의 논리를 반박하기 위해 노력했다. 다른 사람들은 논외로 하고, 당시 나는 ‘우석훈의 말에는 일리가 있지만 그가 말하는 20대는 20대 대졸자에 국한되는 듯하다. 또한 『88만원 세대』가 현재 대학을 다니는 고학력 엘리트들의 자기연민을 위한 논리로 이용되는 것은 보기 흉한 일이다.’라는 주장을 즐겨 퍼뜨리고 있었다.(166쪽)


  이 책의 방법론을 설명하는 서문은 김윤식의 작업 『이광수와 그의 시대』(와 저자가 그의 프리퀄이라 부르는 『내가 읽고 만난 일본』)를 다룬다. 그것은 김윤식의 입장에서 제대로 도래하지도 않은 근대와 맞서 싸우면서 동시에 그것을 추구해야 하는 이중의 모순을 이해하려는 시도였다. 1970년대라는 자신들의 시대를 세우기 위해 1930년대와 단절하기. 이것은 사실 한국 사회에서뿐 아니라 모든 보편적인 세대론에서 등장하는 ‘단절의 의지’이다. 스스로를 주체로 세우기 위해 아버지를 설정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식. 하지만 소위 ‘청년 논객’인 저자는 이를 그대로 답습하는 대신 좀더 현실적이고도 영리하게 조정한다. 책에 등장하는 아홉 명의 논객들은 아버지가 아니고, 청년 논객은 그들을 타자화하거나 그들과 단절하거나 그들을 (부친)살해하지 않는다. 이 책은 오히려 그들에게 받은 영향, 그들에게 품었던 기대, 그들에게 투사한 욕망, 그들 안의 우리에 대해 조심스럽게 들여다보는 작업에 가깝다. 그렇게 함으로써 실제로 2000년대 중반 크게 화제가 되었던 ‘88만원세대’의 세대론이 여타의 세대론(가령 4.19세대, 386세대)과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 지점을 더 섬세하게 짚어낸다.


『논객시대』는 내 이름을 걸고 혼자 써서 펴내는 첫 번째 단행본이다. 어떤 의미에서, 내가 나의 20대를 바라보며 쓴 책이기도 한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주인공인 아홉 명의 진보 논객들이야말로 가장 큰 감사 인사를 받으셔야 할 분들이다. 10여 년 전 그들의 책을 읽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으며, 다시 한 번 그들의 책을 읽었기에 『논객시대』가 나올 수 있었다.(12쪽)


  20대(80년대생) 문제라고 언급된 것은 실상 외환위기 이후 하나둘 허물어져간 표준적 삶의 모델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기존 정당이나 노동운동 조직은 와해되고, 삶 전체가 불안정해진 우리 시대의 문제이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독자의 문제, 매체의 문제가 되어 우리 앞에 던져진다.


세계시민적 개인주의자 캐릭터가 김어준을 ‘쿨’한 존재로 만들어줬다면, 음모론적 정치 선동가의 캐릭터는 그를 ‘핫’하게 만들었다. 얼핏보기에 양립하기 어려운 두 개의 입장이 한 사람의 몸에, 모종의 담론적 굴절을 통해 안착해 있다. 그 둘을 떼어내기란 불가능하다. 개인주의자보다 정치 선동가가 이끌어낼 수 있는 대중적 팬덤이 훨씬 더 크지만, 정치 선동가가 삐끗할 때면 언제나 개인주의자가 구원투수로 나서기 때문이다. 이는 개인적 삶의 양식으로서의 자유주의와 경제적 신자유주의가 21세기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두 원리로 작동하는 상황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리고 열광의 정치는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파시즘의 이상향으로 서서히 몰아가고 있는 중이다.(238쪽)


김어준이 말하고 실현하는, ‘인생은 비정규직’이기에 오는 자유는, 그의 자유를 동경하는 수십만 비정규직 청취자들의 비자발적 자유가 없다면 성립할 수조차 없다. 이 간극과 양면성이야말로, 늑대소년이 피시방에 앉아 이번 시즌 아르마니 수트를 검색하고 있어도 전혀 어색 하지 않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자체다.(239쪽)



