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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페이퍼 엘레지』 추천사 : 안은별 전 《프레시안》 기자

『페이퍼 엘레지』 추천사 : 안은별 전 《프레시안》 기자



이 책은 종이를 만든 이들과 종이가 이룩한 세계와 온갖 쓰임들,

나아가 그것이 일으킨 영감과 변혁들에 대해 탐구한,

수많은 종이에 힘입어 이룩된 또 다른 종이이다.




종이는 어디에나 있고, 그 자체로 성립하는 동시에 무수한 것들로 변형될 수 있다. 스케치·평면·담론이란 이름으로 완성 작품·입체·실천에 대비되는 동시에 디지털과 짝을 이루어 진짜 혹은 실체라는 지위에 서기도 한다. 사람의 목숨까지 뒤흔드는 권위와 물, 빛, 시간에 허무하리만큼 쉽게 망가지는 연약함을 동시에 지닌다. 『페이퍼 엘레지』의 저자는, 그러한 종이를 사고한다. 이 말의 주술관계는 다소 불완전하다. 종이가 없었다면, 저자는 애초에 사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저자(와 우리가) 종이로 ‘사고된’ 존재라 표현해도 무방하다.




이 책은 종이를 만든 이들과 종이가 이룩한 세계와 온갖 쓰임들, 나아가 그것이 일으킨 영감과 변혁들에 대해 탐구한, 수많은 종이에 힘입어 이룩된 또 다른 종이이다. 그것은 물질의 대량 생산과 소비의 역사이기도 하며, 대중 예술의 역사이며, 동시에 인류의 생각이 물질화되어 온 경로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것들을 아우르면서도 ‘OO의 문화사’ 들이 흔히 저지르는 집요한 환원론과 지루함을 피해 나가는 영리함을 보인다. 그 영리함은 거꾸로, 저자의 집요한 문화적 섭식에서 기인한다. 그야말로 박람강기라 할 만한 지적인 잡식과 완벽한 소화, 거기다 ‘덕질’의 즐거움이 묻어나오는 문체가 재미의 정체다. 무엇보다, 이 종이 더미는, 또 다른 종이 혹은 종이 더미로 안내하는 역할을 맡는다. 당신이 이 종이를 구석구석 탐했다면, 반드시 또 다른 종이를 찾아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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