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산책자


두 책벌레 건축가가 함께 걷고 기록한, 책의 집 이야기



정독도서관, 관악산시도서관, SF&판타지도서관, 디지털도서관…

국내 도서관 100년의 역사 속에 빛나는, 다채로운 도서관으로 떠나는 기행!


이 책을 통해 도서관은 지역 공동체의 허브로, 도시 역사의 증인으로, 휴양지의 사랑방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곳을 인문학의 스승으로 본 통찰력에 동감하고, 일상의 길라잡이로 그린 유쾌한 문장에 감동한다. —김봉렬(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며 자신이 만났거나 좋아하거나 혹은 바라는 도서관의 모습과 비교해보기를 바란다. 그럼으로써 우리 사회가 어떤 도서관을 가지면 좋을지에 대한 사회적인 대화를 만들어가면 좋겠다. —이용훈(도서관문화비평가, 메타사서)



두 인문학적 건축가가 발로 걷고 마음으로 쓴,

특색 있는 동네 도서관 탐방기!


국내 최초의 근대적 도서관 중 하나로 꼽히는 부산광역시립시민도서관의 역사가 115년가량 되었으니, 국내 도서관의 역사도 이제 한 세기가 지났다.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을 위한 도서관에서 시작해, 해방 후 대학도서관들이 생겨나고, 1970년대 들어 정독도서관으로 대표되는 공공도서관들이 곳곳에 지어지고, 2000년대 들어와 어린이를 위한 ‘기적의도서관’이 생겨나기까지, 국내 도서관들은 시대에 발맞추어 끊임없이 발전해왔고, 변화해왔다. 최근에는 시도서관, 사진책도서관처럼 한 분야만 집중적으로 다룬 장르도서관들도 속속 태어나고 있다.

이런 변화와 발전에도 불구하고 그간 국내 도서관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았다. 아직도 도서관은 ‘독서실’로만 받아들이는 문화가 팽배한 가운데, 인문적 소양이 깊은 두 젊은 건축가가 특색 있는 동네 도서관들을 하나씩 찾아나섰다. 도서관 곳곳을 직접 방문하고 구석구석 산책하면서 도서관의 다양한 매력들을 하나씩 짚어 읽어냈다. 책과 도서관에 대한 깊은 사색이 담겨 있지만, 사색이 전부는 아니다. 저자들은 『책의 미래』, 『밤의 도서관』 등 많은 책과 자료들을 탐독하여 유의미한 내용들을 뽑아냈고, 이용훈 메타사서, 여희숙 ‘도서관 친구들’ 대표, 한형우 이진아도서관 건축가를 비롯해 각 도서관의 관장님들, 이용자들까지 많은 이들을 인터뷰하여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담아냈다. 국내 도서관 100년의 역사 속에 켜켜이 쌓인, 우리 도서관들의 뜻밖의 정보와 매력이 책에 가득 담겨 있다.



1. 도서관으로의 기행을 제안함! 본격 도서관 탐방기


그간 인문과 지리, 정보와 에세이를 결합한 매력적인 기행 에세이들은 많았지만 그 소재들은 늘 미술관, 박물관, 카페 등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다른 문화적 요소들을 다룬 책이 적었는데, 이 책은 도서관으로 시선을 넓혀, 도서관도 하나의 매력적인 기행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책 곳곳에 책과 도서관에 대한 매력적인 정보와 사색,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들을 제시하여 도서관이 실제로 훌륭한 기행 장소가 될 수 있음을 직접 증명하고 있다. 특히 제주 여행자를 위한 도서관, SF와 판타지 애호가를 위한 SF&판타지도서관, 디지털 시대의 베이스캠프인 디지털도서관, 어른들을 위한, 어른들에 의한 정독도서관 등 각 도서관들이 가진 주요 테마를 중심으로 소개함으로써 국내 도서관들이 가진 다채로운 매력을 풍부하게 드러내고 있다.




달리도서관은 전문 사서와 전문 장서 체계가 있는 도서관은 아니다. 게다가 도서관에서 책을 구입하거나 기부를 받지도 않는다. 그럼 도서관의 책들은 모두 어디에서 온 것일까? 달리도서관의 책꽂이에는 여러 사람들이 자기의 서재 한 칸을 뚝 떼어다 옮겨 놓은 책들이 가득하다. 그러니까 달리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은 각각 주인이 따로 있다. 각 사람들은 자기가 읽고 좋았던 책, 의미 있는 책, 추천하고 싶은 책, 빌려주고 싶은 책들을 달리도서관에 보낸다.(‘달리도서관’ 편 중에서, 122쪽)


SF&판타지도서관은 사당동 골목 안의 지하실에 있었다. 예산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택한 입지지만, 어딘가 이 사회가 SF와 판타지 장르를 대하는 방식과 닮아 있다. 사회적으로SF나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어른들은 이른바 ‘오타쿠’로 여겨진다. 생계에 보탬이 안 되는 취미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이른바 나잇값 못하는 사람으로 취급받는 것이다. 마치 다 자란 어른이 당당하게 보기에는 너무 허황된 책이 아닌가 하는 편견을 피해서 SF&판타지도서관은 지하로 내려간 것처럼 보인다.(‘SF&판타지도서관’ 편 중에서, 160쪽)



2. 도서관을 둘러싼 최신 이슈들을 모두 모았다!


이 책에는 오늘날 우리 도서관을 둘러싼 최신의 이슈들, 그리고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해답을 찾기 쉽지 않은 이슈들이 담겨 있어, 도서관 그 자체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예컨대 공공도서관 공간의 일부를 독서실로 할애하는 문제, 끊임없이 늘어나는 장서를 어디에 어떻게 보관할 것인가 하는 문제, 도서관 입지로 도심이 좋은가, 외곽 공원이 좋은가 하는 문제, 도서관의 교양 프로그램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의 문제, 종이 책의 미래를 도서관이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의 문제 등 도서관에 관한 다양한 이슈를 소개하고 분석함으로써 도서관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이를 통해 동네 도서관들이 발전하는 방향에 대해 도서관 이용자인 시민들이 어떻게 조언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제안한다.


우리나라 도서관들은 도시 외곽의 공원이나 산 언저리에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도서관은 대부분 녹지에 있다. 접근하기 쉬운 도심보다 자연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에서 도서관 문화가 자라나기 시작한 것이, 이미 도시 구조가 웬만큼 짜인 다음이기 때문이다. 도시 중심부에는 이미 상업 업무 시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어서 빈 땅을 찾기도 힘들고, 찾더라도 도서관처럼 이윤을 창출하지 않는 공공건물이 높은 지가를 감당하기가 버겁다. 그래서 택한 것이 외곽의 녹지나 공원의 귀퉁이다.(79쪽)




3. 독서실을 넘어, 동네 도서관 제대로 사용법!


이 책은 도서관의 역할이 매우 다양해졌음에도 여전히 독서실 등으로만 제한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시민들에게 다양한 도서관 사용법을 안내하는 책으로도 훌륭하다. 각 도서관의 특색 있는 교양 프로그램부터 디지털 자료 이용법, 도서관의 ‘친구’가 되는 법까지 도서관을 100% 활용할 수 있는 정보가 가득하다. 또한 서울시의 각 지하철 역에서 가장 가까운 도서관까지의 거리, 도서관 상호대차서비스의 지역별 현황, 각 대학도서관들의 지역 개방 정도 등을 꼼꼼하게 분석하여 이용자에게 필요한 도서관 정보들도 가득 담았다.



지하철 역에서 도서관까지는 평균 825미터 정도인데, 2호선 대림 역에서 근처 구로도서관까지의 거리가 평균에 가깝다. 서울의 중심에 가까울수록 역사에서 도서관까지의 거리가 가까운 편이고, 외곽으로 갈수록 멀어지는 경향이 있다. 그래도 1기 지하철보다는 2기 지하철이, 비교적 가까운 곳에 도서관이 있다. 대표적인 곳이 마포구립서강도서관과 동작도서관이다. 서강도서관은 6호선 광흥창 역에서 불과 88미터, 동작도서관은 7호선 장승백이 역에서 197미터 떨어져 있다.(228쪽)


경기도 부천은, 특별시나 광역시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상호대차서비스의 가장 좋은 사례를 보여준다. 두 개의 운송 루트가 전 지역의 도서관을 하나의 서고로 묶고 있고 시립도서관뿐 아니라 작은도서관까지 네트워크 안에 들어 있다.(230쪽)



4. 인문학적 건축가들의 독특한 시각과 수많은 자료들의 집합!


저자들이 둘 다 건축가인 덕분에 이 책에는 우리나라 도서관들의 건축에 대한 비평도 녹아 있다. 옛 경기고 건물을 그대로 변용한 정독도서관이나, 한국 1세대 건축가들의 고민이 스며 있는 서강대 로욜라도서관에서 저자들은 우리 근대 건축의 특징과 매력을 소개한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의 전문 분야에만 머물지 않고, 대학 시절부터 다져온 인문적 소양과 문화적 감성을 토대로 독특한 관점으로 도서관을 산책한다. 책벌레 건축가라는 닉네임에 걸맞게 이 책을 위해 참고한 자료도 무수하다. 책의 미래를 예견하는 로버트 단턴의 『책의 미래』, 세계적인 독서가 알베르토 망구엘의 상상력이 빛나는 『밤의 도서관』 같은 단행본은 물론, 각 도서관에 발행하는 잡지와 문서들, 도서관의 고문서자료실에 보관된 옛 자료와 40~50년 전의 신문까지 수많은 자료를 참고하여 주요 내용을 책에 담았다. 이를 통해 책의 역할이나 도서관의 의미에 대해 독자의 사색을 이끌어내어 건축가가 아닌, ‘도서관 산책자’의 정체성을 스스로 정의해낸다.