차례


1. 강준만 | 태초에 강준만이 있었다

2. 진중권 | 디오게네스는 이렇게 말했다

3. 유시민 | 돌아온 지식소매상, 부도 난 정치도매상

4. 박노자 | 어디에도 없는 남자

5. 우석훈 | 청년들에겐 꼰대, 386에겐 광대

6. 김규항 | 예수·건달·지식인

7. 김어준 | 늑대소년은 이탈리아에서 무엇을 보았나

8. 홍세화 | 혁명 투사가 된 ‘빠리의 택시운전사’

9. 고종석 | JS를 이해하기 위하여


지은이 노정태

자유기고가이자 번역가이다.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인터넷 매체 《딴지일보》의 온라인 에디터를 거쳐, TV 드라마 및 대중문화 전문지 《드라마틱》에서 기자로 근무했고, 시사·정치 전문지 《포린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을 역임했다. 『무엇이 정의인가』 『싸우는 인문학』 등의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으며, 옮긴 책으로는 『아웃라이어』 『마이크로스타일』 『진보의 몰락』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등이 있다. 2014년 현재 비정기 문화 잡지 《도미노》의 편집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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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객 시대』 표지 시안


전에 출간 예고했던 것 기억하는 분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곧 출간 예정인 『논객 시대』 표지 시안 공개합니다. 부제가 '청년 논객 노정태의 선배님들 총정리'로, 강준만, 진중권, 유시민, 박노자, 우석훈, 김규항, 김어준, 홍세화, 고종석, 아홉 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 공개한 표지 시안에서 색이 바뀔 것 같은데, 과연 최종 색은 어떤 색일까요? :-)



책 내용을 너무 소개 안 했는데, 기본적으로 프레시안에 연재했던 글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연재 당시의 글을 보시면 어떤 책일지 아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 프레시안 개편 후 논객시대 연재 당시 글을 모아보기가 좀 힘드신 분들을 위해 링크 정리했습니다. 책 순서는 다릅니다만, 연재 순으로 링크 정리했습니다. 





ps. 아래 차트는 2004년부터 현재(2013.12.10)까지, 구글 트렌드로 본 5개의 키워드에 대한 시간 흐름에 따른 관심도 변화입니다. 


그럼 이 다섯 가지 키워드는 무엇일까요? 이 다섯 키워드는 바로 『논객 시대』의 아홉 분 중 다섯 분의 인물명입니다.(한 번에 다섯 개까지만 가능해서...^^) 과연 어떤 분들의 차트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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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 박사님의 「문화로 먹고살기」가 전자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책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여기에 ☞ 보기



문화로 먹고살기 : 전자책 판매처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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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패드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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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관련된 최종적인 기관은 결국 서점이다. (중략) 원래 자기가 고른 게 제일 좋아 보이지 않나?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들이 책방에 앉아 로망을 불태우면서 시집을 고를 기회를 우리는 박탈해버렸다. 

우석훈, 「문화로 먹고살기」  p.203


"사실은 이 책을 팔고 싶었다" 서점 직원의 진심이란 포스팅에 이어 '서점'에 대한 포스팅입니다. 전자책 시대 도래 이전에 종이책도 이미 온라인에서의 구매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오프라인 서점은 어떤 차별점을 가지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얼마 전부터 '서점의 역습'이란 기사가 아사히 신문에서 4회 예정으로 연재되고 있습니다. 이 연재 기사에서는 '하루에 서점이 한 곳씩 폐점하는 상황'(일본)에서 서점의 새로운 시도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 1회는 소위 '문맥 서가'에 관한 것이었는데요, 일본에서 '문맥 서가'는 장르별, 저자별, 이런 기준이 아닌 내용에 따라 개성적인 연출을 하는 서가를 말합니다. 요즘 '큐레이션'이라는 용어가 핫 키워드가 됐는데, 바로 서가에 일반적 기준으로의 진열이 아닌, '큐레이션'을 통한 새로운 콘텍스트를 부여해 가치를 만들고 관심을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기사에서는 몇몇 서점들의 '문맥 서가'라는 방식을 소개합니다.  


