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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쉬고 있는 이야기/[연재] 새벽의 인문학, 겨울

<새벽의 인문학> 겨울 : 사방에 물 (1)

※ [새벽의 인문학, 겨울]은 다이앤 애커먼의 『새벽의 인문학』의 '겨울'을 옮겨온 연재글 입니다.




<새벽의 인문학> 겨울

: 사방에 물 (1)



지은이│다이앤 애커먼

옮긴이│홍한별



  날이 새기 전 사파이어빛 시간, 호수 위의 유빙이 물에 비친 나무 그림자를 쪼개놓는다. 다른 곳에서는 폭포수가 쏟아지며 고고한 물의 언어로 거품을 일으킨다. 얼음 목도리가 빙하가 깎아 만든 협곡을 친친 감는다. 겨울이면 공기처럼 가벼운 물방울이 장벽을 넘고 건물을 무너뜨리고 웅장한 도시를 발아래 무릎 꿇린다. 이 파란 겨울 아침, 얼음이 카유가 호수 어귀에 폭포 모양을 이루고 흘러드는 물줄기에는 하얀 상아 장식이 생기지만 호수 전체는 절대 얼어붙지 않는다. 그럴 수가 없다.



ⓒ pixabay


  다행스러운 일이다. 물의 독특한 성질이 아니라면 우리는 존재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까닭을 운운하는 여러 주장 가운데서도 가장 앞세울 것은 바로 이 말이다. 우리는 얼음이 물에 뜨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다. 다른 액체는 얼면 수축해서 가라앉지만 오직 물만은 팽창한다. 이 과정에서 아주 작은 삼각형 피라미드 같은 것이 생겨나 연결되면서 구멍 많고 넉넉한 구조를 만든다. 얼음이 물에 뜨지 않으면 아주 오래 전에 바다가 얼어붙었을 것이고 우물, 샘, 강도 마찬가지다. 물이 이런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한순간에는 손에서 비단처럼 미끄러져 흐르다가도 다음 순간에는 지붕을 무너뜨리고 골짜기를 깎지 않는다면, 지구에는 아무 생명도 살 수 없을 것이다.



ⓒ pixabay


  생명이 바다에서 발원했기 때문에 우리는 번성하기 위해 계속 물을 마셔야 한다. 탈수가 되면, 나도 전에 플로리다에서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는데, 뇌 안의 소금밭이 말라서 정신이 혼미해지고 빨리 혈관에 전해액을 투입하지 않으면 사망에 이르게 된다. 우리는 걸어 다니는 물통이다. 늘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물로 목욕을 하고 밭에 물을 대고 물 속을 헤쳐 나가고 부글부글 끓고 비를 맞곤 해서 물이 얼마나 신비로운지 미처 깨닫지 못할 때가 많다. 물은 액체일 수도, 기체일 수도, 결정일 수도 있다. 물이 유리처럼 보일 때가 많고 얇은 얼음은 유리처럼 깨지고 유리처럼 천천히 걸쭉하게 흐르기도 하지만, 유리처럼 규소로 되어 있지는 않다. 하지만 물이 유리를 만들어내긴 한다. 바닷가에 생긴 모래밭은 물이 만들어낸 일종의 유리다.


  어떤 물도 새것이라고 할 수 없다. 끝없이 하늘로 올라가고 떨어지고 응축되며 한 방울 한 방울 모두 언제 어딘가에 쓰였다가 재활용된다. 오늘 먹은 샐러리 줄기 안에 들어 있는 물이 작년에 아마존에 비로 내렸을 수도 있고 300만 년 전에 아프리카인이 마셨던 물일 수도 있다. 우리는 물을 모으고 나르는 법을 알게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어디에서나 그럴 수는 없다. 아마존에서 언젠가 나는 습도 100퍼센트의 축축한 장막으로 뒤덮였지만 비는 내리지 않는 곳을 걸은 적이 있다.



ⓒ pixabay


  지구 절반을 덮은 구름 때문에 하늘이 콜라주처럼 보인다. 로르샤흐 검사에 쓰는 얼룩 같은 덩어리들이 무너져 비로 내린다. 그렇지만 비가 공기를 통과해 내리는 게 아니라 공기를 이룬다. 너무나 가벼워서 바람에 날리는 아주 작은 물방울들이다. 수천 톤의 물, 수백만 개의 물방울들, 고요해 보이지만 불안정하게 밀고 밀리는 무리들이다. 이 구름들을 어떻게 분류할 수가 있을까? 1802년에야 처음으로 이를 시도했다. 프랑스 자연과학자 장바티스트 라마르크(Jean-Baptiste Lamarck)가 구름을 흐릿한, 덩어리진, 얼룩, 빗자루 모양, 밀집한 구름 등으로 분류했다. 곧 영국 약학자 루크 하워드(Luke Howard)는 적운, 층운, 난운, 권운의 네 가지 무리를 제안했다. 여기에 고도만 더해서 지금도 이 분류를 쓴다.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하얗고 분홍색으로 물결치는 구름 떼를 고적운이라 부르는 식으로.


  부피로는 물론 공기 중의 물이 바다와 비교도 되지 않게 많지만 호수와 강, 샘, 우물, 60억 인간을 포함한 무수히 많은 생명체에는 녹는 눈과 비가 물을 채운다. '사람이 걷는다.'고 말하고 그렇게 생각하긴 하지만 사실 사람은 흐른다고 할 수 있다. 수준기(水準器)처럼 우리가 누우면 우리의 물도 평평해지겠지만 그래도 물은 계속 움직이고 미끄러지고 흐르고 새로워진다.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라도 몸 안의 수로와 배편들 덕에 여행을 한다. 물을 마시고 먹고 배출하고 생각하는 몸의 조직은 습지이자 강어귀이고, 기관들은 섬이고, 혈류는 실개천과 여러 수원이 있는 긴 강이다. 움직이며 화학물질을 튀기고 여러 구멍을 통해 물을 배출하지만 우리 피, 피부, 땀, 눈물 안에는 늘 짠 바다가 있다. 생리주기는 조수를 닮았다. 관절에 기름칠을 하고 음식을 소화하고 우리 치아에 반짝이는 법랑질을 덮는 데도 물이 필요하다. 우리는 물이 이루어내는 생명을 반영해 보여준다.



사방에 물 (2) 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