도서관의 구조를 폐가식으로 하는가, 아니면 개가식으로 하는가는 도서관 건축 양식에 곧바로 큰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서양 중세 수도원의 도서관 건축들은 폐가식 도서관의 구조를 여실히 반영하고 있다. 책이 귀했던 중세 수도원의 도서관에서는 책을 책장이나 도서대에 사슬로 묶어두었다고 한다. 그래서 책을 올려놓을 책장이나 다른 가구들은 사슬의 길이가 닿는 범위 안에 놓여야 했다. 또 촛불은 화재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책 근처에는 빛이 들어올 창도 있어야 했다.(‘로욜라도서관’ 편 중에서, 189~190쪽)



운동장이 처음부터 지금처럼 울창한 정원으로 만들어졌던 것은 아니다. 정독도서관보 제1호의 표지에는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개관 당시의 조감도가 그려져 있는데 이 그림을 보면 도서관 앞의 정원에는 대부분 낮은 관목들이 늘어서 있다. 도서관과 함께 정원도 나이를 먹으면서 지금은 어디든 나무 그림자가 따라다니는 울창한 곳이 되었다.(‘정독도서관’ 편 중에서, 214~215쪽)



본문 속으로



여느 바쁜 아버지들처럼, 딸의 졸업식조차 챙기지 못했던 아버지에게, 타국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이 성장한 딸과 찍은 마지막 순간이란 사실은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아버지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서, 무언가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뒤늦게라도 딸에게 성의를 보이고 싶다. 여러 가지 방법을 궁리하던 아버지는 딸이 생전에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서대문구청에 도서관을 기증하기로 한다.(24쪽)



도서관이 지역사회의 공동체를 가꾸어가는 모습은 도시의 모든 환경들이 소비를 위해 재편되고, 공공성을 띤 공간들이 축소되어가는 변화 속에서 일종의 치유 과정처럼 보인다. 사람들 사이에 끊어졌던 고리를 다시 잇고 더불어 사는 의미를 회복한다는 점에서 더 그러하다. 공동체라고 하면 아파트 반상회 정도만 간신히 남아 있는 서울에서, 의미 있는 공동체가 사라져가는 도시의 삶 속에서, 지역 도서관은 공동체를 다시 일상의 삶이 속한 근린으로 귀속시킨다.(53쪽)


소설 『장미의 이름』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에 따르면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은 마을 노인이 죽었을 때, “도서관에 불이 났다.”고 표현한다. 지혜의 깊이를 강조하기 위해서 노인을 도서관에 비유한 것이다. 함축적이고도 일리 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마을에서 벌어진 일들을 기억하니까, 노인의 삶은 마을 역사의 제법 긴 구간을 기록하고 있는, 살아 있는 아카이브다.(59쪽)



부산시민도서관은 해안가에 있던 일본의 조계지(租界地)에서 시작해서 해방 후 내륙의 중심 공간으로 이주하며, 새로운 장소와 기억을 만들고자 했다. 부산시민도서관의 모체는 앞서 언급한 부산부립도서관으로 이는 원래 일본 상인들의 모임인 홍도회 부산지부 사무실에 있던 서재를 확장해서 용두산 공원에 새로 지은 것이다. 이때는 재한 일본인을 주요 대상으로 했고, 책 역시 일본 책과 몇 권의 외서가 전부였다. 해방되자마자 부산부립도서관은 부산교육위원회에 넘겨졌고, 대한민국을 위한 도서관으로 거듭나고자 했다. 그 첫째로 한 일이 이사 가는 것이었다.(62쪽)


문화 도시 부천의 상징으로, 대중적으로는 부천필하모닉이 손꼽히지만, 적어도 도서관 분야를 잘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탄탄한 도서관 인프라가 더욱 손꼽힌다. 부천은 그대로 도서관의 도시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부천만큼 도서관이 도시 곳곳에 골고루 분포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도시도 드물다.(105~106쪽)


여행지에서 책의 역할은 여행으로 미처 채우지 못한 여백을 메우는 것만은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사람들은 여행지로 이미 와버린 몸과, 떠나온 그곳에 아직 남아 있는 마음 사이의 시공간적인 불균형을 맞추기도 한다. 몸은 지금 이곳이 현실인데, 마음속 현실은 저 멀리 있다면 주변의 풍광과 물산을 보아도 보지 않은 것과 다름이 없다. 독서는 꼬리를 무는 걱정과 망상을 밀어내고 현재의 자리로 여행자를 불러들인다. 책 속 이야기는 여행지의 이야기와 결합되면서, 여행지를 증강 현실로 만드는 데 기여한다.(118쪽)


대칭과 비대칭, 육중한 돌과 가볍고 투명한 유리, 땅의 중심에 위풍당당하게 선 자세와 대지 한 켠에 비켜 선 자세 등 종이 책 도서관과 디지털도서관은 건축의 모든 언어들이 대조를 이루며 조우하고 있다.(150쪽)




시도서관에서 주최하는 ‘시 낭독회’에 중장년층들의 반응이 좋다. 이들에게 시 낭독회는 사는 데 치여 잊고 있던 낭만을 다시금 불러일으킨다. 요즘처럼 88만 원에 아픈 청춘이 아닌, ‘아직 청춘이 낭만이었던 시절’을 지나온 이들에게 시도서관은 싱그러웠던 젊은 시절을 환기해준다.(163쪽)


그런 소란 끝에 경기고등학교가 이전하고, 남은 자리에 세워진 도서관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이름을 따 정독도서관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경기고 이전이 대통령의 직접 지시로 이루어졌다고 하니, 당시 서울의 인구 분산은 그만큼 절박한 문제였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정독도서관은 대도시 서울이 전쟁을 치르듯 커가던 와중에, 서울 한복판이라는 최고의 입지와 명문 고등학교 터라는 색다른 역사를 갖게 된다.(205~206쪽)



차례

추천의 글

프롤로그


1장. 참척의 슬픔으로 도서관을 짓다

       서대문구립이진아기념도서관

2장. 도서관은 링크이다

       광진정보도서관

3장. 도서관은 도시와 함께 나이 든다

       부산광역시립시민도서관

4장. 자연 속에서 책을 누리는 집

       숲속작은도서관, 관악산숲속도서관, 농부네텃밭도서관

5장. 부천은 어떻게 도서관의 도시가 되었나

       부천예술정보도서관 다감

6장. 여행하는 책, 여행자의 책

       달리도서관

7장. 서고 없는 도서관은 가능할까

       국립디지털도서관

8장. 한 가지 장르로 도서관을 이루다

        관악산시도서관, SF&판타지도서관, 사진책도서관

9장. 대학도서관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서강대학교 로욜라도서관

10장. 어른들의 도서관이 필요할 때

         정독도서관

부록

에필로그



지은이


강예린

인문학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즐기는 젊은 건축가. 대학 시절부터 전공인 지리 외에도 인문, 사회과학의 다양한 책을 탐독했다. 서울대학교 지리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는데 지리를 공부하고 나니, 건축에 관심이 생겨 다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들어가 건축 공부를 시작했다. 졸업 후 로테르담의 O.M.A.(Office for Metropolitan Architecture), 서울의 건축사사무소 협동원에서 실무를 익혔다. 전주 청소년자립생활관, 강남 보금자리 주택 프로젝트 등에 참여하면서 집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다. ‘책의 집’인 도서관에 대한 관심은 공공성이 뛰어난 미국 뉴욕도서관, 편안한 분위기가 유명한 스페인 살라망카공공도서관을 발견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생겨났다. 그 탓에 도서관을 보는 눈이 지나치게 높아져, 지금 경남 창녕에 짓고 있는 우포자연도서관(가칭)에 대한 고민거리가 많아졌다. 2010년에 이치훈과 함께 건축사사무소 S.O.A.(Society of Architecture)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으며, 건축 일을 하는 틈틈이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플래티넘 등급 유지에 힘쓰고 있다.


이치훈

도서관이라고 하면, 사람들의 만남을 지원하는 유연한 플랫폼을 상상하는 젊은 건축가. 어린 시절부터 관심사가 다양해서 도서관에만 가면 미로 같은 서가에서 길을 잃었지만, 강예린과 달리 장래 희망만은 일관되게 건축가를 꿈꾸어왔다.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특히 경관과 도시 건축에 관심이 많아 석사 학위도 「경관 변화의 사회적인 조건에 관한 연구」로 받았다. 도시, 경관 분야의 공모전인 부산 중앙광장 현상 공모와 오송바이오밸리 마스터플랜에서 입상하기도 했다 2010년에 강예린과 함께 S.O.A.를 설립한 뒤, 현재 전남 곡성 귀촌 가옥 등 다양한 건축 설계를 진행 중이다. 건축가로서 꿈이자 숙제이자 연구 대상이라고 여겨왔던 도서관을 경남 우포에 직접 설계하게 되면서, 생태 교육과 대안적인 삶의 공간이 되는 도서관을 짓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이화여자대학교 겸임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하고 있다.



인터넷 서점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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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이어 여덟 번째로 소개하는 도서관은 바로 '정독도서관'입니다.  '어른들의 도서관 정독 도서관'편은 3회에 걸쳐서 포스팅 할 예정입니다.  (지난 포스팅은 [도서관 기행] 카테고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어른들의 도서관 정독 도서관 ① / 어른들의 도서관 정독 도서과 ②편에 이어서...



어른들의 도서관 정독 도서관 ③


by 강예린 & 이치훈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도서관


정독도서관이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이유는 접근성이 좋은 입지와 도서관의 정원 때문이기도 하지만 도서관이 적극적으로 성인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정독도서관에서는 작가와의 만남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작가들이 독자들과 함께 책 출판을 기념한다. 성인 독자들을 위해 작가와의 만남은 퇴근 이후의 시간에 이루어진다. 작년에는 스물세명의 작가들이 이곳 정독도서관에서 독자들과의 만남을 가졌다황석영, 박범신, 김훈, 이덕일.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한국의 내로라하는 작가들이다. 생태경제학자 우석훈도 출판 간담회를 정독도서관에서 가졌다.


두세 시간은 훌쩍 넘겨버리는 작가와 독자의 만남에서는 작가의 낭독을 들을 수도 있고 책에 관련된 의미 있는 대화들이 오간다. 북적거리는 대형서점에서의 팬사인회와는 다르게 시청각실을 가득 메운 독자들은 사뭇 진지하게 작가와 대화한다.


한편 작가와 팬들의 만남이기에 화기애애하기만 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어떤 독자들은 책의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작가를 곤란에 빠뜨리기도 한다. 재야의 역사학자 이덕일 선생의 “조선 왕을 말하다” 행사 때에는 작가와 정반대의 생각을 가진 독자 한 분이 “왜 그런 작가를 섭외했냐”며 도서관에 항의를 해오기도 했다고 한다이에 작가와의 만남을 진행하는 문화활동 지원과의 나영선 사서님의 대응이 현명하다. “도서관은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만나 책에 대해 토론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 이 일화를 전해들은 이덕일 선생도 “딴지를 걸어오는 독자들이 있는 정독도서관이 좋다”고 하셨단다.



「문화로 먹고살기」 출간 기념 대담회 (정독 도서관, 2011.10.11)



도서관이 책과 사람이 만나는 개인적인 독서를 넘어서서 다양한 생각이 만나고 토론하는 장소라는 현직 사서의 생각은 당연한듯하면서도 새롭게 다가온다. 도서관이 정숙하게 묵독하는 공간만은 아니라는 것. 독서의 정신활동을 개인적인 체험에서 사회적인 관계로 확장시키고 다양한 해석과 의미를 생산하게 하는 장소라는 생각은여느 도서관이나 곱씹어볼 만한 문제의식인 것 같다.



, 출판, 그리고 학계의 네트워크가 만나는 장소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풍경과 더불어 정독도서관에서는 학술 심포지움이 열리기도 한다. 학술심포지움이라면으레 대학교나 학회에서 주최하는 행사로 생각하기 쉽다. 학계라는 제도권 외부에서 출판사와 학자들이 주체가 되어 주관하는 심포지움은 그래서 특별하다. 공공 도서관에서 진행되는 학술행사는 학문 체계의 벽, 대학 제도의 벽, 지식인과 대중의 벽을 허무는 시도였다. 여기서 도서관은 대학이나 컨벤션 센터를 대체하는 대안적인 공간이 된다. 상아탑에 갇힌 그들만의 학문이 아닌 대중적인 소통의 장으로서 도서관이 역할을 하는 것이다.