1. 다이칸야마 츠타야서점(代官山 蔦屋書店)의 사례

해적왕이 되려는 주인공 일행의 우정과 모험을 그린 만화 「원피스」와 「해적의 세계사」가 같이 꽂혀 있거나, 예수와 붓다가 동거하는 만화  「세인트 영맨」이 종교 서가에 꽂혀 있거나 하는 식으로 깜짝 만남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책은 옆에 어떤 것을 두느냐에 따라 표정이 바뀐다. 독자가 생각지도 못했던 책과의 만남을 제안"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서가를 꾸민다고 하네요.


2. 마츠마루혼포(松丸本舗)의 사례 (서가 사진 보기) 

'꿈이 있는 책'이라는 서가에는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무라카미 하루키의 「어둠의 저편」, 그림책「산넨 네타로(三ねんねたろう)」가 꽂혀 있는 식입니다. 이곳은 고객의 체류 시간이 긴 것은 물론, 객단가(고객 1인당 평균 구매액)가 다른 점포의 1.5배라고 하네요. 

"(책을) 찾지 못하지만 만날 수 있는 서점입니다." 라는 게 점장의 말입니다. 


앞으로 2~4회에는 어떤 시도들을 소개할지 궁금하네요. 

여러분은 책과 어떻게 만나고 계신가요? 


■ 참고 링크 

"사실은 이 책을 팔고 싶었다" 서점 직원의 진심 (반비 블로그)

서점의 역습 (1)  (아사히 신문, 일본어, 2012.6.20)

대형 서점 복도 정중앙에 ‘책탑’ 쌓으려면… 한달에 600만원 (동아일보, 2012.6.20)

인터넷 서점에 돈만 내면 ‘화제의 책’ 뽑힐 수 있다 (동아일보, 2012.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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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먹고살기> 출간 기념 좌담회 ~ 영화 분야(2)
 

"문화로 먹고살기 출간 기념 좌담회 - 영화 분야" 후기

초대 손님으로 변영주 감독님과 이해영 감독님을 모셨던 첫 번째 영화 분야 좌담회에 이어
타이거픽쳐스의 조철현 대표님을 모신 두 번째 영화 분야 좌담회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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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날, 커다란 플래카드가 걸려 있는 동국대 중앙도서관 앞

원래 계획했던 방송, 출판, 영화, 3회에 걸친 <문화로 먹고살기> 출간 기념 좌담회를 마치고, 이제 드디어 진짜마지막 좌담회가 있었습니다.^^ 2011년 10월 27일(목) 저녁 6시부터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저자 우석훈 선생님과 초대 손님으로 타이거픽쳐스의 조철현 대표님을 모시고 영화 분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석훈 선생님의 강연 인사말은 언제나 "식사는 하고 오셨어요?"인데, 오늘 강연 시간이 6시라 아마 대부분 식사는 못 하고 오셨을 것 같네요. 식사 대신 강연을 들으러 오신 열의에 찬 참석자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

먼저 우석훈 선생님의 강연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일정 수준 이상으로) 소득이 늘면 문화 지출이 늘 것이다.'란 경제학의 가정이 현재 한국에서는 깨졌습니다. 1인당 GDP가 1만불에서 2만불이 되었는데도 가계의 문화 관련 지출이 줄어들고 식비 비중이 높아진 것은 "돼지가 됐다"거나, "실질적으로는 가난해졌다."고 생각해 볼 수 있겠지요. 


