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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쉬고 있는 이야기/[연재] 우리가 사랑한 코끼리(完)

우리가 사랑한 코끼리 (1-5) 서울로 가야 적자를 면할 수 있다!



우리가 사랑한 코끼리


by 최종욱, 김서윤


제 1부 코끼리 인천 상륙 작전


    5장 서울로 가야 적자를 면할 수 있다!






▲ 당시 어린이대공원에 있던 유일한 코끼리 태산이. 가족을 잃고 오랫동안 홀로 생활하다 2011년 숨졌다. 현재 어린이대공원은 새로 들여온 코끼리 한 쌍을 보유하고 있다.


코끼리월드가 송도 유원지에 오게 된 것은 애초에 서울행이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코끼리월드는 그 서울행에 재도전하기로 했다. 최소한 손익분기점이라도 맞추려면 서울에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이었다. 송도에는 계속 있어도 좋아질 가망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서울행이란 서울 내부에 또는 서울 시민이 일상적으로 접근 가능한 경기도 지역에 위치한 놀이공원으로 간다는 의미다. 따라서 타깃은 서울어린이대공원, 서울대공원, 에버랜드 이 세 군데가 되었다.

사업 계획서를 넣고, 관련 부서의 담당자를 만나고, 사업 취지를 설명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이미 한 번 실패했던 서울행은 역시나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만큼 코끼리월드는 더욱더 적극적이었다. 서울행은 차선책을 따로 염두에 둔 최선책이 아니었다. 코끼리월드가 계속되느냐 아니면 이대로 주저앉느냐를 판가름하는 기준선이었다.

마침내 희소식이 날아왔다. 서울어린이대공원에서 다음 해 상반기 중으로 코끼리 공연장을 열기로 결정을 내렸다. 이제 계약서만 쓰면 서울행이 확정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코끼리월드의 다른 주주들이 발목을 잡았다.


▲ 당시 수도권의 유원지들 위치. 송도 유원지가 수도권 안에서도 구석에 치우쳐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김회장이 실질적으로 코끼리월드를 꾸려 가고는 있었지만 어쨌든 법적으로는 다섯 명의 주주 중 한 사람이었다. 코끼리들을 서울로 옮기기 위해서는 다른 주주들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했다. 하지만 김회장을 제외한 네 명의 주주들은 한결같이 고개를 저었다. 문제는 돈이었다. 코끼리월드의 자본금은 이미 바닥나 있었다. 어린이대공원에 새로운 공연장을 짓기 위해서는 주주마다 2억 원씩을 더 투자해야 했다.

주주들에게 코끼리월드 사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았다. ‘코끼리’ 라는 말이 등장한 이후, 한 번도 흑자는커녕, 흑자의 기미도 보이지 않은 채, 끊임없이 비용만 소모되고 있었다. 더욱이 송도에서 실패한 코끼리 공연 사업이, 서울에서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는 터에, 2억 원이나 더 투자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였다. 다른 주주들의 입장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김회장은 코끼리 사업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그러자면 서울행 역시 포기할 수 없었다. 김회장은 이 시점에서 아예 코끼리월드 전체를 인수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원래부터 주도적으로 사업을 이끄는 것에 익숙한 김회장에게 주주들과 일일이 논의하는 것은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내가 그럼 다 빠져라 이랬지. 그동안 당신들 투자한 돈 내가 다 줄게, 나가.”

김회장은 모든 지분을 넘겨받는 대가로 선뜻 다른 주주들에게 그간의 투자 금액을 모두 물어주겠다고 제안했다. 주주들은 당연히 오케이를 외쳤고 그렇게 모든 관계는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코끼리월드를 완전히 소유하게 된 김회장은 그동안 나간 비용과 관련된 모든 서류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김회장이 매의 눈을 치켜뜨자 서류 곳곳에 허점이 보였다. 횡령의 흔적들이었다. 처음에 사업 계획서를 작성하고 그때까지 코끼리월드의 실제 업무를 진행해 왔던 사람들이 경비를 부풀리는 식으로 몰래 챙긴 돈은 2, 3억 원에 달했다. 여기에는 김회장의 친구도 포함되어 있었다.

법적으로 책임을 물릴 수도 있었지만 김회장은 그저 당사자들을 불러 놓고 증거를 보여주며 말했다. 물어내라 그리고 그만둬라. 여기서 방점은 ‘물어내라.’보다 ‘그만둬라.’에 찍혀 있었다. 사업하는 김회장으로서는 회사 돈 도둑질하는 직원을 두고 있을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직원들은 횡령액의 일부만 물어내고 회사를 그만두었지만, 김회장은 더 문제 삼지 않았다. 그렇게 주주들에 이어 직원들까지 정리되었다.

더 이상 거칠 것이 없었다. 남은 것은 서울행뿐이었고 서울행에는 흑자의 희망이 있었다.  정이사는 그때의 분위기를 이렇게 말한다.

“저도 보니까, 서울 가면 되겠더라고요. 코끼리 공연이 생소한 거라 되겠더라고요. 저도 그렇게 판단을 했죠.”

그리고 멋쩍은 표정으로 덧붙인다.

“지금 생각하면 판단 미스였죠. 허허.”

코끼리들은 송도 유원지에 온 지 2년 만인 2005년 4월 다시 트럭에 실려 서울로 향했다. 코끼리월드 소속의 노동자로서 코끼리들에게는 수익을 내야 할 의무가 있었다. 흑자 모델을 찾을 때까지 끊임없이 이주해야 하는 이주 동물의 자본주의적 운명이었다.


여기서 잠깐 이야기를 멈추고 시간을 되돌려 보자. 600년 전 한양으로 말이다. 이제부터 펼쳐질 이야기는 한반도에 최초로 등장한 코끼리에 관한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