도서관에서 진행되는 심포지움에는 따로 참가 신청을 해야 하거나 참가비를 낼 필요가 없었고 누구에게나 열린 행사로 진행되었다. 이틀에 걸쳐 진행되었던 심포지움에는 200여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도서관 측에서도 어려운 내용의 학술 행사에 독자들이 몰리는 현상에 놀랐다고 한다. 정독도서관과 함께 푸코심포지움을 주최했던 출판사 그린비는 그 이전에 알튀세르심포지움을 통해 “알튀세르 효과”라는 책을 출판해내기도 하였다.


독자들이 문턱 없이 그 심화된 학문적인 소통의 장에 드나들며 그 결과가 책으로 출판되어 다시 도서관에서 읽히는 일련의 과정은 도서관이 단순히 책을 소비하는 공간을 넘어서서 지식을 생산하고 확장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도서관이 책과 출판사 그리고 학계의 네트워크가 구체화되는 결절점이 된다고 하면 과장일까?


그린비 출판사와 정독도서관의 심포지움은 대안적인 연구 공동체와 학계의 울타리를 벗어나 움직일 수 있는 자유로운 지식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적지않은 시간과 노력, 치밀한 기획이 필요한 학술행사를 매번 도서관에서 여는 일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정독도서관이 치루어냈던 심포지움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정독도서관의 작은 시작을 통해 문화강연을 위한 공간이나 지역의 공동체의 장이라는 역할을 넘어 도서관이 좀더 심화된 학술 공동체의 장이 되는 상상을 해 본다.




정독도서관의 미래, 책을 만드는 도서관


보르헤스는 스스로를 “작가로서보다 오히려 독자로서 더 뛰어나다”고 말했다. 환상적인 단편소설의 세계적인 문호로 알려진 보르헤스에 대한 여러 가지 평가들 중 흥미로운 부분은 그의 소설이 다른 문학작품을 읽고 요약, 가필하는 과정에서의 산물이었다는 것이다. 타인의 글에 의탁해서 자기 글을 쓰는 방식으로서 패러디와 메타 픽션과 같은 독특한 기법을 많이 사용하게 되었고 보르헤스 특유의 소설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9살에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를 에스파냐어로 번역해 신문에 투고할 정도로 책을 많이 읽는아이였던 보르헤스가본격적으로 소설을 창작하기 시작한 것은 부에노스아이레스 소재의 미겔카네 시립도서관의 사서 시절이다. 사서의 업무가 그리 과다하지 않았던 터라 보르헤스에게 도서관 지하의 서고는 조용히 혼자 독서하며 창작에 몰두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었던 것이다.


보르헤스의 일화를 통해 모든 독서가 창작을 전제 한다는 가설을 세운다면 뛰어난 독자들이 많이 찾는 도서관에서 훌륭한 작가가 탄생할 확률도 높지 않을까? 책을 읽는 도서관을 넘어 책을 만드는 도서관이다. 대영박물관의 도서관이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아놀드하우저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집필한 장소였던 것처럼 수준 높은 독자들이 끊이지 않는 정독도서관에서도 세계적인 작가가 탄생할 날이 머지 않았다.





반비 블로그에 인기리에 연재되었던 
도서관 기행이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도서관 산책자
두 책벌레 건축가가 함께 걷고 기록한, 책의 집 이야기


인터넷 서점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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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anbi Editor!
  • 여행가방 2012.09.07 09:45

    좋은글 잘읽고 갑니다.

...에 이어 여덟 번째로 소개하는 도서관은 바로 '정독도서관'입니다.  '어른들의 도서관 정독 도서관'편은 3회에 걸쳐서 포스팅 할 예정입니다.  (지난 포스팅은 [도서관 기행] 카테고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한국 도서관 기행 (8) ~ 어른들의 도서관 정독 도서관 ①편에 이어서...



어른들의 도서관 정독 도서관 ②


by 강예린 & 이치훈



한국 학교 건축 유형의 출발


그림 1. 경기고 시절 운동장을 향해 신식 건물의 파사드를 당당하게 드러내고 있었을 도서관의 본관 건물은 이제 울창한 조경 뒤에 숨어있다.


정독도서관의 현재 건물은 1938년 지어진 경기고등학교[1] (당시 6년제 경기공립중학교)이다. 세 채의 교사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평범한 학교건물 같지만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2호이다. 당시 우리나라 최초로 스팀 난방시설을 갖춘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학교건물이었다. 수선과 보수도 여러 번 했고 외관의 페인트 색깔도 몇 번이나 바꿔 칠했지만 건물의 원형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경기고등학교 건물은 군국주의 일제에 의해 시작된 강압적인 근대 교육의 전형적인 학교 건물 유형이다. 지어진 지 80년이 가까워지는 지금 이 건물을 전형적인 학교로 느끼는 것은 이곳이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학교 건축 유형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 이 땅에 있어왔던 학교는 성균관과 향교라는 곳인데 숙식과 책 읽기, 조상에 대한 제례 등이 모두 가능한 일종의 생활공간이었다. 1894년에 과거제가 폐지되고 근대적인 교육제도가 마련되면서 학교라는 공간은 급격한 변화를 맞게 된다. 식민지배의 우민화전략,  군국주의의 엄격한 훈육이라는 교육의 목표와 맞물려 서양식 건축을 변용해 일제가 들여온 새로운 형식들로 대체되고 1938년 지어진 경기고등학교 건물은 그 대표적인 사례로 남아있다.


정독도서관은 건축사적으로는 근대의 표준 양식을 중심으로 아르데코와 이탈리아 합리주의를 간략화한 어휘가 섞여 지어졌다. 건물 전면에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벽기둥과 탑처럼 높게 솟은 중앙 입구, 사각형의 창을 중심으로 질서 있게 구성된 파사드 등이 그러하다. 모두 1930년대 서양에서 유행하던 건축의 양식이었다.


궁궐과 사대부들의 한옥을 제외하면 사대문 안이 대부분 초가집으로 채워져 있던 서울 한복판에 들어선 신식 건물은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권위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여전히 초기 근대 건축물의 질서들을 품고 당당하게 서있지만 여기저기 오래된 흔적들을 발견하는 것은 정독도서관에서만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재미이다.

 


그림 2. 건물 사이사이 정독도서관은 근대 건축의 순수한 초기 언어들로 채워져있다.



서울에서 80년 가까이 나이든 건축물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더욱이 근대 건축물을 현대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는 더욱 드물다. 그래서 정독도서관의 공간은 건축사적으로나 교육사적으로 가치가 높다.


 

그림 3. 세번째 건물의 외관은 조금더 장식적인 언어를 보여준다.




학교에서 도서관으로


학교와 도서관은 어딘가 통해있기도,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학교와 도서관 모두 공부하기 위한 공간이지만 지역사회의 커뮤니티와 평생교육 공간으로서 도서관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는 요즈음 문화에 비추어 보면 학교 건물이 그 변화를 수용하기에는 다소 경직된 건축의 형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동일한 크기의 방이 연속된 편복도식의 구조는 도서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화활동과 사람들 사이의 만남을 조직해 내기에 가변성이 다소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누구에게나 비슷한 감각으로 남아있는 학교 공간에 대한 기억은 정독도서관에서 더 이상 분단위로 쪼개진 시간과 방의 체계로 존재하지 않는다. 도서관의 시간은 학교의 시간처럼 분화되어 있지 않고 길다란 건물도 더 이상 학교의 방처럼 잘게 쪼개져있지 않다. 학교의 잘게 쪼개어진 공간과 시간 사이사이를 이어 붙인 정독도서관은 길다. 100m에 가까운 길이로 학교 건물의 동서 방향 전체를 하나의 열람실로 사용한다. 한쪽 끝 서고의 좁은 틈 사이에서 반대편을 바라보면 끝이 보이지 않는 소실점이 만들어질 정도이다.


그림 4. 끝이 보이지 않는 소실점. 정독도서관의 서고는 길다.



수업 사이 사이 유난히 짧았던 쉬는 시간도 정독도서관에는 더 이상 없다. 꽉 짜여진 시간표 속에서 혼란과 질서를 주기적으로 반복하던 학교의 일상은 도서관에서 길게 이어 붙여진 자율적인 독서의 시간으로 채워진다.


하지만 동시에 유년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라는 공간형식 안에서 보냈던 우리의 기억은 다시금 그 공간에 반응하는 몸의 습속을 불러들이면서 책 읽기를 위한 긴장을 만들어낸다. 다소 엄격한 공간의 형식이 오히려 책읽기에 집중할 수 있는 효과를 내기도 한다. 사법고시 공부를 위해서 절에도 들어가곤 하지 않았는가. 독서도 마찬가지, 고시만큼 거창한 공부는 아닐지라도 책을 읽는 한순간정신노동을 위해 공간의 형식과 분위기는 참으로 중요한 부분이다. 학교와 같은 공공시설의 건축공간들이 발달하면서 예절로서의 묵독이 발달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 만큼 공간의 형식과 조건은 독서하는 우리의 몸과 밀접한 영향관계에 있다.


그림 5. 눈이 쉽게 피로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을까. 채도 높은 녹색 책상이 이채롭다.



그런 면에서 훈육의 장으로서 학교의 엄격한 공간질서는 집중해서 묵독하는 개인적인 독서형식에 어느 정도 도움을 주지 않을까 생각된다. 매체의 발전이 만들어내는 독서형식의 변화로 글을 읽는 것이 더 이상 책 한 권에 집중된 독서에 머물지 않고 이리저리 분산된 지각의 형태로 존재하기에 조용하게 집중해서 글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은 더 의미가 있어 보인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는 언젠가 “필사(筆寫)는정독(精讀) 중의 정독”이라고 하였다. 이름도 그러하지만 정독(正讀)도서관은 무언가 필사의 독서와 어울리는 장소이다. 서울 한 복판에 섬처럼 놓여있는 정숙한 공간에 힘있게 자리잡은 오래된 건축물. 북촌의 번잡하고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지나 정독도서관의 언덕진 입구를 오르면 장소는 더 이상 대도시 서울이 아니다. 경기고 당시 운동장은 도서관의 정원이 되어 도시의 소음을 흡수하고 혼란스러움을 걸러주는 필터가 되었다. 무성한 수초 사이를 흐르는 물이 자연스레 정화되는 것처럼 도심 한복판의 너른 정원은 대도시의 소란스러움을 잊게 해준다. 한여름 우거진 녹음을 지나 도서관에 들어서면 오래된 건물의 두꺼운 벽체가 품은 냉기를 느끼며 마음은 한결 더 차분해진다.




