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한 코끼리


by 최종욱, 김서윤


제 4부 코끼리, 빛고을 광주로 이사 가다


    5장 영화, 드라마, CF…… 끼리의 화려한 연예계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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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일보

 『아이다』의 개선 장면에 맞추어 분장한 코끼리들과 조련사들.  광고계에서 흔히 언급되는 용어로 ‘3B’라는 것이 있다. 미인(Beauty), 아기(Baby), 동물(Beast)가 모델로 등장하는 광고는 성공한다는 법칙이다. 이 법칙은 꼭 광고에서만이 아니라 시각적 효과를 노리는 분야에서 두루두루 통용된다고 할 수 있다. 동물 중에서도 코끼리는 소비자에게 친숙한 동시에 그 압도적인 몸집으로 인상적인 효과를 남긴다. 하지만 일반 동물원의 코끼리는 본격적으로 훈련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촬영이나 행사에 동원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러니 이미 공연용으로 잘 훈련된 코끼리들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것은 당연했다.

2003년 9월 잠실 주경기장에서     대형 야외 오페라 『아이다』의 막이 올랐다. 넉 달 전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공연한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의 여운이 채 식지 않았을 때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시도되는 대형 야외 오페라였던 『투란도트』는 중국 출신의 세계적인 영화감독 장이모우가 연출했다. 총제작비가 50억 원, VIP석 가격이 50만 원이나 되어 무모한 시도라는 우려가 컸지만 나흘 동안 11만 명의 관객을 모아 흑자를 달성했다. 그 성공을 뛰어넘겠다고 나선 작품이 『아이다』였다. 베르디가 작곡한 이 오페라는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이집트의 장군 라마데스와 에티오피아의 공주 아이다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투란도트』의 화려함을 뛰어넘기 위해 『아이다』의 기획사는 제2막 라마데스 장군의 개선 장면에 공을 들였다. 개선 행진곡에 맞추어 코끼리를 포함한 70여 마리의 동물, 1000여 명의 엑스트라, 열두 대의 전차가 공연장인 잠실 주경기장 트랙을 한 바퀴 돌게 한다는 계획이었다. 10분도 채 안 되는 이 한 장면에만 총제작비 80억 원 중 10억 원이 투입되었다.

그해 9월 코끼리들은 인천과 서울을 오가며 연습을 시작했다. 송도 유원지에 도착한 지 석 달 만이었다. 연습이 없는 않는 날에는 원래대로 공연을 해야 했다. 조금이라도 코끼리의 피로를 줄이기 위해 무(無)진동 컨테이너에 탄 채 이동했다. 이때는 아직 한 마리가 갑작스럽게 죽기 전이라 모두 열 마리였다. 함께 출연하게 된 조련사들도 이집트 병사로 분장한 채 코끼리 등에 올라탔다. 코끼리들은 조련사들이 이끄는 대로 잠실운동장 안을 뱅뱅 돌았다. 코끼리 외에 말 55마리와 낙타 여섯 마리도 개선 행렬에 포함되어 있었다.

『투란도트』의 열기가 이어진 덕분에 『아이다』 역시 큰 화제가 되었다. 원래 두 번으로 예정되어 있던 공연이 세 번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최고 60만 원이나 되는 티켓 가격이 문제였을까. 『아이다』는 40억 원 적자라는 처참한 성적을 남겼다. 하이라이트인 개선 장면은 ‘동물 쇼’ 때문에 예술적 완성도가 희석되었다는 혹평을 받았다.1) 동물들의 행진이 질서 정연하지 못해 군대다운 분위기가 나지 않기도 했지만 더욱 난감한 문제는 동물들이 행진 도중에 대변을 보는 바람에 관람객들이 악취에 시달린 것이었다.


