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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비 책꾸러미/두 번째 책꾸러미

비하인드 스토리 : 편집자가 들려주는 꾸러미 뒷이야기

비하인드 스토리 : 편집자가 들려주는 꾸러미 뒷이야기



두 번째 반비 책꾸러미. 너무 늦게 도착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전합니다. 일에 재미와 의미를 더하고 싶어 시작한 이벤트인데 이렇게 드문드문 하다가, 별로 알려지지도 않고 반응도 적어 금방 접게 되면 어쩌나 걱정이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널리 알릴 수 있을까도 여전히 고민입니다. 눈 밝은 독자 여러분이 도와주시리라 믿고 있습니다.



이번 꾸러미 준비도 역시 추억 돋고 재미있었습니다. 오래 전 들었던 도시 관련 수업을 듣고 책들을 찾아 읽던 기억도 나고, 오랜만에 지금은 고인이 되신 이성욱 평론가와 함께 했던 세미나 생각도 났습니다. 고인을 통해 얼마나 많은 책들을 소개받고 얼마나 흥미로운 통찰들을 많이 얻어들었는지 모릅니다.


잊고 있었던 사소한 궁금증도 하나 되살아났습니다. 1990년대 초반 서울대 환경대학원 석사논문 중에 최홍준이라는 분이 쓰신 <1980년대 후반 이후 문화과정의 정치경제적 조건과 도시적 경험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은 석사논문임에도 불구하고 저 같은 문학 전공자들까지 챙겨볼 만큼 독자층이 넓었던 기억이 나는데, 이분은 바로 취업을 하셨는지 그 후로는 같은 이름으로 단 한 편의 논문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지금 어디서 뭘 하고 계신지? 왜 공부는 계속 안 하셨는지? 혹시 아시는 분 계시면 쪽지로라도 알려주세요.^^



김왕배, <도시, 공간, 생활세계>


또 당시 주옥같은 읽을거리들을 계속해서 내주었던 한울 공간환경시리즈도 생각이 났습니다. 10권이 <도시, 공간, 생활세계: 계급과 국가 권력의 텍스트 해석>이라는 김왕배 샘의 책이었습니다. 다시 펼쳐보니 서문에 “반(半)실업 생활의 불안함 속에서”라는 구절이 눈길을 끕니다. 


당시에 크게 유행했던 단어가 ‘플라눼르’입니다.(혹은 플라눼즈)  벤야민(혹은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보들레르)의 글에서 따온 개념이었습니다.  대도시의 문화와 문물에 환멸과 동경이라는 양가적 감정을 시선을 지닌 채 (거북이 목에 줄을 매달 정도로) 느린 걸음으로 군중 속을 거슬러 올라가는 매력적인 만보객을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산책자’라는 인문 출판사의 이쁜 이름도 여기서 영감을 받았으리라 생각해봅니다.  



이번에도 소개하고 싶은 책들은 너무나 많았는데 여러 현실적인 고려를 하다 보니 십분의 일 정도밖에 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넣고 싶었지만 넣지 못한 책들 여기서 한 번 되뇌어보겠습니다. 시간과 금전, 무엇보다 영혼의 여유가 있는 분들이라면 한 권씩 골라서 살펴보시길 권합니다.


발터 벤야민, <아케이드 프로젝트>


발터 벤야민, <일반통행로>

 

 레이먼드 윌리엄스, <시골과 도시>

기 드보르, <스펙타클의 사회>


게오르크 짐멜의 「메트로폴리스와 정신적 삶」,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일방통행로』 등 19세기 고전들 강추합니다.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시골과 도시』, 기 드보르의 『스펙타클의 사회』 같은 문화이론의 고전들도 강추합니다. 앙리 르페브르, 마뉴엘 카스텔, 데이비드 하비, 마이크 데이비스의 도시와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관한 여러 저작들도 좀 교재 같은 느낌은 들지만, 다 빼버리자니 좀 서운했습니다.  


도시 경험은 현대성과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이고, 현대성에 대한 규명과 성찰이 문학이론의 중요한 축을 이루어왔기에 프레드릭 제임슨, 프랑코 모레티 등 학제적 연구를 하는 비평가의 책들도 도시에 대한 뛰어난 통찰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손정목,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조금 더 구체적으로 한국 근현대사와 서울이라는 공간으로 돌아오면, 서울 개발의 핵심 자료들을 담고 있는 손정목 선생의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1~5』를 비롯해서, 김왕배, 김수현, 최병두, 조명래, 조은 같은 국내 도시사회학자의 연구서들이 떠올랐습니다. 강내희, 김진송, 이성욱 같은 문화이론가들의 연구서들, 정기용, 임석재, 서현, 김진애 등 건축가의 책들도 좋은 참고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마이크 데이비드, <슬럼, 지구를 뒤덮다>

임동근·김종배,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


참, 제가 작업했던 『슬럼, 지구를 뒤덮다』라는 책도 강추합니다.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에서 임동근 선생님은 지나치게 선정적이라고 평가하시긴 했지만, 그런 면을 조금 감안하고 본다면 우리의 도시적 삶을 돌아볼 만한 성찰의 계기를 제공하는 귀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