운동장에서도서관의 앞뜰로


정독도서관 도서관보 제 1호에는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정독도서관 개관 당시의 조감도가 그려져 있다. 그림에는 도서관 앞의 정원이 지금처럼 울창하지 않다. 정원이 풍성해지기까지시간이 걸리기도 했겠지만 애초에 개관 당시에는 지금처럼 울창한 정원으로 계획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정원의 어디를 걸어도 나무그림자가 따라다닌다. 교실이 열람실이 된 것과 같이 운동장은 정원이 되었다.




그림 6. 개관 당시의 도서관보에는 지금처럼 울창한 정원도, 종친부 건물도 없다.


누런 마사토가 깔린 그림자 뼘 없는 운동장 땡볕아래 매주 월요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조회를 서며 국기에 대한 경례나 교장선생님에 대한 거수경례를 올리던, 조회가 끝날 무렵에는 교가나 애국가를 불렀던 장소인 학교 운동장에 대한 기억은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학교 운동장은 군사 훈련을 닮은 학교 교육을 위한 사열대였다. 그래서그곳은 나무 몇 그루 없는 텅빈 공간일 수 밖에 없었다.




그림 7. 정독도서관의 앞뜰에는 어딜가나 그늘이 따라다닌다.


텅 빈 운동장이 녹음으로 채워지고 분수대와 작은 연못, 그 주변에 작은 오두막 정자를 갖게 되었다. 곳곳에 비도 새지 않을 것 같이 빽빽한 등나무 지붕이 시원한 그늘을 드리운다. 봄이면 흐드러지게 피는 벚꽃나무는 여의도의 윤중로가 부럽지 않고 겨울이면 잔디 위에 하얀 눈밭이 만들어진다. 정원 덕분에 정독도서관에서 독서는 닫힌 서고 열람실을 벗어났다.


산으로 둘러싸인 보기 드문 도시 서울이지만 도심 속에 녹음 짙은 공원 하나 찾기 힘든 살풍경 속에 정독도서관은 최고의 휴식공간이다. 앞으로 공원에 가고 싶다면 정독도서관에 갈 일이다. 온 김에 책도 한 권 읽고 가면 좋겠다.



 


그림 8. 첫번째 건물과 두번째 건물 사이의 휴식공간은 도서관의 외부 공간 중 가장 조용한 독서장소이다.



서양식 건물의 강조된 포치(입구)를 지나 세 채의 건물을 가로지르는 통로를 지날 때마다 양쪽으로 건물 사이사이의 외부공간을 만나게 된다. 이곳에도 벤치와 나무 그늘이 있다. 건물보다 건물의 외부가 더 자유로운 독서 환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정독도서관의 여유 있는 정원 중에서도 가장 조용한 곳이다. 서울의 복잡한 땅 한가운데 비워진 정원과 도서관 건물 사이의 비워진 공간은 모두가 비워져 있는 그 자체로 의미를 갖게 된다. 이곳에서는 책을 읽으며 도시락을 까먹을 수도, 잠깐 낮잠을 즐길 수도 있다




그림 9. 사람들은 오두막 위에서 토론하기도 하고 도시락도 먹는다.



[1]현재 정독도서관으로 쓰이는 건물은1938년 경기공립중학교로 이름을 바꾸면서 지어진 교사동 세 채이다. 38년 이전에 경기고등학교 최초의 전신은 1900년 설립된 관립한성중학교이다. 이후 1911년 경성고등보통학교 (일본인과 차별교육), 1921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수업5년으로 연장), 1922년 경성제일공립고등보통학교 (경기도로 이관), 1938년 경기공립중학교, 1946 경기중학교 (6년제, 서울 특별시로 이관)로 이름을 바꾸었다. 경기고등학교가 된 것은 1951년 이었다. 지금 정독도서관으로 쓰이고 있는 38년도에 신축된 건물은 2002년에 등록문화재로 지정 되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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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도서관 기행 연재, 여덟 번째 꼭지입니다. :-)

...에 이어 여덟 번째로 소개하는 도서관은 바로 '정독도서관'입니다.  '어른들의 도서관 정독 도서관'편은 3회에 걸쳐서 포스팅 할 예정입니다.  (지난 포스팅은 [도서관 기행] 카테고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어른들의 도서관 정독 도서관 ①


by 강예린 & 이치훈




대도시 서울의 역사, 학교와 바꾼 도서관


1976, 서울의 한 복판에 자리잡고있던 경기고등학교가 지금의 삼성동으로 이전을 한다. 이전하고 남은 학교 건물에는 정독도서관이 들어선다. 당시의 통계로는 국회도서관 국립 중앙도서관에 이어 대한민국에서 세번째로 큰 도서관.


그런데 의문이다.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서 서울의 요지에 있던 고등학교가 이전한 걸까? 그것도 당시 최고의 명문이었던 경기 고등학교가. 주로 지가가 낮은 도시의 외곽이나 녹지에 도서관이 지어지는 요즘 상황을 생각하면 도심 한복판에, 걸어가기도 쉽고 찾기 좋은 곳에 공공 도서관이 들어선 것은 파격이다. 하지만 사실 서울의 중심에 도서관을 짓기 위해서 학교가 이전한 것은 아니다.


정독도서관이 개관할 당시 70년대 서울은 지금보다 훨씬 작았다. 지금의 강남, 잠실은 도로도 없고 건물도 몇 채 없는 논 밭이었다. 영등포를 제외하면 한강의 남쪽은 대부분이 전형적인 농촌 지역이었다. 당시의 서울은 한강 이북의 사대문 안과 그 주변의 일부에 불과했다. 산업화의 바람으로 점점 서울로 몰려드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강북 구도심만으로는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하기 힘든 상황에 이른다. 감당할 수 없이 늘어나는 서울의 인구를 분산하기 위해 서울시는 이른바삼핵 도시계획을 수립한다. 한강 이남의 동쪽과 서쪽에 서울의 새로운 중심부를 두 곳 더 만들어 강북 구도심의 인구를 분산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림 1 대도시 서울의 성장과정 60년대말 70년대 초까지도 지금의 강남은 서울이 아니었다.


서초, 압구정, 역삼 대치동에 이르는 영동지구 개발 계획이 수립되고, 잠실 지구가 대단위 아파트 단지로 계획되었다. 78년에는 지하철 2호선 공사가 착공하고, 허허벌판이던 강남에는 아파트와 높은 빌딩이 속속 들어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건물만 짓는다고 사람들이 이주해 삶을 꾸릴리는 만무하다. 사람들이 들어가 살만한 조건이 필요했다.


인구 분산을 위한 서울시의 여러 정책 중에 단연 효과를 발휘한 것은 강북의 명문고등학교를 강남으로 이전하는 계획이었다. 1976년 경기고등학교를 시작으로 1978년 휘문중고등학교, 1980년 숙명 여중고와 서울고등학교가 강남으로 이전하였다. 그러나 광복 전후를 통해서 한국 최고의 명문이었던 경기고등학교 이전은 재학생은 물론 졸업생들의 반발에 주춤하였다. 정재계에 포진해있던 국내 경기고 동문은 물론 재미동문들까지 합세하면서 강한 반대 여론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런 반발을 달래기 위해 서울시와 정부는 학교 이전 후 “화동의 교사를 허물지 않고 말끔히 개수선하여 도서관으로 쓰겠다.”는 약속을 한다. “교정도 단장하여 도서관 뜰로 남기겠다.”고 했다. 정독(正讀) 도서관의자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의 이름에서 왔다. 정독도서관은 대도시 서울이 전쟁을 치르듯 커가던 와중에 서울 한복판에 독특한 입지로 남게 된다.




어른이 된 도서관


정독도서관은 장서 50만여권, 하루 평균 이용자 수 6,000, 하루 대출되는 책이 7,000권이 넘는 전국 최대 규모의 공공 도서관이다. 한해 200만명이 넘는 숫자다. 앞서 이야기 한 대로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도서관이다.

 

도서관의 나이도 올해로 서른 다섯 해를 맞는다. 우리나라 공공 도서관의 효시를 1901년 부산에 세워진 홍도 도서관(현 부산 시립 중앙도서관)으로 본다면 우리나라 공공 도서관의 역사는 100여년 남짓으로 생각할 수 있다. 2010년 현재 전국의 공공 도서관은 759개인데, 60년대 중반까지 공공 도서관이 20여개가 채 안되었고 정독도서관이 개관한 76년 당시 70여개의 공공도서관이 있었으니 양으로만 따진다면 정독도서관이 개관한 이래 우리나라의 도서관은 10배의 성장을 했다. 그러니 정독도서관은 약간의 억지를 섞어서 이야기 한다면 10형제의 맏형 정도 될것이다대도시 서울이 커가는 역사와 함께 했던 도서관이면서 그 규모와 나이 면에서 정독도서관을 우리나라의 어른 도서관으로 꼽는 데 크게 무리는 없을 것 같다.


그 자리에 있어온 나이만큼 정독도서관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추억과 기억이 있다. 60년생 중견배우 김학철이 “백수시절 죽치고 살며 소설이란 소설책은 죄다 독파했다”는 곳이 정독도서관이다. 정독도서관에서 공부하면 고시에 합격한다고 해서 청춘을 이 도서관에 바친 현직 법조인들도 부지기 수란다.


정독도서관 이전 경기고등학교의 역사까지 겹치면 이 장소는 더욱더 특별해진다. 세계시민이었던 백남준은 경기고 출신이었다. 동문이라는 이유로 서울시와 문화부 주체의백남준 기념사업회는 정독도서관 부지[1]에 백남준 기념관을 건립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중이다.사서들이 일하고 있는 2층 사무실에는 가끔 연세 지긋하신 할아버지들이 들러 “여기가 학교 다닐 때 내 반이었던 것 같은데?” 하며 추억들을 회상하시기도 한다.   


도서관이 많지 않던 시절 정독도서관은 개관하자마자 공부할 공간을 찾는 학생과 직장인들로부터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새벽 네 시부터 도서관이 열기를 기다려 “입장”하던 풍경은 일상적이었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 학생들이 중상을 입는 사고도 있었다고 한다. “정독도서관 몽둥이로 질서 잡다 세 학생 추락, 중경상”이라는 제목의오랜 기사는 도서관이 당시 얼마나 인기였는지 짐작케 한다.


사고는 이날 상오 5시쯤부터 몰려든 학생 및 일반인 1만여명이 도서관 앞 가회동 골목길과 창덕여고 입구 등 3개의 골목길에서 약 5m씩 줄을 서 혼잡을 이루고 있었는데 질서를 잡는다고 도서관 수위 및 경비원 13명이 몽둥이를 휘둘러 학생들이 이를 피하려고 사고 지점으로 몰리는 바람에 일어났다.


공공 도서관이었음에도 몇 시간씩 기다려 입장료 10원을 내고 이용하던 시절이었다. 소위 386세대부터 장년층, 노년층까지 우리 사회 어른들의 추억에 정독도서관은 중요한 장소로 각인되어있다. 정독도서관은 가장 어른스러운 도서관이면서 어른들의 도서관이다.




