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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비 책꾸러미/반비 책꾸러미 안내

우리는 왜 '책꾸러미'를 시작했을까?




출판사는, 특히 반비처럼 작은 인문 출판사는 책이 나올 때마다 고민합니다.



제한된 홍보/마케팅 예산으로 어떻게 독자들에게 우리 책이 나왔다는 것을 알릴 수 있을까?


하지만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돌고 돌아 결국 현실적으로는,

서점 몇 군데 경품 이벤트를 하고,

저자 강연 한두 번하고,

SNS를 통해 소개하는 정도를 넘어서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면서 제발 눈 밝은 독자들이 알아서 우리 책을 발견해주기를!

우리 책이 우연히 어느 부지런한 독자의 손과 발에 걸려들기를!


간절히 빌고 또 빌 뿐입니다.



지난 달에도 신간 출간을 앞두고 그런 루틴한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책은 강연을 한 번만 할까? 아니 두 번?

경품은 뭘 걸지…?

그러다 문득,


이런 일들이 정말 우리 책을 읽고 싶게 만들긴 하는 걸까 하는 의심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출간 기념 이벤트로 저자 강연을 열면 수백 명이 몰려 으쓱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 강연 현장에서 책을 구입하시는 분들은 10퍼센트도 안 됩니다.

그럴 때면 책에 강연을 끼워 팔아야 하는 건지, 강연에 책을 끼워 팔아야 하는 건지 헷갈립니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같은 존재론적인 고민이 시작됩니다.





생각이 꼬리를 물다 보면 좀 과장된 생각도 듭니다.

책보다 강연을 강조함으로써, 우리가 나서서,

힘들게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꼴은 아닐까?

책보다 경품을 강조함으로써, 우리가 나서서,

책은 매력적인 상품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꼴은 아닐까?


알고 보면 우리 스스로 책이 어렵고 별 효용도 없는 상품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그래서 출판사가 뭐 하는 곳인지,

출판사가 독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가 무엇일지

더 많이 생각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예전엔 그냥 좋은 책을 만들면 정말로 독자들이 알아서 읽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경험을 해봤거나 하고 있는 살마들이 점점 더 보이지 않는다는 두려움,

책을 읽는다는 것이 (어렵지만) 보람차고 즐거운 일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이 나라에서,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살짝 고개를 드는 거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해 야할 일은 

아주 근본적으로 책이 가진 미덕들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꾸러미가 이런 고민의 해답은 아니겠지만, 그 실마리를 담고 있긴 합니다.



책은 완결된 구조물이지만 끝없이 다른 책들로 이어지고 연결됩니다.

그 방대한 지식의 우주, 정보의 우주, 감정의 우주는

인류의 가장 뛰어난 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번 책을 제대로 읽기 시작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권하는 책을 같이 읽을 수밖에 없고,

그 책과 연결된 책들을 이어서 일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해서 쌓인 책들을 옆에 두고 평생을 읽어나갈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요?

이런 읽기의 괴로움과 즐거움을 아는 독자들을 찾아내고 귀하게 대접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조금 더 욕심을 내자면, 만들어내는 데에도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우리 역시 그런 독자들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이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서 수많은 책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책을 사랑하는 만큼,

우리 책을 존재하게 해준 다른 책들도 사랑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책들을 꾸러미 속에 담았습니다.



이 꾸러미는 일종의 성좌입니다.

막막한 책의 우주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우리를 안내하는 별자리.

이 별자리들을 나침반 삼아, 더 많은 독자들과 같이 길을 찾아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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