우석훈 선생님이 조철현 대표님이 유명 감독들을 키우신 분이라고 하자, 조철현 대표님 왈, "충무로에서 '내가 쟤 키웠어.'란 건 그 사람이랑 술 몇 번 먹은 것."이라고 농담을 하셨네요.^^




우석훈 선생님에 이어 이제 조철현 대표님의 발표 시간입니다. 그런데 제일 먼저 하시는 말씀이, "저는 문화로, 영화로 먹고살기에 소질이 없는 사람입니다."라고..^^;  "이런 제가 '문화로 먹고살기'란 주제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합당한 것인지 생각도 했는데, 반면교사나 참고는 될 수 있을 것 같다."며 겸손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영화계 종사자 중 10%를 제외하면 사실 반실업 상태에 힘든 상태.",

"영화판에서 한 5년 버티면 떠나는 사람이 많다.",


"10년 정도 해서 그 분야에서 어느 정도 자리매김한, 남아 있는 사람들조차도 '직업인'으로서 성공했다고 할 수 없다. 1%의 소위 스타급이 아닌 다음에는 좋아서 버티는 것이다."


"한국 영화판이 커지면서 영화학과가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걸 보고 많은 걱정을 했다. 저 후배들이 졸업하고 산업에 뛰어들었을 때를 대비해 선배들이 시스템적으로 갖춰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다. 예전에는 충무로에 가면 그냥 선배들에게 밥 얻어 먹고 술 얻어 마시고 그렇게 지낼 수 있었는데, 지금은 다르다."

 
좀 우울한 이야기들을 인용했습니다만, 무책임한 낙관주의가 아닌 현실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이야기, 그리고 선배로서의 미안함이 묻어나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그리고 후배들을 위한 충고.
 

"지금 카지노 영화를 준비하며 카지노에도 가보고 관련 책들을 읽는데, 위대한 도박꾼은 '오늘 돈을 얼마를 딸까'가 아니라 '돈을 따는 과정'을 중요시한다고 한다. 도박 뿐만 아니라 어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소위 잭팟을 터뜨리기 위해서 가면 성공할 수 없다."

발표가 끝나고 질답 시간에 한 분이 조철현 대표님께, 
"오늘 좀 우울한 이야기가 많았던 것 같은데, 영화일을 하며 언제 희열을 느끼셨는지?"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영화판에 들어와서 처음엔 자막 번역일을 했다. 밥먹을 시간도 없이 엄청나게 일을 해야 했다. 그러다 나중에 처음 시나리오 작업한 영화가 상영될 때, 그때는 온라인 예매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을 때라 극장에 사람들이 줄을 많이 서던 때였는데, 그때 극장에 줄 서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희열을 느꼈다. 또 극장에 들어가 100번이고 200번이고 상영할 때마다 들어가서 중요 장면만 보면서 그때마다 관객들의 반응을 보며 엄청난 희열을 느꼈다."


즐거웠던 기억을 말씀하시는 이때 표정도 무척 즐거워보였습니다. ^^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걸 하는 사람은 고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덧붙이셨습니다. 네 번의 출간 기념 좌담회 게스트 중 많은 분들이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요, 특히 오늘 이 말씀이 더 와닿는 것은, 강연 시작할 때 조철현 대표는 올해 수입이 93만원이라는 말씀을 하셔서 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강연이 끝나고 사인회... 마지막 좌담회까지 즐거운 시간을 선사해 주신 우석훈 선생님과 참석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좌담회에 못 오셔서 아쉬우신 분들은 <문화로 먹고살기> 책을 꼭 읽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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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먹고살기> 출간 기념 좌담회 ~ 영화 분야
 
에 이어 영화 분야 좌담회 후기입니다. 
 

방송, 출판, 영화, 3회에 걸친 <문화로 먹고살기> 출간 기념 좌담회의 마지막 날. 2011년 10월 11일(화) 저녁 7시 30분부터 정독도서관에서 저자 우석훈 선생님과 초대 손님으로 변영주 감독님과 이해영 감독님을 모시고 영화 분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역시나 다양한 연령대의 분들이 강연장을 가득 채워주셨네요. 