[1]백남준 기념관 건립이 논의되고 있는 장소는 정독도서관 내 종친부 경근당과 옥첩당 부지이다. 원해 경복궁 동쪽 문인건춘문맞은 편에 있다가1981년 전두환 정권 당시 보안사의 요구로 정독도서관으로 이전하였다. 이전된 소격동 터에는 테니스장이 들어섰다. 최근 소격동 자리에 국립 현대미술관이 들어서면서 종친부의 원래 터가 발굴이 되고 다시 제자리로 복원하기 위해 철거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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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전미숙 2012.11.06 23:36

    우리나라 공공 도서관의 효시를 1901년 부산에 세워진 홍도 도서관(현 부산 시립 중앙도서관)으로 본다면 -- --- -- -중앙도서관이 아니라 (현 부산시민도서관) 입니다. 한국도서관기행(4) 인가에 다루었던 도서관이죠///. -- 한국 도서관 기행 좋은 글 정말 감사드려요.

...에 이어 일곱 번째로 소개하는 주제는 '장르 도서관'입니다.  '장르 도서관'편은 프롤로그를 포함해 세 도서관에 관해 4회에 걸쳐서 포스팅 할 예정입니다.  (지난 포스팅은 [도서관 기행] 카테고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한국 도서관 기행 (7) ~ 장르 도서관 ①편 / 한국 도서관 기행 (7) ~ 장르 도서관 ②편에 이어서...


* ①편에서 언급했습니다만, SF&판타지 도서관은 2012년 6월 사당에서 연희동으로 이전하여 개관했습니다. 아래 포스트의 사진 등은 사당에 있을 당시의 모습입니다.


SF & 판타지 도서관 : 장르는 우리가 지킨다 


by 강예린 & 이치훈 

공상이 아닌 상상의 보고


‘SF & 판타지 도서관’은 SF와 판타지를 주축으로 그 경계가 맞물려 있는 추리와 무협까지 포함하는 장르 도서관이다. 모험과 신비, 상상과 환상을 직접 다루는 책들, 그리고 이 책의 원동력이 되는 과학적 배경과 인문적 상황을 설명해주는 과학 잡지, 신화학, 상징인류학 책들도 보유하고 있다.



보통 과학을 기반으로 한 상상을 SF, 기술과 과학의 도움을 없이도 존재할 수 있는 상상의 장을 판타지라고 한다. 그러나 이 통상적인 정의 보다 SF 판타지 도서관의 전홍식 관장님의 정리가 더 마음에 든다. “굳이 구분을 하자면 SF는 ‘왠지 가능할 것 같은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고, 판타지는 ‘이렇게 되면 좋겠다는 꿈의 실현’에 가까워요.” 가능할 것 같기 때문에 현재의 입장에서 바라보기 쉽다는 것이 SF, 꿈에서 마음껏 실행해보았기에 현실의 결핍을 느낄 수 있다면 판타지다. 현실을 떠나서 상상의 세계로 떠나지만 다시 현실을 돌아와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 둘이 가진 힘이자, 이 도서관 이름이 'SF & 판타지 ‘도서관인 이유이다.

동유럽에서 SF 장르가 발달한 것도 엄한 정치현실을 고도의 상황설정을 통해 차원 높게 비판하고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주기 때문이다. 이 연장선에서 주한 체코 대사가 SF 소설을 쓰는 작가인 것도 신기하지만, 납득은 된다. SF 판타지는 매우 비전형적인 방식으로 정치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SF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공상’과학소설에서 ‘공상’을 떼어놓는다. 허황된 상상[空想]이 아니라 현실을 바꿀 수도 있는 엄연한 힘을 갖춘 장르라 믿기 때문이다.  

예컨대 영화 '그날 이후(The Day After1983)'에서는 핵폭발 이후에 사람들이 죽어가는 장면을 가상으로 보여주었는데, 이 상상 장면이 너무 적나라한 나머지 군축협상이 이루어지고 반핵운동을 강화했다 한다. 

아톰을 보고 자란 일본에서는 인간적인 로봇을 만들고 아이로봇(i robot)을 보고 자란 미국에서 만드는 로봇이 보다 실용적인 로봇을 만드는 것도 상상이 미래의 현실에 대해 힘을 행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SF 판타지 장르는 현실을 떠나버리는 공상이 아닌 현실로 돌아오는 상상, 현실과 밀착된 상상의 영역이다.  



사이버 문화에 힘입은 도서관  

 

SF 판타지 도서관의 처음은 한 모임의 작은 상상에서 시작했다. 1998년도에 생겨서 10년 동안 지속된 SF 동호회 그리고 그 중심에 있던 현재의 SF 판타지 도서관의 관장님이 있다. 도서관에서 찾기 힘든 SF 판타지 관련 책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싶다며 주문을 외웠다.   


“2008년 SF 판타지를 소개하는 ‘SF 판타지 컨벤션(convention)’에서, 자원 봉사하는 분들에게 SF 판타지 장르의 활성화를 위해, 도서관이 필요하지 않느냐 했더니, 모두가 동의하고 용기를 북돋았어요.” 동호회원들이 힘을 합해서 창고였던 공간을 개조했다. 얼렁뚱땅 페인트도 칠하고, 바닥도 깔았다. ‘그저 좋아서 만든’ 민간 도서관이니 지원은 못 받고, 운영자들의 자원봉사와 정기회원의 후원으로 운영을 시작했다. “지금은 정기회원이 60분 정도 계세요. 아직도 많이 모자라죠. 200명은 되어야 운영이 정상화되는데.”


‘SF 판타지 도서관’ 뿐 아니라, 한국에서 이 ‘SF 판타지 장르’의 시작은 사이버 공간의 등장과 관계가 깊다. 보통의 문학은 문학잡지나 신문의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을 하지만, SF 판타지 무협소설은 90년대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와 같은 PC 통신에서 연재되던 통신문학에서 기원을 둔다. ‘퇴마록’이나 ‘드래곤 라자’의 인기로 온라인의 연재는 오프라인의  출판으로 이어졌다. PC통신에서 인터넷으로 바뀌면서도 상황은 같았다. 이름만 사이버 문학으로 바뀌었다. 인터넷으로 연재된 판타지 무협물들이 책으로 바뀌어, 대여점을 중심으로 재보급 되었다. 한국의 판타지 물들의 표지 디자인이 가지는 묘한 B급 정서는 이런 기획되지 않고 인기에 대응하는 급한 출판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이 SF 판타지 장르에 대한 기회를 주지 않는 한국 상황에서 돌파구가 된 것이 온라인이라는 사이버 공간이었다. SF 판타지도서관은 이 가상의 세상을 오프라인으로까지 확장시키려 한다.  

한국 뿐 아니라 문학의 역사에서 SF와 판타지 장르는 천대를 받아온 것은 사실이다. 과학을 소재로 삼았지만 과학적인 사실에 다가가지도 못하고, 문학으로 보기에도 어렵다1)는 조소를 받기도 하고, 상상계를 낮게 보던 인식론적이고 심리학적인 전통도 뿌리 깊다.

이 맥락에서 SF 판타지 책은 도서관의 문턱을 넘기 쉽지 않았다. 지금은 폐간된 ‘판타스틱’ 이외에 이 장르에 대한 잡지가 거의 전무하기 때문에 문학잡지나 신문의 신춘문예처럼 판단할 수 있는 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SF 판타지 도서관은 이런 것에 대한 여과장치가 되고, 더 장르의 저변을 넓혀서 이 장르의 작가들을 등단하게 하고 싶어 한다. ‘미래경’이라는 잡지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작가를 대중에게 노출시키고, 도서관 서가에서 보이지 않던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작품이 잘되려면 잡지가 있어야 해요. 만화가 잘나갈 때 만화잡지가 20개 정도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신인의 작품 10편이 소개되면 200편의 작업이 소개가 된다는 셈이죠”




대여점 VS SF 판타지 도서관


한국에서 SF 판타지 문화가 비주류의 문화처럼 비쳐지게 된 것으로는, 이 장르의 유통이 주로 ‘대여점2)’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요즘은 인터넷에 밀려서 대여소마저 사라지고 있지만,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는  돈을 내고 만화책이나 SF 판타지 무협소설을 빌려주던 대여소가 동네마다 하나씩 있었다. 이 ‘대여점’은 도서관처럼 책을 빌려주긴 하나, 상업적인 성격 탓에 돈이 되는 책들 즉 자극적인 것들만 구비했다. 더욱이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 새로 나온 신진 작가의 책보다는 쉽게 독자를 얻을 수 있는 기존 일서나 외서 위주로 하여, 판타지 SF 무협의 장르 가 풍부해질 수 있는 토대를 협소하게 만들어 놓았다. 


“좋은 SF와 판타지 작품은 현실을 돌아보게 만들고 삶을 다시 보게 만들지요. 나쁜 작품은 그 안에 빠져서 다른 아무 것도 못 보게 해요. 대여점에 있는 많은 소설과 만화들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책이 아니라 사람들을 환상 계에서 빠져 나오지 못 하게 하는 작품이 많아요. 대여점은 돈을 벌어야하기 때문에 계속 빠져 들어 대여해가며, 시간을 죽이게만 만드는 그런 작품만을 선별해요.”


SF 판타지 관장님 이야기처럼 현실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즉 그냥 그 순간을 도피하는 것으로 SF 판타지의 장르의 이미지를 만드는데 대여소가 기여한 바는 크다. 만화 가게가 대본소 만화의 편을 들면서, 만화 장르에 대한 인상이 떨어뜨린 것과 마찬가지로, 대여소에서 택한 SF 판타지가 도피성 판타지인 것은 장르 전체에 대한 일반의 인상을 끌어내렸다.

SF 판타지 도서관이 서야할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현실을 나가더라도 다시 돌아 올 수 있는 문, 그것이 있기 때문이다.


SF&판타지 도서관 

- 홈페이지 : http://www.sflib.com/

-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sflibrarykr

- 트위터 : http://twitter.com/#!/sflibrary


다음 편은 '사진책 도서관’편입니다. 



1) SF 부족들의 새로운 문학혁명, SF의 탄생과 비상


2) 대여소에 대한 문화를 설명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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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도서관 기행 연재, 일곱 번째 꼭지로 돌아왔습니다. :-)

편에 이어 일곱 번째로 소개하는 주제는 '장르 도서관'입니다.  '장르 도서관'편은 프롤로그를 포함해 세 도서관에 관해 4회에 걸쳐서 포스팅 할 예정입니다.  (지난 포스팅은 [도서관 기행] 카테고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장르 도서관1) 


by 강예린 & 이치훈 


도서관에서 유독 눈에 띄지 않는 책들이 있다. SF(Scientific Fiction), 판타지소설, 사진 책, 시집이 그렇다.

문학 책들이 꽂혀 있는 서가에 가도, SF나 판타지는 따로 분류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외국소설 코너나 대중소설 코너 등에 분산되어 있어서, 서가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것 이외에는 알아채기가 힘들다. 게다가 SF는 가벼운 대중소설이라는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그 입지가 좁은 편이다.