2008년 6월부터 8월까지 KBS에서 방영된 「최강칠우」는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무협 사극을 표방한 드라마다. 에릭이 연기한 최칠우는 낮에는 의금부의 하급 관리로 일하지만 밤만 되면 악인을 처단하는 자객단의 일원으로 변신한다. 「최강칠우」 6회에서 마을 어린이들이 자객단을 찾아와 코끼리를 없애 달라고 부탁한다. 이 코끼리는 인조가 청나라으로부터 선물받아 정3품 벼슬을 하사한 귀한 몸. 코끼리를 맡은 지방 관아 주변에 사는 백성들은 코끼리가 먹을 쌀을 대느라 허리가 휜다.

이거 어디서 본 상황이 아닌가. 그렇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한반도 최초의 코끼리 이야기와 흡사하다. 「최강칠우」의 연출을 맡은 박만영 피디는 이 드라마가 퓨전 사극이 아니라 정통 사극이라고 강조하며, 극본의 기본 바탕은 조선왕조실록에 근거했다고 밝힌 바 있었다.2)


▲ 「최강칠우」의 한 장면. 백성들이 코끼리의 먹이를 바치고 있다. (ⓒ KBS)



▲ 촬영 도중에 코끼리에게 장난을 치고 있는 주연 배우 에릭. (ⓒ KBS)



  하지만 태조가 아닌 인조로, 일본이 아닌 청나라로 설정이 조금씩 바뀌었듯이 이후의 전개도 기록과는 다르다. 최칠우는 코끼리를 없애겠다며 관아로 가지만 알고 보니 코끼리는 쌀이 아닌 풀만 먹는다. 군수가 코끼리를 핑계로 쌀을 거두어 착복하고 있었던 것. 진실은 알게 된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자 군수는 쌀과 돈을 남긴 채 줄행랑을 쳐 버린다.

촬영이 있던 날, 코끼리는 조련사, 코끼리랜드 관계자와 함께 새벽에 어린이대공원을 출발해 오전 9시에 촬영지인 경상북도 문경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캄’이라는 암컷 코끼리 한 마리뿐이었다. 아역 배우들은 캄과 이미 구면이었다. 제작사에서 아역 배우들을 미리 어린이대공원에 데려가 캄과 친밀감을 쌓게 했기 때문이다.

코끼리는 촬영장의 귀빈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날 하루 코끼리의 출연료가 1천만 원이었다. 코끼리가 현장에 어느 정도 적응하자 오전 10시에 촬영이 시작되었다. 코끼리는 저잣거리를 지나는 장면, 쌀을 바치는 백성들 옆에 서 있는 장면, 지방 관아의 우리 안에서 풀을 먹는 장면 등을 촬영했다.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에릭은 촬영을 쉴 때면 코끼리를 쓰다듬고 직접 당근을 먹이기도 했다.

700만 명을 동원하며 2008년 최고 흥행작으로 기록된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도 코끼리가 출연했다. 이 영화의 배경은 1930년대 만주. 현상금 사냥꾼 박도원(정우성), 마적단 두목 박창이(이병헌), 열차털이범 윤태구(송강호)가 청나라 보물 지도를 놓고 서로 쫓고 쫓기는 숨 가쁜 추격전을 벌인다. 영화 속 주요 공간 중 하나인 귀시장은 이국적인 풍광과 스펙터클한 액션을 함께 보여 주는 장소다. 김지운 감독은 귀시장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귀시장은 이를테면 청계천 같은 공간이다. 어렸을 때는 청계천 상가에서 잠수함이나 인공위성까지 만든다는 설도 있었다. (웃음) 그런 청계천의 만주식 변용을 만들려고 했다. 그래서 온갖 것이 다 있는 거다.”3)

귀시장 세트는 전라북도 정읍에 마련되어 있었다. 「최강칠우」 촬영 때와 마찬가지로 코끼리는 새벽같이 어린이대공원을 나서 촬영장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코끼리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던 「최강칠우」와 달리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 코끼리가 등장하는 장면은 찰나에 불과하다. 윤태구가 귀시장 안을 걸을 때 그 앞을 잠시 스쳐 지나갈 뿐이다. 코끼리 외에도 호랑이, 낙타, 늑대 등이 등장해 이날 촬영장은 마치 동물원을 떠올리게 했다. 한국 영화사상 이렇게 다양한 동물이 등장하는 영화는 처음이었다.