 





이전 좌담회와 마찬가지로 우선 우석훈 선생님이 <문화로 먹고살기>를 통해 문화 경제학을 다루게 된 배경에 대한 이야기와 오늘 주제인 영화 분야에 관해 간단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문화 산업의 하락세는 (명목 소득이 아닌) 실질적으로는 가계가 가난해졌다는 뜻이 아닐까? 실제로 2002년부터 순저축률 수치가 줄었다. 저축 수치가 그대로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가계의 저축 대신 기업의 저축이 늘어서이다."


"<문화로 먹고살기>에서 다루는 분야들이 사실 2002년, 2003년부터 실제적으로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반면, 영화계는 2007년까지 버텼다."

"작년에 한국 영화 제작 편수가 늘었다고 하지만, 사실 제작비 20~30억 규모의 영화가 줄고 2억 정도의 소규모 영화가 늘어난 것이다."

"홈씨어터 구입한 가구는 1백만 가구나 되는데, 영화 DVD는 그렇게 안 팔린다. 초판 1천장을 팔기가 어렵다."



우석훈 선생님에 이어 변영주 감독님의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발표 내용과 질문에 대한 답변들을 같이 소개해 봅니다. 

"(한국 영화 산업이 망해가고 있다고 있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성인 1인당 극장 관람 편수는 다른 나라보다 높다. 문제는 부가판권이다. 한국은 극장수입 외에 부가판권 시장이 없다. 부가판권이 없는 이런 산업 구조 때문에 극장의 권력이 엄청나게 강해졌다. 현재 구조에서는 한국 영화가 흥행했을 때, 대부분의 수익은 창작 주체들 - 스텝들이 아닌 대기업의 극장 체인 확충에 돌아갈 것이다."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에 나섰던 배우들 보고 언론들은 비싼 외제차 몰고 고액을 받는 배우들이 자기 밥그릇 때문에 그런다는 식의 비난을 했다. 하지만 스크린쿼터가 축소되면 스타 배우의 권력이 오히려 더 커진다. (스크린쿼터로) 한국 영화 제작 편수가 줄어들면  힘들어지는 것은 스텝들이다. 배우들이 그렇게 나섰던 것은 자신들이 아닌 스텝들을 위한 것이다. 세계 어디에서 '비싼 외제차 모는' 이런 계급의 사람(배우)들이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데 나서겠는가?"

"아트필름 전용관 만들어 달라고 하는 말은 '독립영화, 아트필름 봐 주세요.'로 바꿔야 한다. 일본에서 독립 영화가 잘 살아 남아 있는 것은 지역 시민운동하는 곳에서 그런 영화들을 상영하기 때문이다." 

"영화 쪽에서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 적은 비용으로 직접 제작해 볼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현재 대부분 영화학과에서 1천만원, 2천만원씩 들여서 졸업 작품 찍는데, 빚지는 첫걸음이다. 가정 형편과 관계 없이 찍을 수 있게 일정 정도의 지원이 필요하다."

"낭만적으로 현장에 와서는 안 된다. 영화는 고강도의 노동이 필요한 곳이다. 공동 작업(노동!)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어떤 사람은 하루종일 전선을 깔고 발전기 돌린다. 길거리 가로막고 경광봉을 돌리며 하루 종일 시민들의 욕을 먹는 일을 하는 사람도 있다."


마지막으로 이해영 감독님의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이해영 감독님은 자신의 실제 작품을 가지고 한국 영화 산업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금액 얘기가 구체적으로 나오니까 아주 실감나더군요...^^; (블로그에는 금액 얘기는 노출하지 않겠습니다.)

"99년 막 작가 시절을 시작했을 땐 한국 영화계의 상황이 그 이전보단 시스템적으로 많이 나아졌을 때였다. 요즘이라고 더 나아진 것 같진 않지만, 그 전까지의 비합리적인 문제들은 많이 바뀐 상태였다. 99년부터 내가 2006년 <천하장사 마돈나>로 감독 입봉했을 때까지가 한국 영화 산업의 그래프가 가파르게 상승을 보이던 때였다." 