시집은 도서관에서 빌려보기에 호흡이 짧은 쪽이다. 호흡이 짧다고 해서 도서관 안에서 머무는 시간에 읽게 되지도 않는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도서관에 머무는 시간에는 짧은 시간 안에 읽을 수 있는 운문보다는 조금 더 오래 읽을 수 있는 산문을 찾는데 열중하는 것 같다. 운문보다 산문이 더 힘을 가지고 있는 시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 책은 어지간한 규모의 도서관을 제외하고는 만나기 힘든 책 종류이다. ‘사진책’은 이미지 출력 비용 덕분에 ‘글 책’보다 월등히 비싸서, 도서관의 도서구매 예산에서 뒷자리로 쉽사리 밀려난다. 개인이 구매하기 힘든 책을 도서관이 대신 구비해야하는 것이겠지만 소설이나 에세이처럼 찾는 사람의 숫자가 더 많은 쪽을 더 구입하는 쪽으로 기운다.


도서관 살림을 따로 차리다 

이렇게 기존 도서관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던 장르의 책들이 새로 도서관 살림을 차렸다. 관악산 입구의 ‘시 도서관’, 사당동의 ‘SF & 판타지 도서관’2), 전남 고흥군의 ‘사진책 도서관’이다. 하나의 분류서가가 단독 도서관을 이룬 셈인데, 각 장르를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책을 널리 노출시키기 위해서 택한 전략이다. 재미있게도 이 세 도서관들은 자기 장르에 어울리는 장소에서 들어앉아있다.



관악산 ‘시(詩) 도서관’의 경우는 관악산 등산로의 입구에 있다. 필요 없어진 관악산 입산을 위한 매표소를 개조해서 시도서관을 만들었다. 도서관 앞에는 관악산 버스 정류장과 만남의 광장이 있다. 버스를 기다리다가 짬 내서 들어오는 사람들, 같은 등산모임 동반자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시도서관의 주요 이용자들이다. 일행이 도착해서 읽던 시집을 내려놓더라도 읽다 만 기분이 들지는 않는다. 시를 읽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짧지만, 그 여운은 등산을 마칠 때까지 길게 갈 수 있으니 시도서관으로서는 꽤나 어울리는 장소에 자리한 셈이다. 시는 텍스트를 넘는 심상이니, 여러 감각이 열린 상태에서의 산행은 보통 때보다 풍부할 것이다.


‘SF & 판타지 도서관’은 사당동 골목 안의 지하실에 있었다. 예산 사정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택한 입지지만, 이 사회가 SF 판타지 장르를 대해왔던 방식과 닮은 면이 있다. 사회적으로 SF나 애니메이션으로 보는 어른들은 오타쿠3)로 여긴다. 다 자란 어른이 당당하게 보기에는 허황된 책이지 않느냐는 편견을 피해서 ‘SF 판타지 도서관’은 지하로 내려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지하’란 판타지소설에서 늘 다른 세상으로 떠나는 입구이다. ‘동굴’, ‘터널’, ‘지하세계’, ‘옷장 속’, ‘지구 저 아래’는 별 세계가 있고 거기에서 살아가는 종족과 사회가 있다. SF 영화 보인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지하’란 판타지소설에서 늘 다른 세상으로 떠나는 입구이다. ‘동굴’, ‘터널’, ‘지하세계’, ‘옷장 속’, ‘지구 저 아래’는 별 세계가 있고 거기에서 살아가는 종족과 사회가 있다. SF 영화속에서 지하를 경험하고 나온 사람은 보통 성숙하고 자라나듯이 ‘SF 판타지 도서관’ 내려갔다 나온 사람들은 힘을 내서 다른 일상을 살 수 있을 것 만다.      

  

‘사진책 도서관’은 관장님 말씀처럼 섬 빼고 육지 상으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곳, 고흥에 도서관이 있다. 여기까지 작정하고 오는 동안 사진 책을 읽을 마음의 폭이 마련된다. 사진책은 텍스트를 읽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읽는 것이다. 느릿한 책읽기만이 이미지를 찬찬히 읽어낼 수 있다. 고속도로와 고속철도 시대에도 변화가 거의 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고흥에 자리 잡았다는 사진책 도서관장님의 말씀은 ‘순간을 영원으로’ 간직하고 있는 사진책과 분위기가 맞춤한다. 


어찌 보면 각 장르 도서관이 위치하고 있는 장소는 각 장르를 대변해주고 있다.


다음 편, '관악산 ‘시(詩) 도서관’편에 이어집니다.



1) ‘전문 도서관’ 보다는 ‘장르 도서관’으로 부르고 싶은 것은 이 세 도서관이 하나의 분야를 전문적으로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 그 장르가 수반하는 하위문화(subculture)까지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2) 사당동의 SF & 판타지 도서관은 이 글을 쓰고 난 후, 연희동으로 이전했다. 이후 SF & 판타지 도서관 꼭지에서는 이사가고 달라진 부분을 더 써주겠다. (2012년 6월 이전한 주소 :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121-6 중앙빌딩 3층)

3) 다른 말을 대체하려고 해도, 불가능해서 오타쿠라는 단어를 썼다. 네이버 사전에 따르면 

오타쿠.[御宅, otaku] 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초기에는 ‘애니메이션, SF영화 등 특정 취미·사물에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나, 다른 분야의 지식이 부족하고 사교성이 결여된 인물’이라는 부정적 뜻으로 쓰였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부터 점차 의미가 확대되어, ‘특정 취미에 강한 사람’, 단순 팬, 마니아 수준을 넘어선 ‘특정 분야의 전문가’라는 긍정적 의미를 포괄하게 되었다. 한국에는 비슷한 말로, 한 가지 일에 광적(狂的)으로 몰두하는 사람, 낚시광·바둑광·골프광 등으로 불리는 ‘광(狂)’ 이라는 단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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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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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국립 디지털 도서관

편에 이어 여섯 번째로 소개하는 주제는 '자연과 도서관'입니다.  '자연과 도서관'편은 세 도서관에 관해 4회에 걸쳐서 포스팅 할 예정입니다.  (지난 포스팅은 [도서관 기행] 카테고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한국 도서관 기행 (6) ~ 자연과 도서관 ①편에 이어서...


자연과 도서관 ②


by 강예린 & 이치훈

서울 숲 도서관


뚝섬은 예부터 서울 땅의 유흥공간 역할을 해왔다. 조선시대에는 임금이 사냥을 하는 곳이었고, 대한제국시대에는 최초의 근대식 상수시설인 ‘경성수도양수공장’이 세워졌다. 해방 후에도 전차를 타고 종점인 동대문에 와서 다시 이 곳 뚝섬으로 나들이 오는 인파가 그치지 않았다. 과천에 있던 경마장도 원래는 이곳에 있던 것으로, 그 경마장 트랙은 서울 숲의 산책로로 바뀌어 남아있다.

한마디로 뚝섬은 노니는 들[야유 野遊]이다. 경마장이 이전하고 정수장의 기능이 일부 중지 된 후 뚝섬은 2003년 도시공원화 계획을 통해 2005년 서울 숲으로 변모하였다. 구체적인 숲의 면모는 ‘뚝섬숲 조성 기본계획안’ 현상 공모의 당선작 (주)동심원조경기술사무소의 설계안에 기반 한다.

서울 숲 계획의 내용은 역사적으로 지속되어 온 나들이 공간, 놀이터로서의 자연, 새로운 공원의 유형을 만드는 것이었다. 5개의 테마 공원 중 제일 면적을 많이 차지하는 것도 22만㎡의 ‘문화예술공원’이다. 보다 자연에 가까운 ‘생태숲’은 16만5천㎡로 그 다음이다. 그 밖에 서울숲의 구성은 자연체험학습원, 습지생태원, 한강수변공원으로, 자연이라서 그만인 숲 보다는 놀이를 유도하는 발랄한 자연이다.

그러나 서울숲이 개장한 초기에 숲을 이용하여 노는 사람들의 모습은 배경이 꼭 숲이 아니라도 상관없이 하던 대로 놀았다. 뉴욕의 센트럴파크나 런던의 하이드파크처럼 책을 들고 와서 보기도 하고 아이들이 뛰어놀고, 산책과 낮잠을 즐기는 자연을 상상했지만, 고스톱을 치며 고기굽고 술 마시려는 드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소위 ‘가든’ 문화 즉, 고기 구워먹고 술 마시고 화투치는 문화를 서울 숲에서도 한 것이다. 공원이 부족한 도시에서 오래 살다 보니, 일탈이 여유를 대신해 문화로 자리 잡아 왔다. 진짜 자연 대신에 각종 고기집 가든에 있는 야외 인공 폭포와 나무들을 즐기는 것에 익숙하다보니 생긴 일이다.    

이를 바로 잡으려, 서울 숲 공원은 시작하자마자 건강한 공원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책 읽는 공원’ 캠페인을 시작했다. ‘서울 숲은 거대한 야외 도서관’이라는 캠페인 문구를 내세웠다, 그리고 붙박이 도서관에 움직이는 도서관을 더해서 사람들이 공원에서 놀다 책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였다.

서울 숲 입구의 자원봉사 쉼터를 개조해서 ‘숲 속 작은 도서관’으로 개조해서 책을 빌려서 공원에 들어갈 수 있게 하였다. 또한 주말에는 ‘책 수레’에 책을 싣고 공원 곳곳에 있는 사람들이 쉽게 보고 다시 끼어 넣을 수 있도록 병행해서 운영한다.




사람들은 공원 입구에 있는 ‘숲 속 작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공원 안 여기저기에서 읽을 수도 있다. 아니면 우연히 마주친 책수레에서 책을 집어 올려 보다가 이곳에서 반납하거나 아니면 ‘숲 속 작은 도서관’에 반납해도 된다.

정작 ‘숲 속 작은 도서관’은 단체로 방문 온 유치원생들의 동화 구현 장소로 사용되거나, 주말에 부모와 손잡고 책 읽고 산책하러 나온 어린 아이들이 주로 이용한다.

책 수레에 싣는 책들은 도서관에서 매 번 바꾸는데, 아쉬운 것은 어린이 책들만 주로 구비해 놓는다는 것이다. 숲 속 작은 도서관에는 분명히 어른들의 책이 있으나, 아이를 데리고 오지 않은 경우 잘 찾지 않는다. 아이들이 뛰어놀고, 어른들은 책 읽으며 공원에서 길게 누워 있는 모습이 더 자연스럽지 않은가? 하이드파크에서 길게 누워서 책을 읽고 있는 그림들의 모습을 서울 숲에서도 어색하지 않은 날이 오길 바란다.