  실제로 1930년대 만주의 시장에서 코끼리를 볼 수 있었을까.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 ‘시대적 고증에는 관심 없이 이국적인 풍광으로 채우는 오락 영화’4)라거나 ‘귀시장은 30년대 만주라기보다 「스타워즈」의 타투인 행성 같은 느낌이 난다.’5)는 평에서 알 수 있듯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그 당시의 모습을 역사적으로 충실히 재현하기보다는 감독의 원하는 판타지적인 공간을 구현하는 데 힘쓴 것으로 짐작된다. 코끼리는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소품으로서 기능했던 셈이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한 장면. 귀시장을 찾은 윤태구(송강호) 앞으로 코끼리가 지나간다.




▲ 대한항공 CF에 등장한 코끼리. 이 코끼리 수송용 우리는 CF용으로 따로 제작된 것이다.


▲ 실제 코끼리 수송용 우리의 모습. 주변으로부터 시선을 차단해 코끼리의 동요를 막아 준다. 코끼리들이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하던 당시의 뉴스 화면이다.


  코끼리는 텔레비전 CF에도 등장했다. 2011년 방영된 대한항공 CF였다. 기존의 항공사 CF가 주로 좌석의 편안함이나 해외 여행지의 풍광을 강조한 데 비해 이 CF는 화물 운송에 초점을 맞추었다. 대한항공이 국제 항공 화물 분야에서 6년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한 것을 홍보하는 CF였기 때문이다. 이 CF에서 코끼리는 자동차, 말과 함께 대한항공이 운송하는 화물 중 하나로 등장한다.

실제로 대한항공이 운송한 코끼리는 제주도의 점보빌리지에 있는 코끼리이고 코끼리월드의 코끼리는 아시아나항공의 화물기를 통해 옮겨졌다. CF에 나오는 코끼리 우리도 실제로 코끼리를 옮길 때 쓰인 우리와 달랐다. 코끼리 우리는 코끼리가 밖을 내다보고 불안해하지 않도록 나무판으로 덧대어 있어서 언뜻 보면 안에 코끼리가 있다는 것을 알아채기 힘들다. 하지만 어차피 이런 세세한 사항들은 CF 안에서는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코끼리들은 지금은 종영된 KBS 「체험 삶의 현장」의 단골손님이었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해마다 한 번씩 모두 다섯 번 출연했다. 연예인들이 코끼리들을 찾아 식사 준비하기, 목욕시키기, 우리 청소하기, 공연 연습하기 등을 체험하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일일 코끼리 조련사로 일한 연예인들은 가수 코요테, 개그우먼 김다래, 가수 더 자두, 개그맨 표인봉과 개그우먼 함효주, 탤런트 신신애였다. 하지만 코끼리들이 우치동물원으로 옮긴 이후로는 섭외가 뚝 끊겼다. 코끼리 조련사 체험은 언제나 공연 성공으로 마무리되었기에 공연이 없는 우치동물원에서는 그림이 안 나온다고 판단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코끼리들은 클래식 공연부터 오락 방송까지 종횡무진 활약했지만 특히나 의미 있었던 출연은 단연 SBS 「TV 동물농장」에 나온 것이었다. 이 방송의 제목은 「코끼리 임신?!」이었다.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1) 세계일보 「야외 오페라 ‘아이다’가 남긴 교훈」(2003.9.23)


2) 조이뉴스24 「‘최강칠우’ PD “퓨전 사극 아닌 정통 사극”」(2008.6.4)


3) 씨네21 「[김지운] “극단의 시청각적 쾌감을 느껴 보라”」(2008.7.22)


4) 한겨레신문 「새해 충무로 시계는 거꾸로 돈다」(2007.12.23)


5) 씨네21 「[김지운] “극단의 시청각적 쾌감을 느껴 보라”」(2008.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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