"<천하장사 마돈나>는 사실 소재로 보나 시나리오로 보나 상업적 영화가 아니었는데, 2006년에는 한국 영화가 호황이었던 덕분에, 상업적으로 아주 흥행할 것 같은 작품과 함께 '패키지'로 제작될 수 있었고,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제작비로 할 수 있었다. 만약 <천하장사 마돈나>를 지금 찍는다고 하면 당시보다 1/2 ~ 1/4 정도 수준에서 제작해야 할 것이다. 불과 몇 년 사이에 대부분 한국 영화의 평균제작비가 낮아지고 있다."

"<페스티발>같은 경우, **의 제작비로 영화를 찍어야 했는데, 줄어든 제작비에서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기간'을 줄이는 방법밖에 없었다. 배우와 스텝들에게 정확한 일의 범위와 기간을 제시하고 그것을 엄수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제작 현장에는 소수의 스텝들만 있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40시간 연속 촬영이라는 무리한 스케줄도 진행해야 했다. 이런 현실 속에선 작품 퀄리티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아마 대한민국에서 평균적으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극장 가서 보는 대부분의 한국 영화는 CJ, 쇼박스, 롯데의 영화일 것이다. <페스티발>은 시너지에서 배급을 했는데, 전국 200개 개봉관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런데 200개 관으로는 어떻게 해도 첫 주에 예매율이 5위 안에 들어갈 수 없다."

발표를 들으며, 요즘 제작비 100억이 넘는 한국 영화들이 나오고 있습니다만, 실제로는 허리 역할을 할 규모의 영화들의 제작비가 무척 낮아졌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변영주 감독님과 이해영 감독이 두 분이 워낙 친하시다 보니 두 분 발표 때 재미있는 리액션이 많았습니다. 사진은, 이해영 감독님이 제작비 축소에 관해 얘기하시면서 감독 개런티 부분을 말씀하실 때였네요. :-)

한국 영화계의 현실과 어떤 제도적 보완들이 필요할지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강연 내용을 두서없이 잘라 내어서 소개했습니다만, 조금이라도 참고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컷 더! 좌담회가 끝나고 사인회...^^ 우석훈 선생님의 사인 외에 오늘 같이 해 주셨던 두 감독님 사인도 열심히 받아가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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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4일(화) 저녁 7시 30분부터 고려대학교 과학도서관에서 <문화로 먹고살기> 출간 기념 좌담회 - 방송 분야편-가 있었습니다. <문화로 먹고살기>의 저자 우석훈 선생님과 초대 손님으로 CBS의 정혜윤 피디 PD님과 EBS의 김진혁 PD님이 자리를 함께 해 주셨습니다. 진작 포스팅했어야 하는데 일주일이 지나서야 이제야 정리합니다. ^^;
 


알라딘과 함께 한 이번 행사는 생각보다 강연장이 커서 100여분이 참석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자리가 좀 비어 보이는군요. ^^;


우석훈 선생님 - 정혜윤 피디님, 김진혁 피디님이 차례대로 발표를 해 주셨습니다.  사진은 정혜윤 PD님 발표 때 사진으로... (김진혁 PD님 발표 때 찍은 사진이 죄다 잘못 찍혀서...^^;)

우석훈 선생님은 예전과 달리 방송국에서 PD를 정말 뽑지 않는다며 (80년대 아시안 게임, 올림픽 등으로 PD 수가 아주 증가했던 면이 있습니다.), 현재 방송국의 PD들의 연령구조가 고령화되고 있는데 20대 PD의 고용을 충분히 늘릴 여력이 있다는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정혜윤 PD님은 방송국의 비정규직 문제를 얘기하며, "고용 안정이 개인적 호의가 아닌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PD 한 사람의 호의에 의해 스텝들이 고용이 유지되는 식이 아닌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CBS의 고용 안정 시스템에 대해서는 프라이드를 갖고 있다고도 하셨고요. 