숲의 도서관은 (재)서울그린트러스트(http://www.sgt.or.kr/)와 ‘서울 숲 사랑모임’(http://www.seoulforest.or.kr) 이렇게 민관이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서울 숲 도서관은 민관의 참여로 운영되는데, 서울시가 시설을 관리한다면, 서울 그린트러스트는 생태 교육과 문화에 관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자원봉사는 ‘서울 숲 사랑모임’이 담당하는 형태이다. 이러한 도서관 운영의 방식은 이후 숲 도서관이나 다른 작은 도서관들의 참조가 되었다. 


③편에서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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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렸던 분 계실까요? 기다렸다고 빈말이라도 좀... ^^ 카테고리명의 [연재] 말머리가 무색하게 몇 개월만의 포스팅으로 돌아온 한국 도서관 기행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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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진아 도서관 
(2) 광진구 정보화 도서관 
(3) 여행자의 도서관 - 제주도 달리 도서관 
(4) 
부산광역시립시민도서관 : 도서관 그리고 나이 먹기 (aging) 

(5) 국립 디지털 도서관

편에 이어 여섯 번째로 소개하는 주제는 '자연과 도서관'입니다.  '자연과 도서관'편은 세 도서관에 관해 4회에 걸쳐서 포스팅 할 예정입니다.  (지난 포스팅은 [도서관 기행] 카테고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자연과 도서관 ①


by 강예린 & 이치훈 

자연녹지지역 그리고 도서관

도서관을 방문하면 하나같이 외곽의 공원이나 산언저리에 자리 잡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특히 지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경우는 대부분 녹지에 있다. 접근하기 쉬운 도심 보다 자연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에서는 도서관 문화가 자라나기 시작한 것이, 이미 웬만한 도시구조가 짜여 진 다음으로 너무 늦었기 때문이다. 비싼 도시 중심부에는 이미 상업 업무 시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으므로, 빈 땅을 찾기도 힘들고 도서관처럼 이윤을 창출하지 않는 공공건물이 감당할 만한 지가의 자리는 더더군다나 없다. 그래서 대신 택한 것이 관이 접근하기 힘든 대신 외곽의 녹지 지역이나 공원의 한 귀퉁이다.  

도서관이 오래전부터 발달한 서양의 여러 나라의 경우, 개발의 소용돌이에 빠지기 훨씬 이전부터 도시 중심부에 이 공공건물이 또아리를 틀 수 있었다. 또 다른 사례로 영국의 경우는 1940~90년대 런던 내·외곽에 지어진 신도시에 도시기반시설로 정착시키며,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지역에 자리를 잡은 경우도 있다. 이 중 가장 성공적인 신도시라고 하는 밀턴 킨즈의 경우 쇼핑단지, 기차역, 종합병원과 같은 공공시설과 거의 같은 시기에 도서관이 지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도서관 입지는 도시의 중심을 차지 할 수 있었다. 도서관 옆에는 쇼핑센터, 시청, 교회가 위치했다. 일상의 결절지에 도서관이 있다. 

서울만 보더라도 중심지에 도서관이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중심에 있다고 해도, 남산 도서관처럼 산 위에 올라가 있어서 접근성은 떨어진다. 한국의 도서관 옆에는 나무와 풀 그리고 산이 있다.  


서울시 주요 일반도서관 중 공원녹지 지역에 위치한 도서관



자연 속에 있으면 ‘그만(而已)’인 집

허경진 선생이 쓴 「조선시대의 르네상스인 중인」에 따르면, 골짜기가 많은 인왕산에는 중인 출신 지식인들이  올라가서 자신들만의 서재를 짓고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책을 읽고 시를 짓고 문학을 했다. 천수경의 ‘송석원(松石園)’, 장혼의 ‘이이엄(而已广)’, 임득명의 ‘송월시헌(松月詩軒)’, 이경연의 ‘옥계정사(玉溪精舍)’, 김낙서의 ‘일섭원(日涉園)’, 왕태의 ‘옥경산방(玉磬山房)’이 그렇다.

자연 속에서 시문을 누리는 집은 보통 지붕과 바람을 막는 정도의 집[엄 广], 지붕 아래 넓은 창이 있는 집[헌 軒]이거나 담장 정도로 주위와 구분되는 집[원 園]처럼, 엄격하게 체계를 갖춘 집보다는 눈·비·바람 정도 피하는 정도로 단출하다. 덧붙이는 것이 별로 없으니, 자연을 가까이 끌어들일 수 있는 집의 유형이다. 검박한 처소를 짓고 자연을 느끼며 책 읽고 문학하는 것이 하나의 삶의 유형이었던 것이다.

조선시대의 중인을 가르치던 장혼이라는 사람은 옥류동 계곡에 ‘이이엄(而已广)’이라는 집을 짓고 자연과 천명에 따라 살면 그만(而已)인 삶을 지냈다.  


“홀로 머물 때에는 낡은 거문고를 어루만지고 옛 책을 읽으면서 그 사이에 누웠다 올려다보면 그만이고, 마음이 내키면 나가서 산기슭을 걸어 다니면 그만이다. 손님이 오면 술상을 차리게 하고 시를 읊으면 그만이고, 흥이 도도해지면 휘파람 불고 노래를 부르면 그만이다. 배가 고프면 내 밟을 먹으면 그만이고, 목이 마르면 내 우물의 물을 마시면 그만이다. 추위와 더위에 따라 내 옷을 입으면 그만이고, 해가 지면 내 집에서 쉬면 그만이다. 비 오는 아침과 눈 내리는 낮, 저녁의 석양과 새벽의 달빛, 이같이 그윽한 삶의 신선은 바깥세상 사람들에게 말해 주기 어렵고, 말해 주어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1)  


생활이 소박해지면 깨달음에 가까워지고, 책과 삶의 정중앙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인가? 그는 이런 집에서 반드시 읽어야할 ‘맑은 책 100부’를 선정하고 ‘맑은 경치 열 가지’를 지정해서 자연의 맑음과 배움의 맑음을 함께 추구하였다. 이 맑은 책 100부에는 주역, 고려사, 삼국사 등 역사책부터, 시집, 이야기책, 의서 등 골고루 포함되어 있다.     



서양에도 장혼이 있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월든 숲속에서 오두막을 짓고 자연에서 최소한 자신을 가리며 머리와 마음을 비우는 삶을 살았다. 소로우는 우리의 정신이 가장 또렷또렷한 시간을 바쳐가면서 발돋움해서 서 듯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동시에 단순한 독자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책을 읽는 틈틈이 주위의 자연을 관찰할 수 있는 소요의 시간, 명상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어쩌면 제일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안하면서 주변 풍광을 보고, 햇볕을 느끼는 시간이다.     

동서양 모두 자연에서 소요하며 책을 읽는 것은, ‘그냥 책 읽는 것’의 차원보다는 조금 더 높은 경지에 닿고 싶어 하는 마음과 통한다. 자연에서 머리를 맑게 헹구고 책을 읽는 것은 내용의 독해보다는 마음을 닦는 일에 가깝다.


현대에도 자연과 더불어 책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있다. 산에, 숲 속에,  논밭 위에 서가를 마련해두고, 자연이 주인인 도서관을 만들고 있다. 도서관은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외연을 넓혀주는 도구에 가깝다. 자연을 더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길을 일러주든지, 자연을 천천히 둘러 볼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든지, 자연과 도서관이 통해있음을 알려주는 매개로 도서관은 존재한다.

서울 숲 도서관은 ‘책 읽는 공원문화’를 보급하려 한다. 관악산 숲 도서관은 1-200년 만에 생활터전에서 멀어진 숲을 가까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 한다. 농부네 텃밭 도서관은 불과 30-40년 만에 깡그리 잃어버린 땅을 살림하는 법을 소개하고 있다. 이들 모두는 책을 통해 자연을 간접적으로 읽어내는 것 못지않게 숙인 머리를 들고 주변 자연을 직접 체험하라고 말한다.


②편에서 이어집니다. 짐작하시겠지만 ②~④편은 각각 서울 숲 도서관, 관악산 숲 도서관, 농부네 텃밭 도서관 얘기입니다. ^^

* 2편은 5/31(목) 늦은 오후에 포스팅할 예정입니다.



1) 허경진, ‘조선의 르네상스인 중인’, 램덤하우스, 2008, pp.79-8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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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한국 도서관 기행 연재 예고 
(1) 이진아 도서관 
(2) 광진구 정보화 도서관 
(3) 여행자의 도서관 - 제주도 달리 도서관 
(4) 
부산광역시립시민도서관 : 도서관 그리고 나이 먹기 (aging)
편에 이어 다섯 번째로 소개하는 '국립 디지털도서관'입니다. 국립 디지털도서관 편은 4회에 걸쳐서 포스팅 할 예정입니다.  (지난 포스팅은 [도서관 기행] 카테고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국립 디지털도서관 ①

by 강예린 & 이치훈 

깊은 미로에서 길 잃기

태어나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도서관은 대학시절 학교의 중앙 도서관이었다. 양장본의 두꺼운 고서들이 줄지어 꽃힌 거대한 책장을 연상시키는 외관이었다. 그 속에는 층마다 오래된 책 냄새를 가득 머금은 깊은 미로와도 같은 서고들이 있었다. 개가식 열람실의 입구에서 검색을 마치고 쪽지에 적은 책제목과 분류번호를 들고 그 미로에서 길을 잃던 일들이 생각이 난다.

쪽지에 적힌 번호를 찾아가기만 하면 될 것을, 나는 늘 목적지에 가던 와중에 마구리를 내밀고 나를 좀 꺼내달라 외치는 다른 책들에 한눈이 팔리고 말았다. 겨우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정작 대출해야할 책을 먼저 찾기보다 책장 전체를 쭉 훑어보고는 이것저것 뽑아 옆구리에 끼고 그 자리에 앉곤 했다. 한참을 복도에 앉아 이책 저책 뒤지다가 다음 수업시간이 다가오면 대출한도 만큼의 책을 추려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렇게 빌려나온 책은 원래 찾으려고 했던 열권의 책 중 한두 권과, 그 주변 길목에 있었던 다른 책 여덟 권이 되어버리고 만다.

산만하기 그지없는 관심사와 책욕심 때문에 항상 서고의 미로에서 효율적인 책찾기를 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유사한 주제로 서고에 꽃힌 책들을 이리저리 꺼내보고 들춰보는 노동을 통해서 깊고 넓은 책의 세상을 감지하게 되었던 것도 같다.

책을 읽는 재미는 그렇게 서고에서 길을 잃는 재미와 같다. 이 책을 읽다가 흥미로운 주석에 끌려서 다른 책으로 손을 옮기고, 그 책이 열어주는 또 다른 길로 들어가 보기를 반복하다보면 어느새 나는 수십, 수백년의 시간차를 두고 얘기를 걸어오는 다른 저자들과 동시에 만나고 있다. 그렇게 도서관을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나의 도서목록은 확실히 넓게, 길게 확장된다. 에코의 말처럼 “도서관의 이상적인 역할은 센 강변의 헌책방 진열대, 즉 우연히 기막힌 보물을 찾아내는 것과 약간 비슷하다”

 

서고 없는 도서관?

