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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페이퍼 엘레지』 추천사 : 김용언 번역가 "종이의 문화사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페이퍼 엘레지』 추천사 : 김용언 번역가 겸 북칼럼니스트





자취를 시작한 뒤부터 이사를 세 번 했는데, 그때마다 무리해서 평수를 넓혔던 건 순전히 책 때문이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책을 더 안정적으로 ‘모시기’ 위해, 책장의 개수를 늘려 좀 더 편안하고 구김 없이 꽂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혼자 사는데 왜 그렇게 넓은 평수를 찾아?”라는 질문을 가는 데마다 받았고 “책이 정말 많아서요.”라고 간단하게 답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이해를 못했다. 『페이퍼 엘레지』에 등장하는 호머와 랭글리 콜리어 형제, 호화 저택을 100톤이 넘는 쓰레기(대부분 종이로 된 것)로 채웠다가 그에 질식해 죽은 이들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제 슬슬 감당할 수 있는 한계가 다가온다는 생각은 들었다.




“우리는 종이의 광팬이고 종이의 근본주의자들이다. (……) 책은 우리가 집에서 섬기는 신이다.”라고 단언하는 저자 이언 샌섬은 책뿐 아니라 우리의 세계 전체를 구성한다고까지 말해도 과언이 아닌 종이의 문화사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경제, 전쟁, 정치, 영화, 건축, 패션에 걸쳐서 우리를 ‘모던’하게 만들어준 비밀의 원소가 바로 종이였다. “종이는 실체는 보잘것없어도 그 안에 의미를 가득 담는다. 물질이면서 환영이다. 망가지기 쉽지만 영속적이다. (……) 종이는 모든 것이며 아무것도 아니다. 궁극의 맥거핀이다.” 지금까지 종이, 원고, 책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헌사는 미하일 불가코프의 소설 『거장과 마르가르티』의 “원고는 불타지 않았습니다!”라고 생각했는데, 이언 샌섬의 『페이퍼 엘레지』도 그에 필적할 만한 강력한 경쟁자로 급부상했다.



─ 김용언(번역가 겸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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