김진혁 PD님은 "방송국의 콘텐츠가 생산되는 구조의 특이성 - 일반 회사에서는 보고서 작성 수에 따라 급여를 받는 것이 아닌데, 방송국에서는 제작 프로그램 편당 받는 구조로 되어 있다."면서  몇 개월 간의 긴 시간이 걸리는 프로그램 하나를 하면 금전적으로 손해를 볼 수 있는 문제와 또 이런 프로그램 당 지급되는 보수를 일정 부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특수성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블로그에서는 옮기지 않습니다만, 솔직한 현실(금액)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이런 부분을 들은 분들은 "문화로 먹고살기"는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돌아가셨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깜짝 게스트! 강연에 참석하셨던 한국 최고의 인터뷰어 지승호 선생님이 우석훈 선생님의 소개로 갑작스레 자리를 같이 해 주셨습니다. ^^

시사교양 PD분들의 발표에 이어 다시 우석훈 선생님이 방송 중 드라마 파트의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를 간단하게 하고 참석자분들과 함께 하는 질답 시간으로 넘어갔습니다. 
 
 
자녀분들이 앞으로 문화로 먹고살았으면 좋겠다는 분의 질문이 있었는데요, 오늘 좌담회 참석자분들 중엔 대학생, 고등학생 자녀를 둔 분도 계셨습니다. 지난 독립다큐 "모래" 상영회 때도 그랬습니다만,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시는 부모의 마음이...ㅜ.ㅜ


재능과 열정(이라고 표현되는 굉장한 희생 감수)과 같은 개인의 문제로 환원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바꾸기 위해 힘을 합쳐 나서야 할 때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블로그에서는 거의 전하지 못 했지만) 
현업에 계신 분들의 가감없는, 낙관이 아닌 직시를 위한 이야기와 우석훈 선생님의 이야기가 오늘 참석하신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순서상으로는 이 다음 날이었지만 먼저 포스팅한 "문화로 먹고살기 출간 기념 좌담회 - 출판분야"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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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5일(수) 저녁 7시 30분부터 송파도서관에서 <문화로 먹고살기> 출간 기념 좌담회 - 출판 분야편-가 있었습니다. <문화로 먹고살기>의 저자 우석훈 선생님과 초대 손님으로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의 한기호 소장님, 그리고 한국도서관협회의 이용훈 선생님이 자리를 함께 해 주셨습니다. 



먼저 우석훈 선생님의 발표로 시작되었습니다. <88만원 세대>에서 살짝 언급했던 부분에서 '문화경제학'을 하게 된 경위, '생태경제학'과의 유사점에 대한 이야기 등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문화로 먹고살기>를 쓰기 시작할 무렵, 처음에는 현 정권에 들어와서 문화 시장이 결정적으로 안 좋아진 것은 아닐까 가정을 했지만, 막상 데이터를 보니 사실 그렇지 않았다. 이미 그 이전에 상황이 안 좋아졌다. 문화 관련 지출 비용이 많이 줄었다."

"어제도 방송 분야에 관한 좌담회에 다녀왔지만, 사실 <문화로 먹고살기>에서 다루는 방송 분야나 영화, 연극 분야보다 출판은 그래도 상황이 나은 편이다. 출판 쪽은 화려함은 덜할지라도 그래도 월급 받아서 먹고 살 정도는 된다.리고 한국의 문화 분야 종사자의 절반은 출판에 관련된 (편집자 뿐만 아니라 영업, 인쇄 등 관련 포함) 인력들이다."


그리고 여러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이어졌습니다만, 궁금하신 분은 책을 보시면 됩니다...:-)



다음으로 한기호 소장님의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모두가 글을 쓰는 시대가 왔다. 트위터든, 블로그든, 문자든 잘하지 못 하면 살아남지 못한다. 그런데 잘 쓰기 위해선 잘 읽어야 한다. 쓰기와 읽기는 연동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출판에 미래가 있다."