2004년부터 구글은 미국의 연구 도서관과 파트너쉽을 맺고 도서관이 소장한 책을 스캔하기 시작하였다. 2005년에 저작권 문제로 약간 지연되기는 했지만 이미 1500만권가량의 책을 스캔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대인 중앙도서관의 장서량이 800만권정도이니 두 배나 많은 양이다. 구글 덕분에 우리는 더 이상 중앙 도서관의 깊고 넓은 서고에서 길을 잃거나 무거운 책을 들고 다니는 노동을 할 필요가 없어질 것 같다. 책을 신청하고 대출계 앞에 앉아 책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검색과 동시에 책의 본문을 PC모니터를 통해 볼 수 있다. 말 그대로 서고 없는 도서관이 가능해질 것 같다.

게다가 구글의 스캔 방식은 광학 문자인식 OCR(Optical Character Reader)기술로 지면의 활자를 그림이 아닌 텍스트 정보로 저장하기 때문에 스캔한 책의 본문을 검색할 수 있다. 어떤 책에 어떤 단어가 몇 번이나 나오는지, 그 키워드와 연관된 다른 책은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인류가 수천년 동안 지면과 서고의 공간에 켜켜이 쌓아온 지식이 구글 빌딩 어딘가에 위치한 조그만 방안 서버에 저장되고 있다. 아마 책은 단순히 비물질화된 것이 아닐 것이다. 구글의 서버에서 계열화 되고 재구성되어 새로운 지식으로 탄생할 수 도 있을 것이다. 구글 디지털 라이브러리 프로젝트가 지속적으로 전세계의 도서관을 대상으로 확대된다면 아마 우리는 세상의 모든 책을 서고에서 헤멜필요 없이 우리집 거실의 키보드 자판을 두드려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서고 없는 도서관이 가능할까? 또 도서관에 갈 필요 없이 집에서 PC로 모든 책을 다운 받아 볼 수 있을까? IT 강국이라고 하는 우리나라 국립중앙도서관도 1982년부터 자체 소장자료에 대한 전산화 작업을 시작하였고 2008년에 이르러 국립디지털도서관을 개관하였다. 디지털 도서관에는 정말 서고가 없긴 하다. 중앙도서관보다 천여 평이나 더 넓은 공간이(연면적 38,014m2(11,499, 지상3층 지하 5) 각종 디지털 미디어를 열람할 수 있는 PC와 모니터로 가득 채워져 있다.

하지만 국립 디지털 도서관에서 열람할 수 있는 전자도서는 20만여권 정도이다. 여전히 800만권의 종이책이 디지털 도서관과 연결된 국립 중앙도서관의 서고에 소장되어 있고 그 책을 읽기 위해서는 직접 서고를 뒤지거나 열람신청을 하고 기다려야 한다


지식은 여전히 공간에 축적된다.

우리나라의 디지털 도서관은 구글처럼 이미 출판된 종이책을 스캔하여 제공하지는 않는다. 일부 국립 중앙도서관의 도서를 디지털화하여 구축한 원문 DB 2009년 도서관법 개정 시행을 통해 수집한 전자책, 전자 잡지 등을 이용할 수 있다.

아무래도 새로운 매체가 오래된 매체를 완전히 대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구글 프로젝트로 인해서 모든 책을 인터넷을 통해 다운 받아볼 수 있다는 꿈은 좀더 현실감 있게 다가오지만, 책을 스캔하는 데에 드는 막대한 비용과 저작권문제로 등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참고로 미국의 연구 도서관에는 약 5 4300만권의 책이 있는데, 구글이 하버드 도서관으로부터 시작해서 미국의 대형 도서관 다섯 곳으로부터 디지털화하려고 했던 도서 수는 약 1500만권. 이는 미국 연구 도서관 소장 도서의 약 2.7% 수준이다. 매체와 관련된 기술이 많이 발전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지식은 공간에 축적되고 우리에겐 책을 모아둘 도서관이 필요하다.

②편에서 계속됩니다. ^^ 




반비 블로그에 인기리에 연재되었던 
도서관 기행이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도서관 산책자
두 책벌레 건축가가 함께 걷고 기록한, 책의 집 이야기


인터넷 서점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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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anbi Editor!
한국 도서관 기행 연재 예고 / 한국 도서관 기행 (1) 이진아 도서관 / 한국 도서관 기행 (2) 광진구 정보화 도서관 편에 이어 세 번째로 소개하는 도서관은 제주도 달리 도서관입니다.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달리 도서관편도 네다섯 편에 나눠서 포스팅 할 예정입니다.  (지난 포스팅은 [도서관 기행] 카테고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한국 도서관 기행 (3) 여행자의 도서관 - 제주도 달리 도서관 ①편에 이어...
by 강예린 & 이치훈
 
서재+서재+서재+…+서재 = 도서관


달리도서관은 전문 사서가 있고 장서체계가 있는 도서관이 아니다. 게다가 도서관 측에서 책을 구입하거나 기부 받지도 않는다. 달리 도서관의 책꽂이에는 그 대신 일반 사람들이 선별한 책들로 꽂혀 있다.

달리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과 책꽂이에는 주인이 있다. 각 사람들은 ‘자기가 읽고 좋았던 책, 의미가 있는 책, 추천하고 싶은 책, 빌려주고 싶은 책’들을 달리 도서관에 보낸다. 그러나 기부는 아니고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는 위탁이다.

전문 번역가인 어떤 분은 자신이 번역한 책들을 열대여섯 권 보냈다. 문화인류학과 교수님은 자신의 삶에 가장 의미 있는 책들을 보냈다. 어떤 분은 임신하면서 읽었던 세계문학전집 중 가장 마음에 들어서 태교에 도움이 되었다는 책들을 추려서 보내왔다. 한 부부는 쌍둥이 딸 아들이 자라나서 이 다음에 제주도에 놀러왔을 때 읽어줬으면 하는 책들을 보내왔다. 그리고 이 남편의 직장 후배인 분은 이 앞의 쌍둥이와 사돈 맺고 싶다며, 자신의 아이를 위한 책들을  앞선 쌍둥이 책장 옆에 꽂아 달라고 했다. 외대도서관지킴이들은 도서관을 지키며 봤던 책 중에서 좋았던 것들을 보내줬다. 임순례 감독의 책꽂이는 이름값을 하시라고 제일 눈에 띄는 장소에 놓여있다.

달리 도서관은 각 사람의 서재를 모아서 조립하여 도서관으로 이뤄낸 경우다. 몇 년 전 한 포털 사이트 때문에 번지기 시작한 아무개 씨의 서재가 이곳에서 보다 일찍 시작되고 있었다.

책의 수집이 이러한데, 책을 정렬하는 방식이 보통의 도서관과 같을 수는 없다. 그래서 이 도서관의 책과 책꽂이 옆에는 ‘철학, 문학, 외국어’의 분류 대신에 이것을 보낸 사람들의 이름이 붙어 있다.  이 이름표 때문에 책을 고르면서, 마치 다른 집 놀러가서 책꽂이를 훑어보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달리 도서관의 이름표 달린 책꽂이를 보면서, 네덜란드의 한 도서관실험 프로젝트가 떠올랐다. 사람들이 서가에서 여러 권 책을 뽑아 보고 나서는 다시 원래 자리로 책무더기를 돌려놓지 않고 주변의 빈 책꽂이에 꽂아주면,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이용하는 방식의 실험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한 사람이 심사숙고해서 뭉뚱그려 놓은 책 무더기는 다른 사람에게 새로운 분류가 될 수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 것이다. 달리 도서관 서재의 정렬방식도 이와 비슷하지 않은가. 한 사람이 보내온 책 무리의 의미는 철학, 문학, 소설로 분류되는 것 보다 더 구체적이고 매력적이다. 

나는 한참 책꽂이를 뒤졌다. 문패만 보고 불쑥 어떤 집에 들어가서 주인의 서재를 방문한 기분이다. 어떤 책꽂이는 마치 내 책장에서 뜯어 온 것 마냥 닮기도 했다. 네이버의 ‘지식인의 서재’의 성공 이후로 쏟아져 나온 특정 개인들의 독서편력에 대한 호기심의 근저에는 그 사람을 알고 싶다는 마음에 있다.  

외국어대 생활도서관의 책꽂이(서재)에는 사회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대학생들이 보인다. 고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 역사』, 우석훈의 『88만원 세대』,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조한혜정의 『글 읽기와 삶 읽기』,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등이 이 곳에 꽂혀 있다. 고등학교 때까지 생각해보지 못했던, 자기가 밟은 조금 더 넓은 땅이 무엇이었는지 찾고 또 반문하려는 포부가 보인다.

여행자의 시선을 유달리 끌어 모으는 책꽂이도 발견했다. 틱낫한의 『이른 아침 나를 기억하라』, 조은의  『벼랑에서 살다』, 이블린 폭스켈러의 『생명의 느낌』, 박재동의 『실크로드 스케치』, 존 카마르의 『당신이 어디를 가든 거기엔 당신이 있다』 등 유독 여행지에서 잘 되는 자아성찰에 돕는 서재다. 여행자가 밤에 들어와서 뽑아서 읽으면 피곤에 지쳐 멀리 도망가 있는 마음하나 잡아 올 수도 있겠다.  

보통의 장서분류체계인 철학, 소설, 사회과학, 자연과학은 책을 찾을 방향을 지시하긴 하지만, 내용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여행에서 이 한 줄의 책꽂이를 만나는 것은 낯선 한 사람을 만나 저 방향으로 가는 것은 어떠한 가하는 조언은 듣게 된다. 


달리도서관에 책장을 보낸 사람들은 그 대가로 이곳에서 무료로 숙박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이렇게 보면 사람보다 책들이 먼저 여행을 온 셈이다. 언젠가 제주도에 올 미래의 나, 아니면 친구, 가족, 혹은 영 모르는 사람들이 펼쳐 볼 수 있도록 미리 여행을 준비하는 것이다. 앞서 말한 쌍둥이 부부는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랐을 때, 이곳에 여행을 다녀갔단다.

이 아이가 머리가 굵어져서 책의 내용이 보이기 시작할 때까지, 이 책꽂이는 제주도에서 다른 사람과 더불어 기다릴 것이다. 책도 시간을 쌓아가고 아이도 시간을 쌓아가며 동반성장하는 것이다. 언젠가 아이와 책의 무게가 같아지면 제주도에서 만날 것이다. 

달리 도서관은 책을 여행시키는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싶어 한다. 제주도는 너무 큰데, 여행자의 도서관이 제주시 한 곳에 매어 있으면 안 되니 말이다. 제주섬 동서남북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들로 책을 순환시키면서, 제주도 내부의 여행지마다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 한다. 제주의 곳곳에 달리도서관 분관처럼 뜻을 마주할 수 있는 게스트 하우스를 여행자들의 도서관 분관처럼 엮으려 한다. 

③편에서 계속됩니다... 



반비 블로그에 인기리에 연재되었던 
도서관 기행이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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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책벌레 건축가가 함께 걷고 기록한, 책의 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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