종이책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한기호 소장님은 전자책 얘기를 하면서, 예전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해 주셨는데, 강연장의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강연장에서 '이북은 없다.'고 했더니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이북을 'e-book'이 아닌 '以北'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이런 시절도 있었다." 



세 번째로 한국도서관협회의 이용훈 선생님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문화로 먹고살기>에서도 사서교사와 공공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만, 역시 현직에 계신 분의 말씀을 들으니 더 

"출판사 앞에서 이런 이야기하는 것이 조심스러운 면도 있는데,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도서관을 이용 많이 해라. 그리고 사실 조사 결과를 보면 도서관에서 책을 많이 빌려보는 사람일수록 책을 많이 산다."

"공공도서관은 보편적 서비스로 누구나 책을 볼 수 있게 해야 하는데, 한국 도서관의 도서구입비가 너무 적다. 
98년 당시 수도권의 고속도로 1km를 까는데 400억 정도의 비용이 든다는 기사를 봤다. 그런데 당시 한국 공공도서관의 도서 구입비는 200억이 안 되었다."

"도서관과 독서실을 구분해야 한다."


"시설과 책은 투자하면 그 순간부터 감각상각이 시작된다. 하지만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대부분 (학교의 사서교사가) 비정규직이다. 최근 수 년간 정규직 사서 교사를 뽑지 않고 있다. 제일 중요한 '사람'에 투자하지 않고 있다."




세 분의 발표를 마치고 참석하신 분들의 질문 시간을 가졌는데, 독립 다큐 '모래' 상영회 때나, 전날의 '방송 분야' 좌담회 때도 그랬지만, 대학생, 고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님들이 자녀들 걱정에 오셔서 질문하시는 분들이 계셨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 왜 사서 교사가 필요하고, 공공도서관에서 책을 더 많이 구입해야 하는지, 현실을 바꾸기 위한 많은 아이디어들이 있습니다만, 실제로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행동이 필요하겠지요. 현장에 계신 분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출판계 종사자로서 ^^ 좌담회 중 사실 제일 기대하고 있던 시간이었는데, 정말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뜨거운" 시간에 함께 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날 강연회에 예스24의 기자분이 오셨고, 나중에 채널예스에도 강연회 기사(+동영상)가 올라갈 예정입니다. 반비 블로그의 포스팅은 너무 간략하게만 소개해서 나중에 기사가 올라오면 링크 추가하겠습니다. ^^)

채널예스 기사 보기 : http://www.yes24.com/ChYes/ChYesView.aspx?title=003004&cont=6948 

10월 11일(화) 저녁 7시 30분에는 정독도서관에서 변영주 감독님과 이해영 감독님을 모시고 영화 분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신청은 인터파크 이벤트 페이지에 댓글로 저자나 초대손님에게 하고 싶은 질문을 남겨주세요.(이벤트 페이지 가기혹은 반비 페이스북에 신청과 함께 질문을 남겨주세요. (페이스북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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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문화로 먹고살기> 출간 기념 좌담회가 10월 4일과 5일에 있어습니다. 각각 방송분야, 출판분야의 현업에 계신 분들을 초대손님으로 모시고 관련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이번엔 영화분야에 관한 좌담회입니다.


- 초대손님 : 변영주 감독, 이해영 감독
- 일시 : 2011년 10월 11일(화) 저녁 7시 30분
- 장소 :  정독도서관 시청각실 (서울특별시 종로구 화동 2)
            (링크를 클릭하시면 구글 맵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신청방법 :  인터파크 이벤트 페이지에 댓글로 저자나 초대손님에게 하고 싶은 질문을 남겨주세요.                          (이벤트 페이지 가기 / 위 이미지를 클릭하셔도 됩니다.)
                 혹은 반비 페이스북에 신청과 함께 질문을 남겨주세요. (페이스북 가기)


영화 분야에 관심 있는 많은 분들의 신청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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